소설가 장정일은 "새로운 질문을 낳는 책, 주류와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책, 그 시대의 절박한 문제에 응답하려 분투하는 책"이라고 했다.
2015년 2월부터 3년 여정으로 유라시아를 견문하고 있는 역사학자 이병한의 책 <반전의 시대>(서해문집, 2016)는 동서와 고금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출간에 앞서 <프레시안>에 글이 연재될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글솜씨로 시공을 넘나들며 동아시아 담론을 엮어가는 이 박사에게 매료된 이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었다.
자리를 만들었다. 왜 반전의 시대이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원로 '애독자'가 묻고 젊은 학자가 답했다.
이병한 박사는 동양과 서양을 대립적 관계로 보는 시각에 반대한다. "동서합작을 강조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아울러 '유라시아'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동서를 갈라서 생각하는 이분법을 타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패권주의와는 다른 논리로 세계가 재편되어 간다"고 전망하며 "서방 문명을 배우고 익힌 동방 쪽에서 도리어 동서 문명을 합작하고 혼합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그에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도 "허구적 담론"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줄에 설 것인지를 강요하는 '미국발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의 굴기, 인도의 부상, 이슬람의 각성이 동시적으로 분출되는 유라시아 지형에 주목했다.
"유라시아 전체 지도를 펼쳐놓고 작금의 형세를 살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지난 200년 억압받았던 여러 나라들이 동시에 부상하고 있고, 여러 문명들이 더불어 부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들 간에, 문명들 사이의 오래된 연결망을 새로이 복구하고 복원해가고 있다."
그래도 중국에 관한 물음이 이어졌다. 특히 전통과 근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하이브리드(혼종)된 '차이나 모델'에 관해.
윤 전 장관은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하이브리드가 가능할 수 있겠나?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라고 했다.
이에 이 박사는 "20세기식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개념으로는 중국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국가는 공적 역할을 담당했던 기왕의 중국식 정치경제모델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반전의 시대'에 한국의 적응 지체를 우려했다.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포획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면서 "반전 시대의 논리를 제시하고 실천할 지도자와 집단의 출현이 갈급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런 싹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박사 역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500년을 통해 유교문명이 누적되고 축적되고 저변으로 확산, 심화되어갔던 '동방형 문명화' 과정이 20세기 후반에 더더욱 민중화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민주화 세력조차 이 같은 자신의 문명적 토대를 잘 모른다"고 했다.
특히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이 박사는 "사드 배치가 동아시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신냉전 구도를 획책하는 세력의 편에 일방적으로 서게 되면, 장차 운신의 폭이 대폭 좁혀진다. 패착이다"라고 했다.
이 박사는 이어 한미 동맹의 본질을 '군사 동맹'으로 규정하며 "(미국은) 당분간 그 비용을 동맹국들에게 전가하면서 지배체제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어떤 임계점, 분기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필리핀을 언급하며 "미군 없는 아시아는 도둑처럼 올 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박사가 주목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가능할까? 그는 "남의 것 흉내내기, 새 것 따라하기는 이제 그만두고 옛 공부를 다시, 새롭게, 다함께 해보자"고 했다. 반전의 시대에 한국이 다시 한 번 적응 지체를 겪지 않기 위한 젊은 학자의 제언이다.
다음은 지난 23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진행된 윤여준 전 장관과 이병한 박사의 대담 전문.
"세계는 패권주의와 다른 논리로 재편되어 갈 것"
윤여준 : 우선 이 박사 책을 본 감상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서구의 근대가 씌운 안경으로 세상을 보아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 동북아에 갇혀 냉전적 시각으로 세상을 본 것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맹목적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다.
이 박사는 책머리에서 '개발파도 개혁파도 근대를 향한 질주(산업화, 민주화, 서구화)에 매달렸다. 그런데 정작 당도한 것은 서구의 황혼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백년의 논리를 갈고 닦는 것이 후학의 책무'라고 언급했다. 이걸 읽으면서 동양에 대해 눈을 뜬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
궁금한 게 많다. 우선 1972년 닉슨의 방중으로 시작된 중·미 간의 화해를 전환시대의 시작으로 보면서 뒤따른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재 선포와 김일성의 유일체제 구축을 전환시대의 적응 지체로 규정했는데, 전환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박 대통령과 김 주석이 각각 어떤 길을 갔어야 했다고 보나?
이병한 : 1972년 이후의 동아시아를 회고해보면 그해 곧장 중국과 일본은 수교까지 갔다. 미국보다 일본이 더 기민하게 움직인 것이다. 1979년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화 했고 일본은 그에 맞춰 열도 개조에 착수해서 서일본 위주로 정책을 바꿨다. 중국의 동남부와 일본의 서부, 그리고 베트남전쟁 이후의 동남아시아까지 아울러 동아시아 일대에 거대한 분업체제가 형성되어간 것이다. 미국과 소련에서 벗어난 동아시아 공동체의 원형이 될 수도 있던 흐름이 아니었나 싶다. 이 흐름이 20여년 지속되어 일정한 수준으로 제도화 되었다면,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거나 훨씬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역사가 진행되었던 곳이 바로 한반도이다. 남쪽은 유신체제로 역행했고, 북쪽 또한 유일체제로 역주행 했다.
당시 남북한의 실력을 비교해 보면 여전히 북한이 좀 우위에 있었던 것 같다. 북쪽에서 오히려 포용 정책을 폈어야 했다. 당시 박정희는 미군이 철수하겠다는 걸 보면서 지금의 북한처럼 핵무장을 하겠다고 했다. 결사적으로 체제수호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남을 보듬고 아울러 가는 아량을 발휘했어야 할 것인데, 정작 김일성은 1975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것을 보면서 마오쩌둥에게 달려가서 한국전쟁을 한 번 더 하겠다고 요청했다. 아시아에서의 미군 철수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보면서 역사가 자기편이라고 크게 오판한 것이다.
남북 모두 자신의 정권과 체제 위주로만 사고했을 뿐,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역량이 부족했다. 그때부터 남북교류가 활발했더라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탈냉전은 유럽연합의 등장에 버금갈 만큼의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을지 모른다. 일차적으로는 남북의 권력자 탓이고, 북의 인민과 남의 시민 또한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당시 남북이 그릇된 선택을 함으로써, 한반도는 여전히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화근이 되고 있다.
윤여준 : 세상이 바뀌고 있어서 반전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년의 시계추가 거꾸로 뒤집혀 재차 동풍이 불고 있다'면서 그 징표랄까, 상징이랄까, 중국의 굴기, 인도의 부상, 이슬람의 각성이 거의 동시적으로 분출하는 것은 우연이 일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서세동점의 시대가 저물고 동세서점의 시대고 오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이병한 : 그러한 논리에 결단코 반대한다. 내가 했던 얘기가 그런 방향이라면 반전의 시대가 아니라 '역전의 시대'라고 했을 것이다.
동양이 서양으로부터 당한 것을 서양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게 역전이다. 인도가 영국을 식민지로 삼고, 베트남이 프랑스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그런 논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제국주의, 식민주의, 패권주의와는 다른 논리로 세계가 재편되어 간다고 봐서 '반전의 시대'라고 한 것이다.
윤여준 : 문명사학자는 역사를 보는 호흡이 길다. 현실은 좀 다르다. 국제정치적인 차원으로 보면 달리 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문명사가 바뀌면 언젠가 국제정치적 현실도 따라 바뀔 것이기 때문에, 반전의 시대가 온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반전의 시대를 맞아서 동양 사람들이 서양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동양 사람들이 인식해야 할 두 문명 간의 근본적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이병한 : 동서 문명 간 다름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양 문명이 물과 기름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동서 간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18~19세기의 근대문명과 그 이전 문명 간의 차이라고 본다. 18세기부터 석탄, 석유 등 지하자원을 서양이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문명이나 중화문명의 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서양 또한 그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회가 되었다. 동서의 차이라기보다는 현대 문명과 전통 문명의 차이가 더 크다.
동서합작을 강조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아울러 '유라시아'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동서를 갈라서 생각하는 이분법을 타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라시아에는 본디 그러한 큰 교류가 오랫동안 있었다. 그리고 그 교류의 양상은 유럽과 아메리카, '유메리카'의 일방적인 식민화와는 전혀 달랐다. 로마제국과 대당제국이 페르시아를 통해서 소통했던 것처럼. 그런 동서 문명 교류가 활발하게 환류하다가 18~19세기에 일방적으로 뒤바뀐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서세동점을 뒤집어서 동세서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 한다. 비틀어 표현하자면 동도(東道)가 서진을 해야 한다. 혹은 '동학(東學)의 서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동방은 서방 문명을 지난 100~200년 동안 열심히 흡수하고 소화했다. 서방은 그렇지 않았다. 불교도, 이슬람도, 유교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제국주의의 역설이다. 서방 문명을 배우고 익힌 동방 쪽에서 도리어 동서 문명을 합작하고 혼합할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서진을 한다면, 그래서 동도가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도 또한 19세기말의 그 '동도'가 아니다. 서기(西器)에 맞서 전통문명을 수호했던 수구파의 동도가 아니라, 동서고금문명을 융합하고 혼합시킨 개혁개방파의 '신(新) 동도'라고 해야 온당할 것이다.
"한국, 이론과 사상의 자력갱생에 실패했다"
윤여준 : 고·금 합작을 말했는데, 중국이나 인도는 그럴만한데, 한국에 고·금 합작을 할 만한 어떤 문명적 자산이 있다고 보는가?
이병한 : 어마어마하게 많지 않나? 불교, 유교는 세계 보편 문명이다. 우리는 불교국가 500년, 유교 국가 500년을 경험하며 천년을 보냈다.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면서 이런 역사를 경험한 나라가 많지 않다. 이런 점에 먼저 주목한 쪽은 오히려 보수파다. 그쪽이 1980년대에 말한 유교자본주의 같은 게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개발독재를 합리화하는 담론으로 몹시 비판적으로 보지만, 20세기 후반 동아시아가 유달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도 문명적 토대가 있었을 것이라는 착안과 착상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반면에 진보파들은 전통 문명에 더욱 적대적이다. 아니 무심하거나 무지하다. 그래서 민주화의 동력과 역동성을 긴 호흡으로 파악하지도 못한다. 나는 유교 문명을 500년 간 경험하며 축적해왔던 공공성 등의 가치가 민주화를 추동하는 강렬한 원형으로 작동했다고 보는 편이다.
20세기는 군인들, 무인들의 전성시대였다. 유교는 전국시대를 태평천하로 전환시키는 방편, 즉 무를 문으로 반전시키는 학문이자 경세였다. 그래서 무인들을 '사농공상'의 외부에 두어 문민통제를 했던 것이다. 반면에 지난 20세기는 그 무인들과 사농공상의 가장 바닥에 있던 상인들의 대연합, 즉 군사독재와 그에 결탁한 자본가의 주도 아래 전개되었다.
흥미롭게도 그 무인-상인 연합, 즉 '개발독재'에 대한 가장 강렬한 도전이 학생운동으로 표출되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민주화의 최전선에 섰던 것이다. 그들이 현장으로 하방하고 침투해서 농민과 노동자와 결합함으로써 군인-자본가의 결탁에 균열을 내간 것이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다. 500년을 통해 유교문명이 누적되고 축적되고 저변으로 확산, 심화되어갔던 '동방형 문명화' 과정이 20세기 후반에 더더욱 민중화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주화 세력들조차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 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문명적 토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를 읽고, 레닌을 읽고, 마오쩌둥을 읽으며 현실에 참여하고자 했던 강렬한 파토스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제대로 따져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그들이 학습했던 내용들이 아시아의 과거를 온통 '봉건'이니 '중세'니 하며 폄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장기지속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그들은 '신진사대부'까지는 아닐지라도 새로운 문인 세력들의 발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 각종 신생사조를 갈고 닦은 신흥 문인 세력이었던 것이다.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의 첫 정부가 스스로를 '문민(文民)' 정부라고 했던 그런 기호들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를 보면, 오랫동안 누적된 동아시아의 문명이 한국 현대사를 통해서도 관철돼 왔다고 할 수 있다.
윤여준 :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이 스스로 의식을 못했어도 정신 속에 천년의 문명이 숨 쉬고 있어서 문민정부라는 키워드도 나왔다고 보는 듯하다. 수긍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상적으로는 민주화 세력이 그런 깊은 철학적 고뇌가 있어서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서 문명사적 흔적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럼 여기엔 무엇이 작용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이병한 : 서구의 민주화는 문인들이 한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한 것이다. 자본을 축적한 상인계급들이 왕실과 귀족이 득세하던 기존의 신분제를 타파한 것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다. 사농공(士農工) 연합에 '시민'들은 가장 늦게 참여했다. 붓 대신에 펜을 든 사람들이 칼 대신에 총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도전해서 '문'을 쟁취해가는 과정이었다. 계급투쟁이 아니라 문무의 길항으로 전개되었던 중화문명 특유의 역사 전개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윤여준 : 탁월한 해석인데, 그 이후를 보면 완전히 자본가 수중으로 들어간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기반해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포획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 지난 30년 신자유주의의 결과를 보면 세계 여러 나라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그렇다. 문인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진 민주화라고 해도, 그 이후 자본가에게 포획된 결과를 놓고 보면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병한 : 가장 안타까운 지점이다. 선생님과 선배들 세대의 한계라고 본다. 학문을 하거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의식과 사상이 오히려 서구 쪽에 더욱 경도되어있다. 민주화 이후, 특히 소련이 해체된 이후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논객들의 면면 또한 대부분이 그렇다. 독일이나 프랑스, 북유럽 등을 준거로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한다. 내재화하지 못하고 외재적 평가를 반복한다. 이론과 사상의 자력갱생에 실패한 것이다. 그들 논객들이 지지하는 소위 '진보 정당'들이 지리멸렬해져왔던 과정이나,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었던 대학들이 지금처럼 무기력한 곳으로 전락한 사정과도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윤여준 :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모든 제도와 문물이 들어왔다. 지식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지금의 한국 지식 사회는 미국 출신 학자들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상태가 된 것 아닌가 싶다. 토착 인텔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 박사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런 점에서 이 박사가 앞으로 좋은 샘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박사에 따르면, 인도 독립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50년경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인도가 영국을, 인도네시아가 일본을 앞서가는 '오래된 미래'가 되돌아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2050년 이면 불과 34년 뒤의 일이다. 이 박사는 반전시대의 논리를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와 집단의 출현이 갈급하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런 싹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사회 일각에서 '새로운 백년'을 준비하자는 주장이 산발적으로 나오고, 그런 모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전환시대에 적응 지체를 했는데, 반전의 시대에 또 다시 적응 지체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병한 : 직간접적으로 내가 속한 대학이나 언론에 관해 말하자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곳인데 지나치게 치우쳐있다. 일방적으로 영미권에 의존한다. 서방의 시각이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다만 나는 그 자체가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니 지극히 당연하다. <뉴욕타임스>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논하고, <가디언>이 영국의 시각으로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것을 탓할게 없다. 일본 언론은 일본 언론대로, 아랍권의 알자지라은 이슬람의 시각으로 보는 일정한 편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걸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국력이 세계 10위권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생산만큼은 번역 중계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와 조선일보 사이에도 큰 차이가 없다. 독자적인 시각, 주견과 주관을 세워 나가야 한다.
윤여준 : 서구의 근대화가 씌운 안경이다. 그걸 인식 못하고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안경을 벗고 우리 눈으로 봐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금방 되지는 않는다.
이병한 :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니, 결국은 혼자 해결해야 한다. 중국어를 배우고, 러시아어를 익히고, 아랍어까지 읽어야 한다. 고생스러운 과정이지만, 얻는 바가 적지 않다. 그쪽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지식, 정보가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나름으로 균형을 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작년부터 올해 인도에서 6개월을 생활하고, 이란부터 터키까지 이슬람권에서 4개월째 지내고 있는데, 그곳 언론을 보면 'G2'라는 단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아나톨리아 고원만 지나면 G2는 무력한 개념이 된다.
한국에서는 마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인 것처럼 널리 쓰이는데, 내가 살펴보는 언론들에 한정해서 말하면 주로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중국이 미국과 버금갈 만큼 성장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다툼을 벌인다, 그러니 이제 너는 어느 줄에 설래?'를 강요하는 미국발 프레임이라는 것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그 프레임에 들어가 있다. 미중이 패권경쟁을 한다는 프레임 자체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는 나라들에서만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13억 인구가 넘는 남아시아나 16억 인구의 공론장인 아랍어권에서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미중 간 경쟁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식의 구조조정이 중요한 것은 인식이 곧 판단과 행동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윤여준 :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다가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문명의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산 것이 반세기다. 반미, 반서구를 하자는 말이 아니라, 쉽지 않겠지만 우리 정신을 되찾자는 것이다. 내가 언론계에 몸담았던 시절, 타스 통신 동남아지국장과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언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아프간에 러시아가 들어간 경위를 설명하면서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였으며 러시아가 어쩔 수 없이 개입했다는 식으로 과정을 설명했는데 거짓말 같지 않았다. 서구 뉴스만 편식해선 안 된다고 개탄하던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우리도 모르게 세뇌되어 있는 것이고 지배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병한 : 반미, 반서구를 하자는 게 아니다. 당장 나부터가 영어로 된 신문과 잡지, 책을 가장 많이 읽는다. 그들이 지난 세기 동안 축적한 지식과 정보가 그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요긴하게 활용한다. 다만 그것에만 의존해서는 몹시 곤란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언론에서, 아니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지식과 정보의 생산 능력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모델은 과연 가능할까"
윤여준 :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의 중국은 '얼추 대청제국의 하드웨어에 대당제국의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나라는 이슬람의 외래문명을 껴안은 코스모폴리탄 제국의 정수'였고, '오늘날의 중국도 사회주의/시장경제와 좌우의 하이브리드'라면서 '유교사회주의를 전통과 근대의 혼종'이라고 규정했다. 이 하이브리드와 혼종을 통 털어 차이나 모델(China Model)이라고 하는데 이게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특히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하이브리드가 가능할 수 있겠나?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이병한 : 역시나 개념이나 언어가 중요하다.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것도 사회주의는 무엇이고 자본주의는 무엇이라는 고정 틀이 이미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라는 건 일당독재로 개념화된 고정 틀이 있고, 자본주의도 그런 게 있다. 그런데 중국은 둘 다 아니라고 본다. 정치가 사회주의인가? 소련식 일당 독재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유교식 정치가 그들 나름으로 근대화 된 것에 더 가깝다고 본다. 조정이 공산당이 된 것이고, 태학과 향교가 중앙과 지방의 당교가 된 것이고, 과거제가 지금의 간부 선발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중국의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인가? 여전히 토지는 국유화 되어 있고 중국에서 해외로 진출하는 자본도 대부분 국영자본이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서구 자본주의와 매우 다른 것이다. 미국처럼 대자본이 국가를 좌우하지도 못한다. 민간에서는 자유시장이 전개되고, 국가는 공적 역할을 담당했던 기왕의 중국식 정치경제모델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무엇으로 개념화 할 것인가는 학술적인 과제이고 사상적인 도전이다.
윤여준 : 자본주의의 속성은 인간의 탐욕을 에너지로 삼는다. 중국이 겪고 있는 극심한 부패와 불평등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하이브리드가 잘못돼서 왔다고 보면 틀린 것인가?
자유민주주의는 부패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흔히 말해 사회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혼합한 국가 운영이 차이나 모델이라고 하니까, 자본주의 속성 상 초기 단계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그게 가능하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이병한 : 여전히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힘들다.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곧 중국이 자본주의국가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에 대한 막강한 통제력을 국가가 가지고 있고, 현재 시진핑 정부가 반부패 투쟁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 자본가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거나 뒤엎을 수도 없다. 20세기식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개념으로는 중국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유럽과 소련, 미국을 다 합해도 중국보다 작지 않은가? 게다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장구한 '중국사'에 견주면 일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중국체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중국의 장래를 제대로 전망하기 위해서라도 사회과학자들 또한 사서와 삼경 등 동방고전을 읽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윤여준 : 구질서는 끝났으나 아직 새로운 질서는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이행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과 정책의 변화를 넘어선 시대교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시대로의 교체, 어떤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이병한 :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행 같은 것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미래에 영미식으로 전 지구적 패권을 행사하는 국가가 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패권 이후의 세계질서'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중 간 패권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를 크게 보아야 한다. 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지도만 보아서는 구조적인 오인과 오판을 하기 쉽다. 유라시아의 동쪽 모퉁이만 클로즈업해서 보기 때문이다. 이쪽에만 주시하다보면 실제로 G2니, 신냉전이니 하는 말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라시아 전체 지도를 펼쳐놓고 작금의 형세를 살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지난 200년 억압받았던 여러 나라들이 동시에 부상하고 있고, 여러 문명들이 더불어 부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들 간에, 문명들 사이의 오래된 연결망을 새로이 복구하고 복원해가고 있다. 즉 다극화시대, 공존체제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한국의 미래 방향 또한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은 허구적인 담론이다. 한쪽은 그런 담론을 퍼뜨리며 신냉전 구도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그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 안달하고 있는 것이다.
윤여준 : 최근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둘러싸고 예측과 논란이 무성하다. 이 박사에 따르면 과거 동아시아 질서는 겹겹의 중화 질서가 물결처럼 포개진 프랙탈(fractal) 구조로서, 이른바 '천하일가(天下一家)'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로써 국가‧민족의 절대성을 규정하고 제어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겪었던 중국의 태도가 천하체계 또는 천하일가의 개념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이병한 : 그런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세를 따져야 한다. 난세냐 치세냐, 때에 따라 경우가 다르다. 임진왜란은 천하일가, 천하체계가 흔들리던 때였다. 일본이 도전해서 천하질서가 동요하던 때였다. 임진왜란 때 중국만 조선을 도우러 온 게 아니라 베트남 등도 연합군으로 왔다. 임진왜란은 천하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세력과 그것을 복원하려는 세력 간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 난세에 이념형적 천하일가가 작동할리 있겠는가. 전시의 논리가 가동되기 마련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의 중국, 즉 명나라의 횡포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동아시아가 집합적으로 공유하던 가치가 흔들리게 되면 중국 또한 제국주의화 된다. 비단 임진왜란 때만도 아니다. 그로부터 300년 후 청일전쟁 때 청나라 역시 조선을 대한 태도는 지극히 제국주의적이었다. 태평천하가 무너지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을 쳤다.
병자호란 역시 천하질서가 무너졌을 때의 일이다. 특히 북방의 만주족들은 중화세계가 공유하는 문명질서라는 걸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경험한 중국이란 아직 '중국', 혹은 '중화제국'에 도달하지 못한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천하를 재통일 하고 나면 결국 중화 세계형 질서를 다시 배우고 익히게 된다. 누천년 반복된 역사이다. 동아시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힘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기왕의 중국 왕조들이 실행했던 작동 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중화세계 전체의 국제질서의 변동과 변천을 '탈중화와 재중화의 길항'으로 접근하는 편이다. 중화세계질서를 교란하는 동력과 그것을 복원시키려는 세력 간의 길항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윤여준 : 사드를 둘러싸고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보복 움직임이 없지만 중국과 문화사업을 하는 분들은 음성적으로 엄청난 피해가 있는 듯하다. 그 외에 아직까지 중국은 공식적으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중국이 정치외교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나?
이병한 : 질문이 거꾸로 됐다. 중국이 보복을 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이고, 보복을 안 한다면 사드를 배치해도 된다는 것인가?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한국이 먼저 사달을 낸 것이고, 그 후폭풍의 여부와 진위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사드 배치가 동아시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신냉전 구도를 획책하는 세력의 편에 일방적으로 서게 되면, 장차 운신의 폭이 대폭 좁혀진다. 패착이다.
"안쓰러운 숭미, 순진한 반미"
윤여준 : 흔히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헛말'로 규정했다. 이데올로기는 진즉에 종언을 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나아가 한·미·일을 엮는 본질은 군사동맹이며 무의 논리로서, 무단통치의 지속이자 확대라고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선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미동맹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가치동맹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한국인의 상식에 전면으로 배치되는 견해가 아닌가?
이병한 : 한국인들의 의식이나 지적 수준이 그렇게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는 아닐 것이다. 미국을 따라 한국군이 파병되었던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인권이 만개한 곳이 있는가? 자유민주주의? 일본의 집권당 이름이 자민당, 즉 자유민주당이다. 한국에도 한때 자유민주연합, 자민련이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는 딱 그 수준이라고 본다.
다만 그 실상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을 뿐이다. 나는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후세들이 그런 과정을 밟아온 것에 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였고, 더군다나 전쟁까지 경험한 분단국가이지 않았나. 생존에 급급한 나라였다. 다만 탈냉전 이후는 다르다. 이제 와서 일본과도 군사정보협정을 맺어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시키려는 것은 명백한 시대착오이며 역사의 역행이고 반동노선이다.
윤여준 : 그런 무단 통치와 달리 이에 반해 중국과 아시아는 중화세계의 근대화를 일구어서 과거의 상·하관계를 청산하고 대·소관계로 재편됐고, 어느 나라에도 인민해방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으며, 내정에도 직접 개입하지 못한다며, 이 엄청난 집단적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로부터 일본과 한국이 멀리 소외되어 있었다고 강조했는데?
이병한 : 냉전기를 보통 미소 냉전이라고 얘기한다. 미국이 동맹국을 관리하는 방식과 소련이 위성국을 관리하는 방식은 비슷했다. 미국의 군대가 아시아와 서유럽의 동맹국에, 소련의 군대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체제 또한 일방적인 이식에 가까웠다. 동유럽 정권은 모두 소련이 가서 만든 것이었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도 점령 이후에 '자유민주체제'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냉전기 때 그런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더불어 미소 냉전이 균열되어 갔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은 중국공산당 혼자 한 것도 아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들이 연안에서 함께 있었다. 항일 반제국주의 운동을 더불어 펼친 것이다. 국공내전 때도 그들이 함께 도와 국민당과 싸웠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만들어진 뒤에는 그 연장선에서 항미 전쟁, 항소 투쟁을 함께 펼쳤다.
이들 국가 간 관계는 미국-동맹국, 소련-위성국과는 달랐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정불간섭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도 아니고 동맹국이나 위성국 관계가 아닌, 근대적인 이념형에 부합하는 주권국가 간의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일환으로 전개된 것이 비동맹 운동, 제3세계 운동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서 완전히 빠져 있었다. 미소 주도의 냉전체제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이 중국과의 상하관계를 청산해갔던 집합적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다. 1991년에 한중수교를 했는데 그러한 50년 역사를 함께 경험하지 못한 채 중국과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뜬금없이 조공체제의 부활이니 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윤여준 : 상하 관계가 대소 관계라로 바뀐다고 해도 수평적 관계는 아니다. 대소가 곧 상하 관계가 아닐까?
이병한 : 국가 간에는 물리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소 관계가 곧 상하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거나 외교와 내정에 간섭을 하면 상하 관계가 된다. 1955년 반둥에서 선언한 평화공존 5원칙이 있다. 상하관계를 청산하고 대소관계로 재편된 이행기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윤여준 : 그 논리에 따르면 한미 관계는 상하 관계다. 이 박사는 미국과 중국의 차이를 왕도와 패도로 설명했는데 왕도와 패도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이병한 : 패도의 핵심은 나에게 좋은 것을 남에게도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것을 너희도 따르라고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최고니까 너희도 하라는 것처럼. 말로만 그치지도 않는다. 말 안 들으면 직접 가서 체제를 바꾸기도 한다. 이른바 '레짐 체인지'이다. 왕도는 그런 게 아니다. 설령 우리 체제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더라도 너희는 너희대로 하라고, 자력갱생하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쪽이다. 패도는 독선적이고, 왕도는 포용적이다.
윤여준 : 2000년대 이후 중국의 일부 학자들이 왕도사상, 천하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중에 화평굴기로 발전했다. 중국이 얘기하는 새로운 국제질서 이론이 설득력을 가진 것은 사실인데, 내부를 보면 다양성과 이질성을 용납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 가령 최근의 홍콩 사태도 그렇고 과거의 천안문 사태는 무자비하게 제압을 했다. 표방하는 왕도세계, 조화세계, 화평굴기와는 다른 태도다. 이런 것들로 인해 바깥에서 보면 중국에 대해 혼란스러운 인식을 하게 된다. 중국의 실체는 뭔가?
이병한 : 왕도정치는 여전히 국책 담론이 아니다. 민간의 신(新)유가들이 현재 공산당 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면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중국을 가리켜 왕도라고 말할 수도 없다. 지금은 의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능력이 없어서 왕도를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표방하는 국제질서를 주도적으로 건설하고 운영할 역량이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중국의 현재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고작 건국 70년, 한참은 더 성장해야 하는 신생국가이다. 과연 중국이 어떤 국가가 될 것인가 또한 건국 100년은 되는 2049년 전후에 판가름 나지 않을까. 미국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이 되는 데에도, 독립 이후 15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윤여준 : 한국사회의 중심을 잡는 분들은 이 박사 책을 읽으면 위험하다고 부들부들 떨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한미동맹에 대한 다수의 인식에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젊은층들은 숭미와 반미 사이에서 곤혹스럽다. 이들이 미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한다고 보나?
이병한 : 반미와 숭미는 동전의 양면이다. 미국 중심의 사고다. 무조건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쪽도 안쓰럽고, 미군만 떠나면 한국문제가 다 풀린다고 생각하는 쪽도 순진하다. 인식의 수준이 얕기 때문에 실력 양성을 안 하는 것이다. 숭미하는 쪽은 미국을 따라하고 따라가면 그만이다. 반미하는 쪽도 남 탓만 하고 있으니 공부가 게으르다. 앞으로 미국이 압도하던 시대는 저물어 갈 것이다. 미국 역시 앞서의 모든 국가들이 그랬듯 주요국들 중 하나 정도의 수준으로 하강할 것이다. 미국을 중국, 인도, 이슬람, 러시아 등 여럿 중 하나로 여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단극이 아니라 다극 가운데 일극일 뿐이다. 과대평가도 하지 말고, 과소평가도 하지 말자는 쪽이다.
윤여준 : 이 박사는 미국식 조공체제라고 했다. 나는 평소 제국주의 시대는 갔지만 제국은 있다고, 강대국은 다 제국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다 그렇다고 편하게 생각했는데, 이 박사는 미국은 식민지 없는 제국이라고 했다.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와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는 무슨 차이가 있나?
이병한 : 중국학자의 견해를 빌려온 것이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자꾸 조공체제가 부활한다 어쩐다 하는데, 실제로는 미국이야말로 냉전기를 통해 역대 가장 성공적인 조공체제를 제도화했다는 독법이다. 미국은 조공국들에게 자국의 시장에 대한 접근권과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고, 이 대가로 조공국들은 영토주권과 사법주권 및 정치주권 일부를 양도함으로써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우산의 혜택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승인을 받지 못한 국가(소련, 중국, 이란, 북한 등)들은 미국적 세계질서의 편입에 장애를 겪는 반면, '민주적 조공국'들은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동참하고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미국의 뜻을 반영함으로써 미국적 천하를 향유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작동하는 질서가 미국식 조공체제라는 것이다. 일종의 되받아쓰기, 되치기의 전략 쯤 되겠다.
호주의 일본사 연구자 개번 맥코맥은 일본을 가리켜 클라이언트 스테이트(Client State)라고 표현한다. 일본어로는 '속국'이라고 했고, 한국에는 종속국가라고 번역되었다.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태국 등이 비슷한 사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자면 북한이나 베트남이 중국에 하는 것을 보면 그쪽이야말로 주권국가로의 이행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도리어 '미국식 조공체제' 속에서 작동하고, 중국의 주변국들이 근대적인 국가간체제로 재편되었다는 역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중국과 패권 경쟁을 한다고?"
윤여준 : 일본은 근대로 들어오며 탈아입구를 내걸었다. 마치 아시아를 넘어선 선진국인 양 행세했다. 하지만 유럽의 중심국인 독일은 나치 만행에 대해 지금까지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 일본은 역사를 부정하고 교과서도 고치면서 독일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이 1996년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던 도중 '김 대통령과 나는 일제식민지 침략을 직접 겪은 세대다. 일본은 우리 앞에서도 그 역사를 부정한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후손들에게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흥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일본은 유럽 수준의 국가라고 허세부리면서 정작 유럽국가에게 본봐야 할 것은 안 한다고 생각하나?
이병한 : 흔히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서 일본을 비판하는데, 일면 수긍하면서도 편향적인 점이 없지 않다. '유럽 수준의 국가'를 상징하는 영국과 프랑스는 언제 제국주의를 제대로 사과한 적이 있던가? 영국이 인도에, 프랑스가 베트남에,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배상하거나 사죄한 적 있나.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당해서 여타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와의 경험상 낙차가 크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일본의 식민지 경험이야말로 예외적이었다. 그래서 독일과 일본만을 비교하는 것은 2차 대전의 승전국과 패전국의 위계 구도가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아 불편함이 없지 않다. 일본의 극우파처럼 제국주의 시절을 향수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이들이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역지사지로 일본의 꼬이고 뒤틀린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본과 아시아 사이의 문제가 전후에도 해결되지 못한 핵심 원인은 일본과 미국 사이의 주종관계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아시아가 항일전쟁에 승리하고 독립을 쟁취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했다는 피해자 의식이 너무 강하다. 그런 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가해자로서의 의식은 덜해진다. 일본-아시아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미국을 보태어 삼자간의 입체적인 관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윤여준 : 과거 일본의 극우 인사가 '우리는 태평양 전쟁에서 원자탄 두 방으로 진 것이 아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 적이 있다. 일본 극우의 본심이다. 아베 총리는 미국의 점령체제라는 전후체제 청산을 추구한다. 겉으로는 속국이지만 본심은 다른 것 아닌가?
이병한 : 아베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내걸어 평화헌법을 수정하고 정식으로 국군을 갖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친미이지만 내면 저 아래 깊숙한 곳에는 미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이 뿌리 깊다고 본다.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그랬듯이. 그래서 아베가 정말로 '보통국가'의 제도적 틀을 완성한다면 일본의 미래 또한 열린 과제가 될 것 같다.
일단 전후체제, 즉 점령체제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의 염원이 완수되고 난 이후의 행로는 그때의 일본국민과 지도자가 선택할 것이 아닌가. 독립국가의 제도적 기반이 없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표방했던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의 조기 몰락을 환기해본다면, 평화헌법 고수만이 만사형통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물론 당장은 억눌려왔던 극우파와 군국주의 세력의 준동이 몹시 우려되지만, 이 또한 20~30년의 호흡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윤여준 : 태평양 국가로 남으려는 미국 입장에서 일본이 그 포스트다. 미국 전략가들에게 재앙적 상황은 일본이 중국과 패권을 나누는 상황이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어서 그 가능성이 열린다면 미국이 그런 상황을 두고만 보겠나? 그렇게 되면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물러나 아메리카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병한 :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1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지금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대영제국의 군대가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군사력의 기반은 경제력이다. 미국의 경제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당분간은 그 비용을 동맹국들에게 전가하면서 지배체제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어떤 임계점, 분기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일지도 모른다. 최근 필리핀을 보면 미국의 말이 예전처럼 먹히지 않는 징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필리핀이 어떤 나라였나. 미국의 식민지이자 동맹국으로 백년을 넘게 지냈던 국가이다. 그 필리핀마저 조공국/속국에서 탈피하여 주권국가로 이행하는 흐름이라면, '미군 없는 아시아'는 '도둑처럼' 올지도 모른다. 이미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군 철수를 공공연히 표방하는 후보도 등장했고….
윤여준 : 동북아에서 중국이 굴기하고 일본이 보통국가가 된다면 중일 간 패권경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동북아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이병한 : 중국과 일본의 패권 경쟁도 동북아만 보고 하는 생각이다. 하노이에 살면서 만났던 베트남 지식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과거에는 자기들이 중화세계의 넘버 투였다고 얘기한다. 18~19세기에 베트남이 조선이나 일본보다 더 컸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미국과 전쟁하느라 당장은 뒤처졌지만, 앞으로는 만만치 않은 나라로 성장해갈 것이다. 도이모이 정책을 실시한 것이 1986년이었으니, 겨우 30년 지났을 뿐이다. 이미 인구가 1억이 넘었고 20~30대가 전체 인구의 40%다.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 중인 일본에 비하자면, 앞으로 30년, 한 세대 후에 어떻게 될까? 이 역시 열린 과제이다. 다시금 지도를 좀 더 크게 펼치고 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자면 장차 일본이 어떻게 중국과 패권 경쟁을 하겠나. 지난 20세기처럼 10배 이상 더 큰 나라와 패권 경쟁을 했다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난세의 모습이다. '대국은 대국답게, 소국은 소국답게'가 치세의 방편이다. 동북아 공동체, 혹은 동아시아 공동체 또한 중화세계에 면면했던 치세의 논리를 회복해 가느냐, 아니면 지난 20세기처럼 유럽형 국제질서 안에서 경쟁과 각축을 지속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런 얘기를 하면 종종 '친중파'라고 비판받고는 하는데, 나는 '친중파'가 아니라 '친천하파'이다. 천하위공을 으뜸의 가치로 세운다. 내 나라와 내 민족만을 앞세우지 않고, 천하를 염려하며 제 나라를 단속하고 제 민족을 다독이는 공부와 수련을 동아시아의 모든 구성원들이 다시 시작할 때,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남 것 흉내내기, 새 것 따라하기는 이제 그만두고 옛 공부를 다시, 새롭게, 다함께 해보자는 것. 그래서 첫 책의 제목 또한 <반전의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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