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부의 홍보와는 달리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복지 예산은 일부 사회 보험 재정의 자연 증가분이 늘어났을 뿐이다. 오히려 일반 예산으로 해결해야 할 복지 사업들은 통제하고 축소하는 편성이다.
특히 정부는 보건복지부 예산을 올해보다 3.3%포인트가 증가한 57조7000억 원으로 편성했는데, 국민연금 기금 등 사회 보험 재정의 기금 지출이 6.4%포인트 증가했을 뿐, 보건복지부의 일반 예산은 고작 1.2%포인트의 증가에 그쳤다. 그 또한 기초 연금과 기초생활보장 급여 등의 자연 증가분이 있을 뿐이어서 실제적으로는 동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년 보건복지부는 맞춤형 복지 강화와 저출산, 고령화 사회 대비 지원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세부 사업별로 보면 기초생활보장 생계 급여가 약 3조6191억 원이고, 기초 연금 수급자가 498만 명으로 증가해 기초 연금 예산이 약 8조961억 원으로 편성되었다. 이렇듯 예산의 자연 증가분이 반영되어 있을 뿐,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새로운 복지 정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 복지 예산은 동결과 축소 기조
장애인 예산에서도 정부의 복지 예산 동결과 축소 기조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장애인 정책국의 2017년 예산은 약 1조9413억 원으로 올해보다 약 1.7%포인트만이 증가했다.
대표적인 소득 보장 정책인 장애인 연금과 장애인 수당 예산을 살펴보자. 내년 장애인 연금과 장애인 수당은 각각 수급자 수를 약 5000명과 1만4000명 늘려 약 5550억 원, 1282억 원으로 약간씩 증액되었다. 그러나 장애인 연금의 기본 급여액 단가는 20만5200원에서 단 200원만을 인상해 그야말로 중증 장애인의 생계 보장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장애인 연금은 중증 장애인 중 하위 소득 70%에 해당하는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제도인데 여전히 연금액 수준이 낮다. 장애인으로서 절대 빈곤층에 속해 기초 생활 보장 급여를 받는다 해도 장애인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는 많이 부족한 금액이다. 장애인 연금과 장애인 수당이 중증 장애인의 소득 보장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아직 매우 큰 거리감이 있다.
사회 서비스인 중증 장애인 활동 지원도 원활한 돌봄 서비스로 자리 잡기에는 예산이 불충분하다. 중증 장애인 활동 지원은 수급자를 올해 6만1000명에서 6만3000명으로 늘려 156억 원 증액된 5165억 원을 편성했다. 이에 대해 장애인계에서는 숫자상으로는 증액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결 내지 삭감되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중증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은 장애인들의 대정부 투쟁으로 2007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되어 현재 중증 장애인의 일상생활 지원을 위해 활동 보조 인력을 파견해주는 사업이다. 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이를 통해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어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활동 지원 인력 또한 사회 서비스의 돌봄 노동자로서 적절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2016년 현재 수급자 6만1000명, 지원 인력 5만4000명, 제공기관 920여 곳, 약 5000억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문제는 활동 지원 바우처 수가가 9000원으로 비현실적인데, 이번에도 기획재정부에서 동결시켰다는 점이다. 1시간당 활동 지원 수가 9000원으로 활동 지원인의 시급, 각종 수당, 퇴직금과 중계기관의 4대 보험 사업자 부담분, 운영비까지 모두 해결해야 한다. 그 결과 활동 지원 현장에서는 최저 임금보다 적게 지급한다든지,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못한다든지, 활동 지원 인력과 중계 기관이 갈등을 일으킨다든지, 활동 지원인 및 장애인을 한 기관이 아닌 2, 3개 중계 기관으로 나눠서 서비스를 하는 등 활동 지원 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활동 지원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약 10%포인트 인상을 요구하였지만 기획재정부가 국가 재정 전략에 의해 일률적으로 복지 예산을 통제한 결과이다.
장애인 의료비 예산은 약 10%(약 24억 원) 감액된 216억 원이다. 명목상 지원 인원은 8만5320명으로 올해보다 늘었지만 실제 지원 단가가 줄어 장애인 의료비 지원은 매우 큰 폭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2017년은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 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건강 검진 및 장애인 의료비 지원 등 당사자의 요구가 높은 정책에 예산 편성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도 4.5%(약 32억 원)를 감액하여 677억 원으로 편성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형 일자리인 주민센터 행정 도우미 장애인 약 1500여 명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해 예산을 절감하려는 것이다. 그나마 장애인 일자리 사업 중 중증 장애인에게 근로 기회를 주어 어느 정도 업무 능력을 배양시켜주는 행정 도우미 일자리를 다시 더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내모는 계획이다. 이는 장애인에게 고용을 통한 최선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무색케 하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들이 일반 노동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직무 훈련을 시킨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직무 훈련을 통해 임금이 적더라도 일반 노동시장의 노동 강도와 조건에 맞춰 장애인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켜야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일자리를 또 다시 시간제 노동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러면 다행히 타 직장에 고용된다 하더라도 보조 인력 등으로 배치될 개연성이 크다.
결국,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가 많은 소득 보장, 사회 서비스, 건강권, 일자리 등의 사업에서 2017년도 예산 편성은 동결과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복지 예산에 불어 닥친 재정 관리 및 통제의 칼날이 장애인 예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복지 예산의 통제 기조에서 박근혜 정부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사회 구현" 비전으로 시작한 제4차 장애인 정책 종합 계획은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장애인 정책 종합 계획은 어디로 갔나?
박근혜 정부는 장애인 정책 종합 계획의 탈시설 자립 생활 지원 정책 기조를 지녀 왔다. 그런데 내년 예산안에서 장애인 거주 시설 운영 지원은 181억 원이 증액된 4551억 원이다. 시설의 입소 인원을 올해 2만4766명에서 2만5136명으로 늘리고 지원 단가도 인상하겠다는 것이 예산 증액 편성의 이유이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원 단가를 높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정책의 중심 기조가 탈시설 자립 생활 지원으로 바뀐 상황에서 시설 거주 장애인의 수를 늘리는 것은 시대의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일이다. 한 명이라도 시설에서 나와 지역에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시설에 새롭게 입소하는 장애인의 수를 최소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
반면 장애 아동 가족 지원 예산 약 4000만 원이 감액된 739억 원으로, 사업이 동결 내지 축소되었다. 발달 장애 아동들을 위한 재활 서비스 지원과 언어 발달 치료 바우처 예산이 동결되고, 장애 아동 가족의 양육 돌보미 사업도 일부 감액되어 약 82억 원이 편성되었다. 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에 대한 양육, 육아 지원은 장애 아동 양육의 부담이 있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업이다. 이러한 중요한 정책을 체계적인 비전 없이 수행한다면, 양육의 부담이 쌓인 가족들이 다시 장애 아동을 생활 시설에 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 발달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와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발달 장애인지원 예산 또한 오히려 전년 대비 약 9.3%인 9억 원이나 감액되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15년 시행됨에 따라 공공 후견 지원과 발달 장애인 지원 센터 지원 등의 정책 사업을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은 정책적 지원이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 장애인을 지원하는 예산 편성까지 축소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발달 장애인을 위한 정책 개발과 적절한 지원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발달 장애인들도 같은 사회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시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 차별 금지 모니터링 및 인식 개선은 '장애인 복지법'의 개정으로 장애인인권 침해 예방 센터(장애인 권리 옹호 기관)가 2017년부터 지역에도 설치해야 함에 따라 그 운영 지원 예산이 증액되어 약 20억 원이 편성되었다. 그나마 장애인 인권 침해 예방이나 차별 해소를 위한 의미 있는 예산 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한국의 장애인 예산
한국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국 중 장애인 예산 최하위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장애인 예산의 확충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지난 5, 6년간 OECD 회원국 평균 4분의 1인 한국의 장애인 예산을 대폭 늘려달라는 장애인계의 요구에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 왔다. 심지어 2017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예산 편성은 통제와 통폐합의 기조에 서 있다.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게 굳이 장애인 예산의 대폭 인상을 요구해봤자, 매년 정부의 입장은 똑같을 뿐이다.
그렇다면 장애인계에서는 효과성이 없는 소모적인 장애인 예산 확충 운동보다는 다른 방식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쯤에서 장애인계의 뜻을 모아 획기적인 제도의 변화를 정부에 제안하는 것이 장애인의 삶의 질 변화와 정책의 발전을 위해서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몇 가지 장애인 정책의 제도 변화를 제안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 인지 예산 제도를 도입하자. 장애 인지 예산은 성 인지 예산 제도와 마찬가지로 예산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여 자원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의 배분 구조와 규칙을 수립하는 제도이다. 즉 정부의 정책 도구인 일반 정책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장애인/비장애인의 형평성과 효율성을 반영하는 배분 규칙을 적용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보편적인 정책 사업에 장애인에 대한 배분이 평등하게 이루어졌으므로 대부분의 장애인 예산은 국민을 위한 일반 정책 예산에 포함될 것이다.
둘째, 현재 5년마다 설계되는 장애인 정책 종합 계획을 더 장기적으로 전환하여 장애인 정책의 근간을 다시 만들어 보자. 현재도 장애인 정책 종합계획은 정부마다 새롭게 수립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복지 정책은 당사자의 요구나 사회적 기대에 따라 일회성 땜빵식 정책에 머물러 장애인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는 10년, 20년을 목표로 하는 장애인 정책 장기 계획을 세우고 정부마다 세부 정책 계획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시급한 장애인 복지는 특정적인 예산으로 지원하자. 예를 들어, 발달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매우 시급히 해결해야하므로, 특별 예산이나 기금 등을 설립하여 단기간 발달 장애인의 지원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인권의 차원에서 긴급하게 지원해주고 그 이후는 보편적인 국민으로서 장애 인지 예산 제도를 적용한다면 장애인으로서의 차별과 인권 침해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정부의 장애인 복지 예산안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내년에도 더욱 뚜렷해진 정부의 복지 예산 통제는 장애인들이 국가 정책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정부는 다시 한 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사회 구현"이라는 제4차 장애인 정책 종합 계획의 비전을 상기하기 바란다. 박근혜 정부가 세운 계획의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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