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장관은 1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 장관 회담 모두발언에서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임해야 한다"며 "시급히 필요한 것은 그들이 현재 상황에서 (핵 실험을) 동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북한이 동결에 동의하고, 더 이상의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으며, 특히 더 이상의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케리 장관은 또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접근과 관련, 국제사회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 우리는 북한과 마주 앉아 불가침과 한반도 평화, (북한의) 국제사회 동참, (대북한) 지원과 경제발전 이슈 등을 다룰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언급해왔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핵 동결을 대화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와 압박이 강화되는 가운데 대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 발언을 두고 미국이 대북 제재에서 대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 이날 3국 외교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제재뿐만 아니라 각 국가가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제재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대북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제재 일변도를 추구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오바마 정부를 비롯해 미국 일각에서 핵 동결로 시작하는 대화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의 대외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외교협회(CFR)는 토론회를 통해 마이크 멀린 전 합참의장과 샘 넌 전 상원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CFR 대북 정책 태스크포스(TF)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TF팀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규정하면서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역시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지난 10일(현지 시각) 사설을 통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서 유일하고 실질적인 목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전면적인 폐기가 아니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일차적인 정책 목표로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국무장관과 학계, 언론 등이 마치 입을 맞춘 듯이 북한의 핵 동결을 현실적 목표로 간주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제재와 압박만을 강조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케리 장관이 이전에도 이러한 발언을 했다면서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일 정부 당국자는 미국의 핵 동결 발언과 관련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대화의 조건(핵 동결)을 이야기하는 순간 북한은 제재 국면이 바뀐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몸값을 올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북한의 태도 변화는 있을 수 없다"며 핵 동결로 대화에 들어갈 수 있다는 케리 장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그는 "정말 대화를 한다면 같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 지금 목표가 다른 상황에서 대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1994년부터 핵과 관련한 대화를 했지만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 것은 (북한과 다른 국가들 사이에)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