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누룩은 모할라꼬? 술 담글라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누룩은 모할라꼬? 술 담글라꼬?"

[귀농통문] 누룩막걸리 만들기

'누룩'을 '만들다'니! '누룩'은 '띄워야'지, 아무렴

가만히 보면 요즘 사람들은 늘 먹는 김치나 된장마저 아무렇지 않게 '만든다'고들 한다. 김치, 된장을 만들다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김치, 된장을 만들어서야 어디 김치, 된장에 담뿍 배인 '감칠맛'을 제대로 낼 수가 있나. 김치, 된장은 마땅히 담가 먹어야 맛있다.

아참! 그렇지. 언젠가부터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걸 사 먹기도 하지. 된장처럼 '만든 된장'을 된장이라고 사 먹기도 하지. 에구, 그래서 된장이랑 김치를 만든다고들 하나 보네. 다른 것도 아니고 '누룩'을 '만든다'고 하기에, 그 말도 바로 잡고 싶고 누룩 띄우는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싶었다.

▲ 집집이 누룩을 띄워 막걸리를 만들던 때는 지났다. 막걸리의 효능은 현대인에게 익히 알려졌으나, 막걸리를 '담가' 먹기보다는 '사서' 먹는다. ⓒ연합뉴스

누룩과 막걸리

이따금 자기 집에서 직접 술 빚어 잡숫는 분들을 만난다. 수년 전에는 변산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문턱 없는 밥집'에 갔다가 모처럼 누룩향내가 물씬 나는 옛날식 막걸리도 마셔봤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조금도 넣지 않은 깨끗한 막걸리다. 감미료에 길든 입에는 조금 텁텁하고 밋밋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약주라서 마시는 동안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고 뒤탈 없이 깔끔하게 술이 깬다.

경기도 양수리 유기농카페 '두머리 부엌'에서도 누룩으로 담근 '연 막걸리'를 판다. 한 달 전에는 직접 누룩을 띄워서 술을 빚어 파는 막걸릿집도 생겼다. 친정엄마가 가까운 시우리에서 30여 년 동안 막걸리를 담가서 팔다가 이제 큰딸이 물려받아서 운영한단다. 그런데 옛날식으로 누룩을 띄워서 담근 술이라고 하는데도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담근 막걸리 맛이랑은 좀 다르다. 누룩내도 덜 나고 뒷맛이 달짝지근하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추느라 그런 것 같다.

식초를 직접 담가 먹는 사람들도 늘었다. 어릴 때 부뚜막에서 쉰 막걸리를 병에 담아놓은 걸 본 적이 있다. 병 주둥이에 솔잎을 꽂아 공기가 통하게 두면 맛있는 식초가 된다고 했다. 그걸로 오이냉국을 하면 누룩향이 조금 나면서 너무 시지 않고 맛있는 냉국을 해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빙초산이 나왔다. 식당에서 너도나도 죄다 그걸 쓰니 오이냉국을 한 숟갈 뜨면 너무 시어서 얼굴부터 찌푸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술이나 식초는 직접 담근다고들 하는데, 정작 누룩은 사서 쓴다고들 한다. 거기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누룩 빚는 사람들도 없는지 거의가 시골 장터에서 파는 중국산 누룩을 사다 쓴다고들 한다. 나야 아직 술을 직접 빚어 본 적이 없어 누룩이 술맛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술을 직접 담근다면서 누룩을 사다 쓰는 건 뭔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띄운 걸 사다 하면 어느 집이나 술맛도 비슷할 것 같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집에서 띄운 누룩으로 술을 빚던 예전에는 집집이 술맛이 조금씩 달랐다. 공장에서 나오는 누룩들도 있지만 지금은 '우리밀농사'를 짓는 귀농인들이 통밀을 갈아 누룩을 재미삼아 조금씩 띄우는 모양이다. 변산공동체에서도 우리밀 누룩을 띄워 판다.

누룩이 뭘까?

어릴 때 자연 시간에 곰팡이를 배운 적이 있다. 우리가 배운 곰팡이 종류 가운데 유일하게 마음 놓고 먹어도 되는 착한 곰팡이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누룩곰팡이다. 단백질과 지방을 만나면 몸에서 소화하기 좋게 단백질과 지방을 잘게 분해하고, 탄수화물과 당분을 만나면 잘 소화할 수 있게 포도당으로 바꿔주는 좋은 곰팡이다.

누룩곰팡이는 쌀, 보리, 콩, 옥수수, 조, 귀리, 호밀 같은 곡식 가루들과 물, 알맞은 습도와 온도를 만나면 공기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공기 가운데에서 한 가지 곰팡이만 붙는 게 아니라 조건에 따라 그때그때 희거나 노란 여러 가지 빛깔과 성질을 띄운 누룩곰팡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긴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누룩곰팡이가 음식물과 함께 몸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몸에 면역력을 길러주고 소화를 도와준다. 누룩은 이 누룩곰팡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먹이와 조건이 되어주는 누룩곰팡이 집이며 동시에 누룩곰팡이가 모여 사는 누룩곰팡이 덩어리다. 우리가 잘 아는 메주도 이 누룩곰팡이 덩어리다.

누룩과 곡식이 만나면

어릴 때 학교 다녀오면 대청마루에서 엄마가 하얀 밥 수건으로 싼 양재기(양은 그릇)를 돌려가며 발로 꼭꼭 밟던 걸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누룩 빚는 장면이지 싶다.
우리 엄마는 막걸리 담는 솜씨가 무척 좋았다. 엄마가 담근 막걸리를 잔에 따르면 뽀야면서 맑은 게 그릇에 찰랑찰랑했다. 단 걸 넣지 않았는데도 뒷맛이 조금 달았다. 그 단맛이 감미료를 넣은 단맛과는 아주 달랐다. 누룩과 고슬고슬한 고두밥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단맛이다.

엄마가 담근 술이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동네술꾼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었다. 그때는 집에서 술을 담그면 형사들이 들이닥쳐 마음대로 술을 담가 먹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엄마가 없는 살림에 술을 팔아 자식들 학비라도 보태려고 어렵사리 쌀 한 가마니를 구해 술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술을 담가 놓으면 아버지가 술친구들을 잔뜩 데려와 독 채로 바닥을 내버렸다. 그날도 그랬다. 아버지가 술을 홀랑 바닥을 내버려 속이 있는 대로 상한 엄마한테 아버지 동네 술친구 가운데 한 아저씨가 직접 키운 토종꿀을 한 병 들고 꺼떡꺼떡 왔다. 엄마가 담근 막걸리랑 바꿔 먹자고 온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 보태려 담근 술인지라 초등학생인 어린 내 눈에도 그 아저씨가 참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아무리 속상해도 남한테는 큰소리 한 번 안내던 엄마가 그때 처음 벌컥 성을 내셨다.

"○○아재요, 우예 그래 시근머리도 없능교? 아재 눈에는 이기 술로 보이능교? 퍼떡 돌아가소 마."

손에 꿀단지를 든 채로 아저씨는 얼굴이 빨개져 슬그머니 되돌아갔다. 그 뒤로 그 아저씨는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막걸리 마실 때마다 어릴 때 엄마가 담가 준 막걸리 맛이 늘 그립다. 그래서 언젠가 꼭 막걸리를 내 손으로 담가 보는 게 소원이다. 시원한 막걸리도 그립지만 엄마가 해준 맛있는 막걸리 빵은 더더욱 그립다. 별로 달지 않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던 빵. 먹고 나서도 생목이 오르지 않던 참 맛있는 빵이었다.
누가 하도 옛날 생각이 나서 막걸리를 사서 빵을 직접 쪄 보았는데 옛날 그 맛이 안 나더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막걸리를 어떤 걸 사서 했어요?"
"아, 그냥 마트에서 샀어요."
"'누룩막걸리'였어요?"
"누룩막걸리요? 아, 아니요. 그냥 '생막걸리' 사다 했어요. 생막걸리여야 된다고 해서요. 하하."
"맞아요. 효모가 살아 있어야 하니까 생막걸리로 해야죠. 그런데 그건 누룩막걸리가 아니잖아요. 아마 누룩보다는 이스트가 들어간 걸 거예요. 누룩 냄새가 안 나서 그랬을 거예요. 요즘은 마트에도 누룩막걸리 나온 게 있던데요. 어릴 때 엄마들이 담근 막걸리는 누룩 넣고 담근 막걸리잖아요. 막걸리가 다르니까 빵 맛도 다를 수밖에요."
"아, 누룩막걸리! 맞아요.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네요. 아, 그럴 수 있겠군요."

가루는 토종 밀가루를 썼다지만, 밀가루 맛도 어릴 때 먹던 밀가루 맛이랑은 다른 것 같다. 재료들이 다르니 빵 맛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우리 엄마 나이가 올해 아흔셋이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꼭 한번 술을 담가봐야 하는데 싶어 조바심이 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집에 갈 때 누룩 빚는 것만이라도 짬짬이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 말고도 술을 담가보셨다는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붙들고 물어도 봤다. 메주만 있으면 간장 된장 담그는 게 어렵지 않듯이 누룩만 있으면 술 담그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하니 말이다.

누룩은 주로 장마철에 띄운다고 한다. 장마 때는 애써서 습도랑 온도를 맞추지 않아도 누룩이 잘 떠서 한꺼번에 누룩을 띄웠다가 잘 말려서 두고두고 필요할 때 꺼내 썼다고 한다.

내 손으로 직접 누룩을 빚고 띄워보고 이 글을 쓰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장마 때를 놓칠까 봐 부랴부랴 그동안 모아둔 글부터 올린다. 이글이 조금이라도 누룩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다.

누룩 빚고 띄우기

먼저 '누룩 빚기'부터 들어간다. 엄마한테 받아 들은 그대로 올린다. 엄마가 담그는 걸 눈으로 보기만 해도 좋겠는데 그럴 형편이 못되니, 그저 이야기로만 그림을 그려본다. 된장찌개든 동치미든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보면 똑같이는 맛을 못 내도 비슷하게는 되니까 말이다.

엄마가 슬슬 들려주는 말속에는 정보뿐 아니라 '말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 엄마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 사람이다. 외할머니도 영산 사람이다. 우리 엄마 음식 솜씨에는 외할머니 솜씨가 많이 녹아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도 나처럼 직접 해보기보다는 시집오기 전에 외할머니가 하시는 걸 눈으로 본 게 다다. 물론 나보다야 훨씬 더 자주 보고 자세히 보았겠지.

엄마가 들려준 이 감칠맛 나는 말들을 표준말로 바꿔 버리면 엄마 말 속에 든 말맛이 사그리 날아가 버린다. 누룩도 막걸리도 엄마가 들려준 말대로 해보면 엄마랑 똑같이 맛은 못 내도 비슷하게는 되겠지.

"누룩은 모할라꼬? 술 담글라꼬? 누룩은 밀로 한다 아이가. 보리로 안 해. 밀을 방앗간에 들고 가든지, 맷돌로 하든지 슬슬 타갠다 아이가. 그래가 물을 섞어가 꾹꾹 눌러가매 둥글납작하게 뭉치. 그래가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그로 꾹 밟아. 그래 설렁설렁 말라가 뜨뜻한 데 모다 놓고 이불로 덮어 씌와가 띄운다 아이가. 그라마 노르스름한 기가 뜬다. 그래 그거를 말라 놨다 필요할 때 꺼내 쓰제."

이 부분은 엄마한테 처음 들은 말이다. 이 말만으로는 좀 모자라 그다음에 엄마를 만나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밀로 방앗간에 들고 가가 가루를 드르르 갈아서 물 옇고 반죽해 가… 송편 반죽 맨키로 고 정도가 좋은데…. 지푸득 한 데다 주물러 가꼬, 밥 수건 그런 데다 싸가지고 발로 꼭꼭 누질라마 가운데가 쪼매 들어가그로(한 5센티미터) 하면, 동그라히 하든지 네모나게 하든지, 너무 깊게 하도 말고 눌렀다 떼면 안 떨어지나. 가운데가 너무 얇으마 뽀사진다 아이가. 밀가루도 옇고 하마 안 차지나. 그래 갖고 삐득삐득 마르거든 띄와야지.

뜨끈뜨끈한 방에 이불 같은 거 덮어가지고 밑에도 깔고. 짚 같은 거 깔면 되그로. 너무 뜨겁어도 안되고 마치 맞게. 너무 말라지 말고. 메주맨키로 가운데부터 노랗게 뜨니라. 그래 그거를 맡으마 누룩내가 막 나니라. 보릿겨 섞지 말고 집에서 안 기르드나. 밀을 갈아갖고 애밀(지다란 것, 호밀)로 하면 달고 좋아. 누룩도 잘 뜨고 술 담가도 좋고. 말라가지고 술 할라면 덩거리 없이 절구에 뽀사가지고 고두밥 해서 물 붓고 흥건하게 섞어서 한 이틀 있으마 복작복작 소리가 난다. 술내가 난다. 폭 삭아야 한다. 그래가 익하가 삭으마 바깥에 내놓고 걸러가… 많으면 용수를 박아가 말가히 노르무리 안 고이나. 그래 그거를 떠 가지고 병에다 담든지 안하나. 그게 맛있다 아이가. 약주라 안 카나. 양이 적으마 막 걸러가 막걸리 하고. 동동주 할라마 담간 거를 물로 치대서 맑은 물이 한 그릇 차거든. 고두밥을 해서 국물에 개 놓는다 아이가. 술 담근 거 하마 물로 더 부어갖고 안 하나. 그래 해놓으마 맛있다 하고 모다 안 그래쌓나."

"지금도 환하다. 지금도 누룩만 있으마 할라카마 한다 아이가. 조선밀은 키가 짜르고 모양이 안 다르나. 색이 누리무리하지. 밀은 아무 밀도 괘얀아. 밀가루 빼지 말고 그대로 그냥 하마 된다. 보리 갖고는 안 해 봤어. 노르무리 뜨마 술 냄시 같은 기 난다. 좋다. 누룩은 차곡차곡 말라서 쌓아두면 된다. 술이 익으마 들다 보면 코가 찡한 기 맛있는 내가 나는 기 술내가 나니라. 그라믄 된 거야. 그라믄 밥이 폭 삭는다 아이가. 술 담가놓으마 순사들이 뒤비러 온다. 야매로 한다 캐서 다 뺏긴다 아이가. 몰래 하고 안 그랬나. 나는 보리가 하는 건 안 봤어. 옛날 할무이도 보면 가루는 체에 치가 내리가 수제비 해묵고 찌끄러기 그기로 하대."

여기까지는 엄마가 들려 말이고 다음 말은 우리 절에 지역회장님이신 풍경숙 보살께서 들려주신 말이다. 풍 보살님은 나이가 여든쯤 되셨는데 친정어머니가 황해도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풍 보살님 말투에도 황해도 말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풍 보살님이 들려주신 방법도 엄마가 하던 방법이랑 별 차이는 없지만 또 다른 느낌과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된다.

"누룩은 7월(음력 7월)에 띄우잖아. 비도 많고 날이 더우니까 누룩이 잘 떠. 통밀이 있으면 좋은데 밀을 구할 수가 없어. 껍질 뱃기지 않은 거야 돼. 껍질째 맷돌로 거칠 게 빻아서 물로 개어. 됫박 같은 데 넣고 꼭꼭 밟아서 가운데가 오목하게 눌러. 가운데가 너무 얇으면 부서지니까 한 5센티미터 두께로 밟아. 마루에 쑥대를 깔고 켜켜이 늘어놔. 한 일주일 자면 누룩내가 술술 나. 누룩 익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지. 반죽할 때 쌀뜨물(웃물)을 붓기도 하고 햇보리(겉보리)를 갈아서 섞어도 좋아. 호밀도 좋고. 호밀도 잘 떠. 호밀로 띄워도 맛있어.

가루 갤 때 강원도에서는 옥수수가루로 해. 고급술은 쌀을 갈아서 쌀 물을 붓기도 해. 고두밥이랑 누룩 섞어서 뜨뜻한 데 두면 복작복작 소리가 나면서 끓어. 끓으면 익는 거야. 노랗고 말간 게 웃물이 뜨는데 그게 '청주'야. 제일루 맛있지. 그리고 용수를 눌러 박아. 용수에 말갛게 고이는 게 '동동주'야. 남은 걸 치대서 막 걸러 낸 게 막걸리지. 국물이 뽀얀 게 탁하잖아. 그래서 '탁주'라고 했어."

"막걸리가 웰빙식품이래. 진짜 웰빙이 되려면 누룩으로 빚어야지. 그래야 진짜 옛날 맛도 나고 속도 편해. 그건 머리도 안 아파. 효소거든. 옛날 어르신들 말씀마따나 '약주'지. 요즘 건 아스파탐인가 하는 걸 넣어서 막걸리가 달짝지근 하잖아. '술약'이라는 거, 이스트 넣어서 빨리 익힌 거야. 그래서 머리 아파. 옛날 술이 어디 그렇게 달았어? 텁텁한 게, 누룩 냄새도 나고 그랬지. 요즘처럼 날 더울 땐 잘 시었지. 우리 엄마는 그걸 병에 담아서 식초 담가서 먹었어. 그게 쌀 식초지 뭐. 현미로 하면 현미식초구. 흑 식초라는 거지. 되게 시어. 감식초보다 더 시어."

"옛날엔 우리 집에 술이 안 떨어졌는데…. 난 술 잘 담갔어. 내가 담근 술이 맛있다구 그랬어. 지금도 눈에 선해. 누룩만 있으면 지금도 담가. 집에서 술 담그면 술집에서 자기네들 술 많이 못 판다고 찌르고들 그랬지. 시골에서는 농사일하려면 막걸리가 떨어지면 안 돼. 더운 날 땡볕에서 일하다가도 나무그늘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야 힘이 나서 일하지. 안 그러면 일 못 해. 배도 든든하고, 갈증도 가시고, 기분도 좋아져서 더위도 잊고 일했지."

"우리 집에서 누룩 빚는데 면 직원들이랑 순사들이 닥쳤어. 누가 찔렀지 뭐. 햇보리, 햇밀 나오면 그때는 누룩을 한 가마니씩 띄웠어. 우리 할아버지가 버럭 성이 나서 한 가마니나 되는 누룩을 다 걷어다 똥간에 죄 집어던졌어. 증거가 없는데 뭘 가지고 트집을 잡을 거냐고 하시면서 말이야. 면 직원이랑 순사들이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돌아갔지. 아이, 지금 생각하면 그 누룩 아까와 죽겠어. 누룩이 잘 떠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는데 말이야."

누룩만 있으면!

한평생을 온전히 몸으로 살아오신 어르신들 말씀은 우리처럼 머리로 산 먹물들이 하는 말들과는 참 다르다. 괜스레 빙빙 둘러가는 일도 없고 군더더기도 없다. 간결하다. 그래서 기억하기도 더 쉽다.

나처럼 술 잘 못 마시는 사람도 요즘같이 더운 날은 엄마가 담가 준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간절하다. 지금도 한여름에 엄마랑 12살 많은 우리 언니 둘이서 커다란 시루에 고두밥을 안치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고두밥을 보자기째 꺼내 평상에 펼쳐놓고 커다란 주걱으로 펴고 부채질로 고슬고슬하게 식히는 모습이 문득문득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빨리, 쉽게 술을 익히려고 이스트를 넣거나 카바이드를 쓴 우리 건강보다 셈이 앞선 얕은 술이 전혀 아니다. 정말 곧이곧대로 정성을 다해 착하디착하게 담근 약술이었다.

요즘에야 쌀이 달리는 세상도 아니고, 집에서 술 빚는다고 순사들이 밀어닥치는 세상은 더더구나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술을 집에서 담가 먹을 수 있다. 누룩만 있으면!

나는 조만간 내 친구들한테 내가 담근 진짜 옛날 막걸리 맛을 꼭 보여주고 싶다. 입에서는 달지만, 마시고 나서 머리 아프고 속 쓰린 막걸리하고는 다른 술 말이다. 이제껏 나를 아껴주고 어여삐 보아주신 어르신들한테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기분 좋게 늙어갈 수 있도록 내가 빚은 약주를 단 한 번이라도 정성껏 대접하고 싶다. 청주나 동동주도 마찬가지다. 소주도 그렇다. 일꾼들이건 학생들이건 누구한테든 마시면 갈증도 삭 가시고 힘 불끈 솟게 하는 진짜 '약주'를 맛보여주고 싶다. 아이들한테는 맛있고 몸에 좋은 막걸리 빵을 꼭 선물하고 싶다.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오면 좋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귀농통문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