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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서 '6학년 농사'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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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서 '6학년 농사'를 짓다

[귀농통문] 귀농을 말하다·①

새벽 4시. 눈이 반짝 떠졌습니다. 시계를 보고 왜 이런 시간에 깼는지 궁금해했지요. 깜박깜박 눈꺼풀이 몇 번 움직이는 동안 열린 창문을 통해 가만히 귀 기울여야 겨우 들릴까 말까 한 나지막한 빗소리를 알아들었어요.

아, 저 소리에 잠에서 깬 거로군. 전 같으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텐데, 이제 저에게 빗 소리, 바람 소리, 눈 쌓이는 소리는 잠결에도 눈이 반짝 떠질 만큼 아주 중요한 소리가 되었나 봐요. 조금씩 굵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로메인 상추를 따긴 힘들겠단 생각을 했어요. 가랑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있었고, 그 소리를 핑계로 이불 속에서 꼼지락 꼼지락 게으름을 피우며 다시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뚝! 비가 그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아마 이 땅의 농사짓는 모든 농부의 귀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할 시간임을 알리는 그 소리에 몸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나 눈곱을 떼고 집을 나섰지요. 순식간에 하늘은 맑아져 있고, 아직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대기는 상쾌한데, 벌써 초록초록 말간 논들을 지나 자그마한 제 로메인밭에 도착했어요.

▲ 밭에 막 심은 로메인(상단 왼쪽)과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상단 오른쪽) 및 피클오이(하단). ⓒ최효정

제 밭이 있는 곳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입니다. 국민의 70퍼센트 이상이 반대했던, 전 국토를 하나로 잇겠다며 대운하를 건설하려 했던 저 '4대강 사기극'. 이 때문에 오랜 동안 농사지어 오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두물머리의 농부들. 이 농부들이 쫓겨난 후 마련한 밭의 한쪽에 제 쪼그만 밭이 하나 있습니다. 유기물이 풍부하고 비단결처럼 고운 두물머리의 흙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배수도 잘되고 몇 년 동안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며 조금씩 비옥하게 만들어놓은, 올봄 농민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갈고 심고 가꾼 밭입니다.

우리가 '부용밭'이라 부르는 그곳의 절반 정도 되는 밭을 저를 포함한 4명의 농부가 공동으로 농사짓습니다. 감자를 심고 거둔 후 지금은 한참 쭉쭉 뻗어 올라가는 강황, 슬금슬금 팔을 뻗어 영역을 확장하는 고구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예쁜 땅콩, 우산으로 쓰기엔 아직 이른 토란 등이 자라고 있어요.

밭의 나머지 절반은 두물머리 싸움이 한창일 때 여러모로 힘을 보태주고, 먼저 나간 농부들의 빈 땅에 작물을 심고 가꾸면서 함께 싸워줬던 두물머리 친구들에게 조금씩 나눠줘서 각자가 텃밭을 일구고 작물을 키우고 있지요.

그 한쪽 구석에선 게으른 농부가 작은 밭 하나 제대로 관리를 못 해 벌써 여기저기 꽃대가 올라오고 있네요. 게으른 농부는 처음 본 로메인꽃이 너무 예뻐 한참 넋을 잃고 쳐다보고 사진 찍고 하다가 따는 건 포기하고 일하면서 농사를 배우고 있는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을 지나 부용리 끄트머리에 있는 농장에 도착하면, 얼마 전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귀여운 병아리들과 덩치 커다란 두 마리 개들에게 제일 먼저 밥을 주고 본격적으로 일할 준비를 합니다.

여기서 주로 하는 일은, 모양도 색깔도 예쁜데 달콤하기까지 한 방울토마토를 따고 선별해서 팩에 담기, 기다란 오이를 뚝 잘라놓은 듯 짧동한(?) 몸에 진한 초록색이 인상적인 피클오이 따기, 향이 진해서 한 번 베고 나면 한참 동안 손에서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참나물 베기, 두물머리 친구들이 지어 준 두 개의 크고 작은 닭장의 닭들에게 사료와 채소를 주고 달걀 뺏어 오기 등입니다.

▲ 매일 알을 낳아주는 닭(상단 왼쪽)과 얼마 전 태어난 병아리(상단 오른쪽), 그리고 덩치 큰 개들(하단). ⓒ최효정

해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는 비닐하우스이기에 방울토마토를 따는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할 일 없는 머리는 작년 이맘때를 생각합니다.

작년 이맘때도 올해처럼 여기서 이렇게 방울토마토를 땄던 일, 점점 더워지는 밭에서 그 뜨거운 열기와 단순 반복 동작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방울토마토를 소재로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머릿속으로만 만들어놓고 아직 써놓진 못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재작년부터 작년 여름까지 두물머리의 딸기밭에서 일할 때 딸기 꼭지를 따면서 만들어 놓았던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저에게 딸기는 생애 첫 농사이자 제 모든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엄청난 작물이에요.

4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두물머리 싸움의 이야기를 접하고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함께하겠다는 생각에 전철을 타고 무작정 양수리를 향했습니다. 싸움이 끝날 때까지 930일 동안 두물머리 어딘가에서 매일 오후 3시에 천주교 미사를 드리고 있었던 걸 알게 되었는데 먼저 미사로 함께해보려 했던 거죠.

하지만 처음 와본 곳이고 다 똑같아 보이는 비닐하우스가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너무 춥고 다리가 아파서 정보를 좀 더 모아 다시 오자 마음먹고, 아쉬운 걸음을 돌렸었지요. 그런데 그해 봄 천주교 농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농장 실습을 가게 되었는데 그 농장이 바로 두물머리에 있었던 거예요!

농부학교, 귀농학교 들은 여러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농사의 기본 이론과 실습,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인 노하우를 알려주는 데 주력하는 대부분의 학교와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의 생태와 환경의 위기(GMO, 핵 발전의 위험성 등), 대안에너지와 적정기술, 농부의 자세(자연 속에서 가족농, 소농으로서 생명농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의 철학) 등을 일깨워주는 곳은 천주교 농부학교와 귀농본부의 생태귀농학교 등 몇 군데 안 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천주교 농부학교에서 두물머리를 실습 농장으로 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요.

▲ 트럭을 타고 양수대교를 건너며 찍은 두물머리. ⓒ최효정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하나의 강이 되는 그 끄트머리여서 오랜 세월 동안 쌓인 퇴적토와 새벽부터 피어올라 아침나절까지 남아 있는 물안개의 습기,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종의 생명체와 그들이 남겨 놓은 부산물 등으로 아직 우리나라에 유기농이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하던 시절부터 30년 이상 친환경, 유기농업을 이어 올 수 있었던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그런 두물머리를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유원지로 만든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운 무리들이 중장비와 공권력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고, 농지를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비옥한 이 땅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할 만큼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농부들은, 본업인 농사일만으로도 벅찼지만 말도 안 되는 그 계획을 막기 위해 길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개인, 환경 단체, 종교계 등이 그들의 힘겹고 외로운 투쟁을 지지하고 두물머리를 함께 지켜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땅을 포기하고 먼저 떠난 농부들의 빈 땅에 경작함으로써 저항을 도왔던 단체 중에 천주교 농부학교도 있었던 거에요. 그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두물머리 친구와 농부들은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고 있고, 저도 서울과 양평을 오가며 거기에 한 발을 담그고 있었죠.

재작년 말까지 저는 서울의 한 동물병원에서 일하던 동물병원 간호사였어요. 힘은 들지만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병원 생활이 즐거웠던 저였는데, 두물머리를 알게 된 후론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이곳에 오지 못하면 너무 서운하고 다시 올 날만 기다리게 되었어요.

처음엔 별다른 일 없이 여기에 와서 이 농장, 저 농장 돌아다니며 가끔 농사일을 조금 거들고 친구와 농부님 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정도였어요. 그러던 중 재작년 여름 몇몇 농부들이 공동으로 딸기 농사를 짓기로 했고, 어쩌다 보니 올 때마다 딸기밭 일을 돕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며 일한다는 것이 점점 힘겨워지고 있던 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장소에서 일하면서 전 조금씩 농사일이 재밌어졌고,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해버렸지요.

재작년 말부터 인수인계를 위해 일주일에 닷새, 나흘, 사흘, 이런 식으로 근무 일수를 줄이면서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엔 딸기밭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러다가 올해 초엔 완전히 그만두고 두물머리로 오게 됐어요.

저에겐 아직 새벽이라 생각되던 이른 시간부터 점심때까지는 딸기밭에서 일하고, 그다음엔 함께 일하는 농부님들의 농장 일을 도우면서, 그렇게 귀농이라 부르기엔 너무 조촐한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오랫 동안 땅과 가까이 살기를 열망하여 시골 생활을 꿈꿔 왔던 부모님도 이쪽으로 이사 오셔서 집 앞 텃밭에서나마 작물을 키워 먹는 기쁨을 매일 누리시고, 전 거기에 얹혀살면서 농장에서 제 손을 거쳐 나오는 신선한 작물과 (닭들에게서 빼앗은) 달걀을 들고 귀가하는 것으로 방값을 대신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특히 우리가 키운 딸기의 맛에 완전히 반해버린 부모님은 다른 곳의 딸기는 이제 입에 맞지 않는다 하실 정도였고, 정말 그 특별한 딸기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정말 특별한 그 딸기는 작년 6월까지 저를 이글이글 뜨거운 하우스 안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들었죠. 대신 맛있는 딸기를 실컷 먹으며 농부들이 '6학년 농사'라고 말하는(참고로 '1학년 농사'는 열무) 딸기 농사를 경험할 수 있었고, 인증 스티커에 공동 경작인으로 제 이름이 찍혀 나왔을 땐 정말이지 너무너무 고맙고 기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느꼈었지요.

그렇게 딸기밭 일이 끝나고, 앞서 말한 부용 밭의 절반을 저와 친구들에게 나눠준 그 농민의 농장을 새로운 일터로 삼은 저는, 여기서 여러 종류의 작물을 만나고, 만지고, 잘 자랄 수 있게 돕고, 거두고 하면서 언제쯤 제대로 된 농부가 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있답니다.

공동으로 농사짓는 작물도 있고, 혼자서 출하하는 작물도 있긴 하지만, 손도 느리고, 아직 배울 것도 너무 많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초보 농사꾼인 저에게 진정한 농부가 되는 그날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거든요.

아직은 농부라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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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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