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컨대 제 생사여탈권을 다른 누군가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생존과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동안의 나는 눈치를 보고, 맞춰가며 의존하는 생활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조직과 사회 그리고 정부 등의 병적이고 퇴폐적인 기존(?) 기성세력 앞에서 나는 나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내 약한 의지력을 탓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목소리를 내는 것은커녕 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때도 있었지요. 대학까지 찾아와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시켜주겠다던, 졸업하고 고대하던 사회생활에 훌륭히 적응했다는 선배들의 말이 막 입학한 스무 살의 저에겐 얼마나 끔찍하던지….
그러나 '입시-취직-결혼-자녀-노후'로 흘러가는 패러다임 속에서는 도무지 본래 내 것일 생사여탈권을 되찾아 올 수 없는 듯 보였습니다. 자유로운 감성과 의지를 저당 잡힌 채, 끊임없이 보다 좋아 보이는 듯한 자리를 찾아 치열하게 싸워나가고, 그러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곳에 도달하면 타협하고 평생 자위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그 세계의 전부인 듯 보였는데, 그렇게 맹목적이고 무력하게 끌려가는 노예 생활에 빛나는 20대를 절대로 허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록 생활고로 허덕여도 자유를 반납하고 부잣집 노비를 자처하지는 않을 딸깍발이가 되었으면 모를까. '배부른 돼지가 될 바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자'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무엇과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轉換)해내야만 했습니다.
의존하지 않고 일어서려면 스스로 획득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 획득해야만 하지 않을까? 결국 자급하는 삶으로 전환해야겠구나. 농적(農的)인 가치를 향해 항해해야겠구나. 가진 것이 없더라도 온전히 홀로 일어설 수 있는 나라면, 시공간의 제약 없이 내가 나로 존재하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생존에 필요한 동력원인 에너지, 음식과 물 그리고 불을 획득하고 순환해내야겠다 싶었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운 좋게도 그동안 걸어왔던 여정 속에서 만났던 자연농(自然農)과 퍼머컬처(permaculture)라는 영역을 통해, 이처럼 모호하고 막막하고 제멋대로여서 감이 안 잡히던 그림이,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방식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곧장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아 텐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날 몸 상한다고 모두가 말리던 바로 그 야생에서의 생활을…. 고작 육체적인 불편과 불안 때문에 틀과 형식 없는 삶으로부터의 자유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농사를 짓겠다, 농적 가치를 향해 선회해야겠다는 마음에는 선행하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농사를 중심으로 생활했던 과거 선조들의 삶에서 총체적이고 전일적인, 온전한 삶의 양식을 보았고 또한 자연의 구성원으로 더불어 상생, 공생하며 변화하는 자연을 따라 함께 흘러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최초의 이유였습니다. 더욱이 근본적으로 자연과의 관계와 순환을 고민하고 갈등하는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의 자연농이라는 세계를 접하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며 더욱 빠져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를 통해 동력원인 먹거리자급을 이루어낼 수 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사자 굴속의 다니엘을 비추었던 햇빛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비록 '농사'라 말했지만,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귀농해서 농사짓겠다고 하는 형태의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지금 경기도 군포 봉소골의 약 300평 밭에서는 비닐과 농약 그리고 제초제는 물론, 거름 한 움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무것 없이도 지을 수 있고 지금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으며 흙과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 다시 돌아가며 생명의 본성이 꽃피는 농사를 짓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풀과 싸우는 전쟁이 아닌 풀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농사, 잡초라는 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편인 작물 이외의 모든 적을 섬멸한 후, 아군 작물만이 살아남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끊임없이 투입하며 길러 내는 것은 영 내키지 않습니다. 자라는 작물 말고도 다양한 풀 친구들이 함께 자라나 덕분에 또 다른 친구들인 다양한 곤충과 미생물과 같은 친구들이 함께 살고, 그렇게 생태계의 다양성을 통해 되살아난 흙 생명력을 통해 작물이 건강히 자라나는 것, 그런 농사뿐만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더는 유기농과 자연농 그리고 생명역동농과 같은 텍스트의 구분보다, 어쩌면 그 모두일 수도 있는 제 방식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자연스레 농사, 그리고 삶의 규모와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수천 평의 전업농으로 환금성(換金性) 높은 단일 작물 위주의 농사를 지으며 판로 개척과 유통 그리고 상품 판매에 끌려다니는, 여전히 자본과 시장 논리에 편입되어 가격이라는 잣대에 의해 재단 당하는 농사가 아니라, 수백 평 남짓으로도 먹고 싶고 먹어야만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기르고 나눠주거나 먹거리 자급을 위해 먹는, 자본과 시장 논리 바깥 세계에서 무한한 생명의 가치 그대로 존중하는 농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급하는 소농이 되어서까지 블루오션과 6차 산업, 개발 논리 등에 여전히 갇혀 살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경이로운 삶의 신비는 언제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농사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농사지으며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획득하고 순환하여, 돈 없이도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이지요. 물론 이것은 전혀 새로운 농사 방식도 철학도 아닐 것입니다. 비록 현대 기성(?) 기존의 질서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농사가 농산업이 되기 이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시대' 우리 선조들이 살아왔던 방식이자 철학이 아닙니까. 경제와 자본 논리에 예속되지 않고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삶의 방식 말입니다.
이렇게 농사를 삶의 중심에 두기로 하고, 어떻게 자급하는 삶으로 전환을 이뤄내야 할까, 어떻게 농적 가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농사가 중요하다지만, 농사는 삶의 부분이지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시기에 다가온 것이 '퍼머컬처'였습니다.
농사를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삶의 양식들과의 연결과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덕분에 농사를 단순히 먹을거리를 자급하는 도구가 아닌 온전한 삶의 양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퍼머컬처'라는 접근법이 삶을 향한 보다 넓은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건축, 기술, 교육, 문화, 건강, 영성, 경제, 공동체, 땅과 자연을 망라하는 퍼머컬처 꽃잎들을 그리고 그 꽃잎들로 연결된 무수히 많은 관계망을 보게 된다면, 그 누구든 자신의 삶을 더욱 온전히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퍼머컬처 세계관 안에서 농사는, 먹거리 자급을 위한 행위이자 예술이며 노동이자 명상이고 개인적인 구원이자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의 씨앗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음악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본질이 되었습니다. 농가월령가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말이지요.
그렇게 귀농(歸農)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귀농이라 함은 단순히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만을 일컫는 공간적 정의가 아니리라 믿으며,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는 것이 만병통치약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공간적 정의를 넘어 농사를 중심으로 한 삶의 다양한 양식들이 이루어지는 것, 즉 '삶의 전반이 농적인 가치로 돌아간다는 것이 곧 귀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당장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겠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전혀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폭력적이고 경직된 가부장제 사회, 주어진 것과 가진 것이 권력으로 작용해 마을을 휘어잡고 있는 어른들, 나이와 성별을 비롯한 형식적인 것들이 존재와 관계 그리고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들은 오히려 제가 가고자 하는 길과는 전혀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의 삶을 목적으로 이동하는 귀농과 공간과 관계없이 농적인 삶으로 이동하는 귀농, 짧은 생각일 수 있지만 저는 후자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듯 생각이 단박에 여기까지 이르고 나서, 소농학교 정용수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군포 봉소골로 흘러들어와 넓은 10평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는 생활과 '영감의 세계'라는 청년들의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전환마을 은평 대표 소란이 진행한 퍼머컬처 학교에서 만났던 몇몇 친구들과 자칭 수습 퍼머컬처 디자이너를 표방하며, 퍼머컬처와 자급하는 농사 그리고 각자 삶 기저의 철학을 실험하고 검증해보는 무대를 마련해보자며 의기투합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경험을 하자, 서로의 영감이 되어주자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여름에는 밀, 보리와 감자로, 겨울에는 쌀과 고구마로 연명하고, 한 해 농사의 꽃일지도 모를 모내기도 함께하고, 혼을 담아 글도 쓰고, 빗물 집수와 정수도 실험해보고, 쭈뼛쭈뼛 시 낭송회도 열고, 염소도 함께 살아보고, 악기 연주도 하고, 퍼머컬처 설계도 하고, 명상과 수련도 하고, 기우제도 지내고, 서클 댄스도 추고, 흙도 먹어보고, 농사 대토론회도 열고…. 적다 보니 저라는 한 명의 미약한 청년도 이렇게 해보고자 하는 것들이 많구나 싶었는데, 다른 친구들까지 합치니 참 많았습니다. 작지만 해낸 것도 있고, 요리조리 진행 중인 것도 있고 그리고 희망차게 준비 중인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약한 저희 곁에 한 명, 두 명, 결이 닮은 친구들이 각자 바라는 삶의 조각들을 가지고 모이게 되었고, 농적 가치와 자급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그리며 모두 함께 손을 맞잡고 각자의 목소리로 밭에서 마음껏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요즘입니다.
물론 책으로 먼저 배운 머리만 앞선 농사법들, 섞어 심기, 무제초, 미세 기후, 반드시 토종 종자로만 농사짓기 등으로 치열하게 대립하다가도 실제론 경험도 없어 헤매기 일쑤지요. 한번은 아나스타시아가 되어 보자며 씨앗을 입에 머금은 후 조심히 심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아 그대로 씨앗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고추도 모종이 아닌 직파를 해야만 한다며 용감히 뿌렸으나, 풀에 치였는지 개미가 물어갔는지 역시나 무소식이었습니다. 덕분에 야심 찼던 고춧가루의 자급은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짧은 책 지식만 앞세운 청년들의 농사 실수담을 하나둘 적어보자니 끝이 없겠네요. 그래도 주말 텃밭 농사의 꽃이라는 감자와 어여쁜 완두는 무사히 수확했답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좌절과 실패라고 할 수도 있을 그런 순간을 마음 나누는 친구들과 지금 그리고 함께 겪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운 나날들입니다. 물론 저희에게는 이미 타인들로부터 비롯되는 개념들은 사라진 지 꽤 지났지만 말이지요. 모든 순간이 배움의 기회이고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기에. 시행착오 때문에 방황하며 늦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호기심과 갈증을 해소하며 온전히 자신의 발걸음으로 걸어온 지금인 것을 알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또 다른 친구들과의 접점이 생겨 이 공간에서 무궁무진한 실험과 상상들이 펼쳐지기를, 타인이 아닌 각자의 삶이 꽃피어나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누군가 제기했던 의문처럼, <조화로운 삶>(류시화 옮김, 보리 펴냄)의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은 물론이요, <월든>(강승역 옮김, 은행나무 펴냄)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되고자 함은 아니고, 아무리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시작했다 할지라도, 견유학파의 길을 따를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비록 시노페(Sinope)의 디오게네스(Diogenes)가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에게 했던 대답은 참으로 인상 깊었지만요. 대왕이 디오게네스가 사는 곳을 찾아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해가 비치는 그곳에서 비켜 달라"고 했다니….
저는 그저 농적 가치로 돌아가 정직한 삶을 살아갈 것이고, 지나온 길,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고 단순한 이 시기에 바라왔던 모든 도전과 실험을 지금 당장 해보려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회복 탄력성이 높을 20대 때야말로, 각종 고난과 역경 등의 자극을 경험하고 그 역치를 끊임없이 높여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마음가짐으로, 새벽 5시 비닐하우스에서 습기에 젖은 채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스름한 새벽안개를 헤치고 이슬을 마시며….
그러다 보면 지금의 제가 가장 강렬히 열망하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삶의 신비를 향해 한발 두발 걷게 되고, 나는 나비가 되고 너는 마침 꽃이 되어 공명(共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의 말처럼 삶이라는 신비를 직조해나가는 것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기에. 자연의 순리와 하늘의 법칙 그리고 우주의 흐름, 그 무엇이라 부르던 겸허히 따르는, 그런 귀농을 해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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