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성주로 찾아온 날, 분노한 성주군민들은 모두 똑같은 목소리였다. '오늘 온 김에 사드 철회하고 가라'는 거였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총리와 장관은 '사드 배치 계획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성난 군중은 용서하지 않았다. 총리와 장관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고, 이를 뒤 따라 차량을 막고 '사드 철회'에 대한 답변을 하라고 요구하며 하루 종일 싸움을 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오늘 아니면 기회가 다시 오지 않는다"며 "오늘 꼭 사드 철회 답변을 받아 내자"고 했고, 성주 군민들은 환호하면서 "사드 철회한다고 대답 안 하면 나도 오늘 집에 안 갈 끼고. 너그도 오늘 집에 못 갈 끼다"며 완강히 버텼다. 한 할머니는 "근혜 누나한테 전화 한 통 해라. 누나야, 내 집에 가고 싶다. 사드 철회하면 안 되나? 하고 말이다"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결국 총리와 장관은 쥐구멍으로 토끼고 말았지만, 이날의 싸움은 내 가슴속에 응어리진 독을 다 뿜어내는 한판이 되었고 다시 내 얼굴은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아마도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나에게 성주는 호화로운 전원주택은 아니지만, 작은 마당에 나무와 개를 키우고 텃밭에는 풀을 키워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기름값이 좀 더 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고 5년 전 대구 생활을 정리해 성주로 이사했다. 물론 일은 대구에서 주로 하지만….
시골서 평생을 산 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얼굴을 마주치는 어른께 인사 잘하고, 어버이날이면 얼마라도 밥값을 보태고, 마을 청소할 때면 몸을 대거나, 몸을 못 대면 돈을 대거나, 마을에서 돈 거둘 때면 싫은 내색 하지 않고 꼬박꼬박 잘 내고…. 부녀회는 이사 온 지 3년이 지나 내가 물어서 연회비 내고 들어갔는데, 문자 한 번 온 적이 없다. 돈 낼 때 찾아오는 분도 있지만, 평상시에는 마을 주민들은 어디서 모여서 어떻게 어울리는지 관심도 딱히 없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애정이 있을 리 없지만, 구설수에 올라 피곤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부모랍시고 엄마들이 연락 오는 건 '돈 십만 원 내고 이사 되라'는 것인데, 학교의 형편이 좋지 않아 학생들에게 간식이나 물품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후원금을 거두는 것에 대해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자연히 학부모들과도 교류가 있을 리 없고, 특별히 관계를 맺는 사람도 없었다.
아이들은 나와 같을 순 없다. 아이들은 부모가 챙겨 주지 못하는 것이 많을 테고, 또 다른 기쁨을 누릴 곳이 친구와의 관계였을 거다. 친구들 간에 돈독한 아이들은 부모를 이어 주기도 했다. 열일곱 명의 아이들은 꼭 함께 움직인다. 멋을 맘껏 부리며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삼겹살이 먹고 싶으면 십시일반 돈을 거두고, 장을 보고,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마당 있는 친구 집을 섭외하여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는 지혜를 모았다. 학교는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지만, 아이들은 개성을 존중하고 성격을 이해하며 천성이라고 헤아려 줬다.
아이들을 지켜봐 왔던 학부모 몇 분이 '엄마계추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지역 사람끼리 어울리는 공간 하나는 필요하겠다 싶어서 한 달에 한 번 밥 먹는 편한 모임으로 계추를 하게 됐다. '열일곱 소녀시대'의 엄마모임은 (아니, '아줌마시대'라고 해야 하나?) 오늘은 저녁 식사 후 성주군청에서 매일 진행되고 있는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다 같이 데모하러 가자는 거다. 아줌마들 열 명이 모이니까 우렁찬 경상도 사투리가 식당을 다 잡아먹었다.
성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야말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사드 배치가 확정 발표 난 이후로 밤잠을 설치면서 데모하러 쫓아 나오는 아줌마들이다. 지난 7월 15일 총리와 장관의 차량을 막아설 때 제일 앞자리에 있던 아줌마들이기도 하다.
실컷 싸우다가 힘들어서 좀 쉬려고 하니, 어느 할매가 "젊은 것들이 싸우지도 않고 빈둥빈둥 앉아서 쉰다"고 야단했다. 그래서 쉬지도 못하고 제일 앞에 서서 싸웠다는 얘기, 총리와 장관이 쥐새끼처럼 토끼는데 주변 남자들이 히마리('힘'의 사투리) 없이 있는 모습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는 얘기, 성주여고 앞에서는 건장한 남자들이 잘 싸웠다며 남자 편들어 주는 얘기, 잘 싸워도 경찰 병력이 너무 많아서 수적으로 우리가 당해 내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얘기, 앞으로는 무조건 평화시위를 해야 한다며 그날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우발적인 상황이었다는 얘기에 동감한다. 그럼에도 총리와 장관이 마음먹었으면 사람들을 다 끌어내고 떠났을 텐데, 7시간 동안 차 안 앉아 있었던 건 좀 미심쩍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 병력이 계속 성주로 들어왔고, 어마어마한 병력을 동원하면 아무리 덩치 좋고, 힘 좋은 성주 군민들만 모였다고 해도 병력을 당해 낼 재주는 없다. 아마도 우리를 폭력 세력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부가 우발적인 폭력 사태를 유도해서 가담한 사람들을 빨갱이, 종북세력으로 몰아내려고 작전 짜고 들어왔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의 수다는 끝을 모른다. 어느새 오후 8시, 성주군청에 '촛불 데모'하러 갈 시간이다.
매일 밤이면 밤마다 성주군청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린다. 성주군청으로 들어선 아줌마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정 철회하라'고 쓰인 빨간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커다란 현수막을 망토처럼 입는다. 데모를 하더라도 간지나게('폼나게'의 일본어) 하자며 아줌마 스타일의 패션을 갖추고 포즈를 취한 뒤 단체 사진을 찍어 가며 우리는 신나게 데모를 한다.
성주군청 안에 들어서니, 자원봉사자들이 자리를 깔며 초와 머리띠와 두건을 나눠 주고 있다. '마을 벽화 그리기'팀이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성주군청 입구에서 사드 반대 그림을 그린 모자와 티셔츠를 전시했다. 교회 목사님과 신도들도 직접 배지를 만들어 나눠 줬다. '사드는 절대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발적인 행동이 하나하나 모인 집합체가 바로 '성주 촛불'이다.나는 성주 군민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를 반대한다. 인류의 평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성주 촛불'에서 간절히 말이다.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신 성주 군민들이 존경스럽다. 내가 성주 군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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