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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농가의 하룻밤은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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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농가의 하룻밤은 어떤 느낌일까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㉔팜 스테이(Farm Stay)

팜 스테이(Farm Stay)

오늘도 시골길 작은 부락을 들르며 달렸다. 네 밭 내 밭 경계는 밭두렁이 아닌 2∼3미터 높이의 가지런한 조경수였다. 거의 모든 밭들에는 정문이 있었는데, 자물쇠가 잠겨 있는 곳도 많았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안쪽을 들여다봤다. 어림잡아 만 평, 아니 십만 평 이상의 벌판이 확 펼쳐졌다. 그 위를 오가는 거대한 트랙터는 수확한 밭을 갈아엎느라 바빴다.

▲영국의 들녘.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영국의 들녘.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영국의 들녘.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집집마다 스무 평 안팎의 작은 정원에 꽃들을 가꾸고 있었는데 뒤뜰에는 그보다 넓은 정원이 또 있었다. 정원 잔디는 양탄자 깔아 놓은 듯 깔끔했다.

정원도 어지간해서는 가꾸기 힘들 것 같았다. 창문엔 수놓은 커튼이 내려져 있었고, 작은 화분과 조각 소품들이 더불어 놓여 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더니 실은 잘 보이려는 마음이 강한 것 같다.

“때로 좀 지저분하게 어질러 놓기도 하고, 엉성하기도 하고, 뭐 그런 게 사람 사는 모습 아냐?” 내 혼잣말이다.

9월 27일. 오늘은 영국 북쪽으로 향했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내비게이션이 툭하면 끊겨 달리다가 연신 멈췄다.

오후 4시, 루터워스(Lutterworth)에 거의 다다르고 있을 때쯤, 도로변에 ‘코트스우드(Coteswood) B&B’라고 쓰인 녹색 간판이 눈에 띄었다.

‘B&B라면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집?’ 달리던 길을 멈추고 표지판에 적힌 내용을 구글 지도에 입력해 봤다. 그런데 엉뚱한 정보가 나왔고,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었다.

앞으로 몇 km를 더 가면 B&B가 있다든지, 화살표를 앞으로 또는 옆으로 해 놓든지, 마을 안길로 들어가라든지 등의 무슨 설명이 있어야 할 텐데 정보가 좀 부실했다.

“어휴, 갑갑해. 그냥 갑시다. 시간만 낭비했구려.” “잠깐만요. 저기 트랙터가 오고 있어요. 한번 물어봐요.” 추니가 잡았던 핸들을 풀면서 마을 안쪽을 가리켰다.

잠시 후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트랙터를 향해 손을 들었더니 트랙터 기사는 손짓을 하며 운전석 쪽으로 오라고 했다.

“저기요. 말씀 좀 여쭐게요. 저기 저 간판에 표기된 B&B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하룻밤 그곳에서 쉬려고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트랙터 기사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허리춤에서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응답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 따라오실래요?”

트랙터 기사는 오던 길을 되돌아 긴 농로를 따라 달렸고, 우리는 부리나케 뒤따랐다. 큰길에서 7~8백 미터 떨어진 농가에 들어서자 트랙터 기사는 문을 펄쩍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네 집이에요?” “네. 저희 집입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흔히 말하는 ‘팜 스테이(Farm Stay)’, 즉 농촌 체험형 민박집이었다. 가격은 아침 식사 포함 하룻밤에 50파운드. 팔만 원이었다.

우린 자전거를 트랙터 보관 창고에 넣은 뒤, 넓은 앞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나서 농장 한 바퀴 돌며 사진도 찍고, 말한테 먹이도 주고, 외양간에 들어가 괜히 소들에게 관심 있는 듯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영국 농가의 하룻밤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가 묵은 방은 사랑방이었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별밤 푸르고, 말 우는 소리 찢어지고,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내일 아침 식사는 시골이니까 우거지 넣고 된장국 좀 끓여 달라고 할까? 푸성귀 좀 먹었으면 좋겠다.

▲팜 스테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팜 스테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팜 스테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팜 스테이.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아침.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트랙터 아저씨는 외양간을 들락거리며 소 먹이를 줬다.

8시 아침 식사. 빵과 우유, 치즈, 과일, 잼, 꿀, 커피는 기본 식단이고, 접시에 별도로 담아 오는 것은 계란 프라이 두 개, 소시지 손가락만 한 것 한 개, 베이컨 두 겹, 쪄서 양념한 손바닥 크기의 버섯 한 개, 삶은 토마토 반 토막이었다.

농촌이라도 푸성귀는 없었다. 실은 매운 소스에 야채를 푹푹 찍어 먹고 싶었는데…….

오늘은 버밍엄(Birmingham)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라서 가는 것은 아니고 그저 가는 길목에 버밍엄이 있을 뿐이다.

어느덧 두 달 보름이 지났다. 이제 목적지인 유럽의 끄트머리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무리 잘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체력 안배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라’는 말을 기억하며 더 달릴 수 있어도 2% 아쉬운 순간에 멈췄다.

‘희망을 갖고 도전하자, 나이와 처지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것이다. 이루지 못할 정도의 큰 희망을 품고, 극복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역경에 도전하자!’고 되뇌었다.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공원 안에는 ‘개똥 안 치우면 최고 160만 원 과태료, 자전거·오토바이·말 진입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깨끗한 잔디 위에서 아이들이 뒹굴며 놀고 있었다.

▲공원관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공원관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버밍엄에 거의 다다를 즈음, 길가에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 문패가 눈에 띄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흙벽돌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조경수가 가지를 길게 뻗어 우리를 가로막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휴대폰과 지갑, 여권을 꺼내 들고 접수처로 보이는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빨간 화살표가 뒤쪽으로 그어져 있어 창문 곁을 지나 뒷문 쪽으로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누군가 있을까, 하고 커튼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봐도 아무도 없었다. 잔디는 깎지 않아 발목을 덮었고, 거미줄이 콧등과 속눈썹을 튕겼다.

너무 조용해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하는 수 없이 막 되돌아서 나오려는데, 갑자기 별관 컨테이너 같은 작은 방에서 누군가 벌컥 문을 열어 깜짝 놀랐다.

▲버밍엄 게스트하우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버밍엄 게스트하우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방 안엔 침대가 희미하게 보였고 또 다른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문을 연 남자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자 다른 남자는 문을 반쯤 열고 수상한 듯 우리를 지켜봤다. 약간 검은 피부에 나이는 삼십 대로 보였다.

‘중동인? 남미인? 아니면 동성연애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반쯤 돌리고 어디로 가려는지 우릴 비켜 지나갔다.

“여보세요? 말 좀 물읍시다. 여기서 오늘 밤 숙박을 하려고 하는데요.”
“…….” “접수처 문이 잠겨 있어요.” “…….”

그 남자는 문 열고 내다보던 남자와 뭐라 뭐라 얘기를 했는데, 그동안 들어 본 적 없는 언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곤 우리한테 다가와 손짓 발짓으로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했다. 짐작건대 주인한테 전화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20분 정도 지나 주인이 차를 타고 나타났다.

접수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그들 중 한 남자와 수화를 나눴다. 그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1년 전에 영국에 와서 트럭 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괜스레 두 남자에 대한 선입관으로 경계심을 품은 게 미안했다.

밤중에 추니는 짐을 모두 뒤집어 꺼냈다가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시 넣을 걸 뭣하러 꺼냈는지 모르겠다. 뭔가 불안한가 보다. 맥주라도 한 병 사 와야겠다. 추니가 편안해야 세상 모든 게 편안하다.

나는 여행하며 추니를 위해 배려해야 할 것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라이딩을 시작할 때 추니가 헬멧과 장갑을 착용했는지 확인할 것. 달리면서 힘겨워 어깨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지 백미러를 늘 살필 것. 낮잠을 잠깐 잘 수 있도록 여유를 줄 것. 지겨운 고갯길을 오를 땐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어 댈 것. 옥수수 밭을 지날 땐 용변을 볼 것. 화장지를 늘 챙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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