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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삥이나 뜯는' 제국이 안 되려면…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일대일로, '아메리카 능률'을 넘어 포용력을 보여라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뇌리에 가장 크게 남은 장면은 바이칼 호 같은 자연 경관이나 만리장성 같은 역사 유적이 아니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내려다본 미국의 도로망이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넓은 땅덩어리를 완벽한 바둑판 모양으로 수놓아 버린 반듯한 도로망! 사막은 가로지르고 산악은 터널을 뚫어 그 어디도 우회를 허용하지 않는 '무자비한' 토목 공사의 완결판이었다.

그에 비하면 10년 전 방문했던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은 그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막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하나 생기긴 했지만 사막의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었으니, 중국의 국토 장악 능력은 거의 같은 크기인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 같은 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의 쿠처와 남쪽의 허톈을 연결한 새 고속도로는 10년 전 그 도로보다 훨씬 더 널찍했고, 한참 동안 사막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울 만큼 연변에 관개수로와 수풀, 민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들어서도 어디서나 호양나무, 홍유 등 생존력 강한 식물들을 볼 수 있고, 도로변으로는 갈대를 이어 붙여 만든 방사(防沙)의 띠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10년 후에 다시 오면 한반도 면적의 1.5배에 이르는 그 넓은 사막이 아예 사라지는 것 아닐까 하는 성급한 생각마저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미국 전역이 '골드러시'에 빠져든 것이 1849년의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포티나이너스(49ers)라는 미식축구 팀이 샌프란시스코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쩌면 중국은 이제야 '미국의 1849년'에 접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오아시스 도시들, 예컨대 쿠얼러라든가 카슈가르라든가 하는 곳의 풍경은 10년 전과는 비할 수 없이 기름져 보였다. 황량한 사막 도시에 풍요로운 강이 흐르고 고층 건물이 들어섰는가 하면, 비쩍 마르고 생기 없던 사람들의 얼굴에 살이 오르고 아연 활기가 돌았다.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으로 형성된 길이 그 유명한 실크로드이다. 이곳이 문명과 문명의 교역로로 개발된 역사는 미국 중부의 사막길이 감히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 지금 중국은 이처럼 사막을 둘러싸고 띠 모양으로 전개된 육상 실크로드와 인도양을 지나는 해상 실크로드를 묶어 야심찬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고대와 중세의 문명 교역로가 21세기 중국의 경제력과 만났으니, 일대일로 사업의 전도는 유망해 보인다. 어쩌면 10년 이내에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가스, 샌프란시스코 등을 능가하는 거대 도시들이 중국 서북 지역과 중앙아시아에 우후죽순처럼 솟아날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낙관적인 전망에 빠져 있다가 문득 미국의 상공을 날 때 놓쳤던 생각이 떠올랐다. 경악스러운 광경 앞에서 정작 인간의 문제, 즉 도로 건설 과정에서 숱하게 발생했을 원주민과 노동자들의 피해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의 '무자비한' 국토 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원주민의 무자비한 퇴출, 그에 따라 거의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던 땅값, 후버 댐에 세워진 위령비가 말해 주는 중국 이민자 등 저임금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

▲ 사막을 가득 메운 풍차. ⓒ강응천

중국은 어떨까? 실크로드는 19세기 미국과 같은 무주공산이 아니다. 지금도 한족을 비롯한 중국의 56개 민족과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가 공존하고 있고, 수천 년 역사 속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민족과 국가가 명멸해 왔던 곳이다.

10년 전 처음 이곳을 답사했을 때는 중국의 시각에서 서역 개척과 교류의 역사를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그 후 이 지역을 몇 차례 방문하면서 관심의 영역은 실크로드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겨뤘던 유목 제국으로 넓어졌다. 흉노, 돌궐, 토번, 몽골 등 기라성 같은 유목 제국들은 한, 당 등의 중국 왕조들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실크로드를 지배했다. 근대 이전 실크로드를 마지막으로 장악한 세력도 유목 출신인 청과 오스만 제국이었다.

그러나 중국 왕조든 유목 제국이든 실질적인 실크로드의 주인이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그들이 주로 한 일은 실크로드 연변에서 삶을 이어가며 문화를 창조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역의 이권을 차지하고 속되게 말해서 '삥'을 뜯기 위해 그곳을 군사적으로 공략한 것이었다. 한, 당과 흉노, 토번이 벌인 대결은 대체로 그러한 공략 과정에서 나온 충돌이었다.

그들에 의해 실크로드가 개척되기 전부터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서역 36국'이라고 통칭되는 오아시스 국가들은 오늘날 사라져 버렸고,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졌거나 혼혈을 통해 현존 민족들 속에 유전자의 자취만 남기고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원주민들을 못살게 구는 강대한 세력의 잇따른 침략과 수탈의 결과였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그 위아래의 산악, 분지들이 오늘날 중국의 영토가 된 것도 마지막 유목 제국인 청의 강력한 정복 전쟁 덕분이었다.

청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역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과거와 같은 '삥 뜯기'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19세기 미국처럼 무자비한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할 수도 없다. 스탈린은 '아메리카적 능률'을 언급하면서 그것은 장애물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 불굴의 힘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무자비한 반인륜성을 21세기 개명 천지에 반복할 수는 없다.

▲ 갈대를 이어 만든 사막의 방사띠. ⓒ강응천


아메리카적 능률을 넘어서는 중국적 효율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수자의 인권 따위를 돌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19세기적 저돌성이 아닌, 21세기에 걸맞은 '포용력'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과거에 중국이 주변 국가를 문화적으로 포용하려 했던 중화 사상이 그 대안일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청이 넓힌 서역 영토의 끝에서 1000킬로미터나 동쪽으로 후퇴한 곳에 명대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라는 가욕관(嘉峪關)이 있다. 이곳의 내성에서 서쪽 사막을 바라보며 서 있는 문루의 이름이 유원문(柔遠門)이다. 멀리 서역의 오랑캐들을 온유하게 교화한다는 뜻이니 중화 사상의 핵심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에조차 서역으로 가는 중국의 관문으로 여겨진 둔황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물러나서 한다는 소리가 '유원(柔遠)'이라니, 실은 오랑캐가 두려워 웅크리고 있는 자들의 허장성세일 뿐이다.

'중화'란 그런 것이다. 말로는 세계를 교화한다면서 사실은 바깥 세계가 두려워 기왕에 확보한 자기만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 그러면서 여전히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헛소리를 짖어대는 것. 문명 세계와 유목 세계를 아우르려 했던 '천가한' 당 태종이나 '천하대군' 청 건륭제의 태도에 비하면 그 옹색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성공시켜야 한다. 중국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 광활한 타클라마칸 사막이 중국 땅이 아니라면 모르겠으되, 기왕에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한 중국은 21세기 실크로드를 번영케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을 성공시킬 그들의 무기는 고대의 '삥 뜯기'도 아니고 19세기의 '아메리카적 능률'도 아니다. 용렬한 중화주의는 더더구나 아니다. 당 태종과 청 건륭제가 보여주었던 스케일로부터 '삥 뜯기'의 침략성을 제거한, 아직까지 인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범인류적 포용력이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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