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일하다 다쳤을 때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지휘나 명령에 따라 업무를 하다가 재해가 발생해야 한다는 '업무 수행성', 업무와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업무 기인성'이 있어야 합니다.(☞ 관련 기사 : '산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들어 보면 '업무 수행성'과 '업무 기인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황들이 꽤 많습니다. 회사 체육대회, 야유회, 직장 내 동호회원들과 행사를 하다가 다쳤을 때는 어떨까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낚시 동호회에서 생긴 일
A씨는 직원이 55명인 광고회사 부장입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A씨는 회사 낚시 동호회에 가입했고 몇 년 후에는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직장 내 동호회에 다달이 약 1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주고 낚시 동호회는 1년에 2회는 전체 직원들에게 공지를 하고 정기 행사를 합니다. 올해 참가자는 A씨를 포함해서 4명뿐이었습니다. A씨는 근무시간이 끝나기 1시간 반 전인 금요일 오후 4시 30분경 자기 차에 나머지 참가자 3명을 태우고 충남 당진군에 있는 대호 방조제로 밤낚시를 갔다가 다음 날 오후 1시경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그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업무상 재해일까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회사 동호회에서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당한 사고라서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근무시간 외의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동호회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망한 것이라서 업무상 재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럴까요?
노무관리 또는 사업 운영상 필요한 각종 행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운동경기·야유회·등산대회 등 각종 행사에 근로자가 참가하는 것이 사회 통념상 노무관리 또는 사업 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① 사업주가 행사에 참가한 근로자에 대해 행사에 참가한 시간을 근무한 시간으로 인정하는 경우, ② 사업주가 그 근로자에게 행사에 참가하도록 지시한 경우, ③ 사전에 사업주의 승인을 받아 행사에 참가한 경우, ④ 그 밖에 ①부터 ③에 준하는 경우로서 사업주가 그 근로자의 행사 참가를 통상적 관례로 인정한 경우에는 근로자가 그 행사에 참가(행사 참가를 위한 준비·연습을 포함)하여 발생한 사고로 부상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 재해로 봅니다. 따라서 회사가 주최한 체육대회, 야유회, 워크숍 등에서 발생한 사고는 산업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아가 노동조합의 독자적인 행사가 아니라 단체협약 상 명시된 노동조합 행사나 회사가 노동조합에 의뢰한 행사에서 발생한 사고도 산업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A씨는 회사가 개최한 행사가 아닌 낚시 동호회 행사에서, 자기 차를 운전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는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의하여 통상 종사할 의무가 있는 업무로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회사 외의 행사나 모임에 참가하던 중 재해를 당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목적·내용·참가 인원과 그 강제성 여부·운영 방법·비용 부담 등의 사정에 비추어 사회 통념상 그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으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라고 판결했습니다. 핵심은 전반적인 사정에 비추어 회사 내의 행사냐, 외부에서의 행사냐가 아니라 사회 통념상 낚시 동호회 정기 행사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행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사정, 꼼꼼히 살펴야
광고회사는 그 업무의 특성상 직원의 창의력을 높이고 새 아이디어를 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회사는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그 한 가지 방법으로 회사 내에 낚시, 볼링, 등산 같은 동호인 모임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A씨는 회사의 중견 간부이자 낚시 동호회 회장이라서 한 주간 업무가 많아 무척 피곤했지만,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해도 A씨는 정기 행사를 회사에 보고했고, 그 경비는 회사 지원금을 모아 두었다가 사용했습니다. 참가자 수가 많으면 회사에서 차량도 지원해 준다고 했었는데 인원이 적어서 A씨는 그냥 자신의 차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회사에 퇴근 시간 전에 출발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자, 이렇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보니 어떤가요? 그래도 좀 헷갈립니다. A씨 사건에서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을 보았을 때 낚시 동호회 정기 행사가 비록 참가인은 4명뿐이라서 많지는 않지만 창의성과 개방성이 중요한 광고회사라는 회사의 특성상 낚시 동호회 활동 역시 회사의 업무 수행의 연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경비나 출발 시간, A씨의 참가 경위 등을 보았을 때 사회 통념상 낚시 동호회 정기 행사의 전반적인 과정이 회사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 행사에 참가하는 동안 발생한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라는 것입니다. 회사와 관련된 행사에서 발생한 사고는 그 전반적인 사정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직장 내 동호회 행사는 업무와 무관하게 놀다가 다쳤다고만 볼 수는 없으니까요.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보기에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 인정에 무척 인색합니다. 물론 부정한 보험금 수급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업무상 재해를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에 의할 때, 산업재해 인정에 인색한 행태는 법의 근본 목적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회사는 안전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를 폭넓고 충분하게 보상해서 노동자들이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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