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란이 또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로 불을 지폈고, 새누리당이 계속 땔감을 던진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이라고 돼 있다. 그냥 '임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립은 1919년 3.1 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시점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1945년 해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시정부' 꼬리표를 떼는 한 계기였다.
"이건희 장인, 홍석현 아버지, 홍진기를 추앙하려면 이승만부터 띄워야"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이런 역사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이른바 '뉴라이트' 그룹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면서, 트집을 잡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캠페인을 했던 <조선일보>도 가세했다.
여기엔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이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인이며,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아버지가 홍진기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판사를 지냈고, 미군정 시기엔 법제부 법제관 및 사법요원양성소 교수 등을 맡았었다. 이승만 정부에선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4.19 혁명 당시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이 있다. 4.19 혁명 이후 구속됐고, 5.16 쿠데타 이후 풀려났다.
<중앙일보>와 삼성 입장에선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과 홍진기의 명예는 서로 맞물린 문제다. 이승만 정부가 4.19 혁명으로 쫓겨난 정부로 각인되면, 홍진기는 영원히 발포 책임자로 남는다. 홍진기를 추앙하려면, 먼저 이승만부터 띄워야 한다.
삼성이 뉴라이트 진영에 돈을 댄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예전에 삼성에서 관련 업무를 했던 이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승만 정부가 1948년 발간한 관보 "대한민국 30년"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면, 1948년 정부 수립과 이승만 대통령 취임이 곧 건국이 된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앞서 소개한 헌법 전문과 상충한다. 굳이 '1948년 건국'을 고집하는 박근혜 정부는 대체 어쩌려는 건가. 개헌이라도 할 건가.
개헌? 필요하면 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지금의 헌법 역시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었다. 그럼, 제헌헌법에는 뭐라고 돼 있나.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
"대한민국 건립"은 1919년 3.1 운동에 뿌리를 뒀다는 걸 명시했다. 1948년 수립된 정부는 그걸 '재건'한 것이다. 미군정 등을 거치면서 잠시 끊어진 흐름을 다시 이었다는 게다.
실제로 이승만 정부가 1948년 발간한 관보에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돼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를 '대한민국 1년'으로 잡은 것이다.
제헌헌법, 군사 정부 헌법 모두 임시정부 정통성 인정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어땠나.
5.16 쿠데타 이후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은 이렇다.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을 계기로 성격이 확 바뀐다. 그럼 유신 헌법은 어땠나.
"3.1 운동의 숭고한 독립 정신과 4.19 의거 및 5.16 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
전두환 정부, "5.16 혁명", "4.19 의거" 지웠지만 "3.1 운동"은 남겨둬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정두환 정권 역시 헌법을 고쳤다. 제5공화국 헌법이다. 이렇게 돼 있다.
"3.1운동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
"5.16 혁명"이라는 표현이 빠졌다. 실제로 전두환 정부를 주도한 신군부 세력은 박정희 정부 관계자들과 거리를 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하들이 더 이상 아버지를 떠받들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헌법 전문에서 "5.16 혁명"이라는 표현이 빠진 것도 이런 정서에 영향을 줬을 게다.
제5공화국 헌법은 "5.16 혁명"이라는 표현을 빼면서 "4.19 의거"라는 표현도 함께 덜어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표현이 "3.1 운동"이다.
요컨대 성격이 다른 여러 정권이 들어서면서 종종 헌법을 바꾼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 운동에서 찾는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의 뿌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것과 통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계기가, 이른바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시작된 3.1 운동이었다.
임시 정부 수립 당시 김일성은 7살…'1948년 건국' 주장, 북한 정통성 인정 논리
물론,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선 다양한 비판이 있다. 진보 진영에서 주로 유통됐다. 이런 비판의 극단에 섰던 진영이 옛 주사파다. 이들이 서술한 독립 운동사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리가 좁다. 대신,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이 중심이다.
실제로 북한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무시한다. 정통성의 뿌리를 김일성의 타도 제국주의 동맹 건설, 보천보 전투 등 항일 무장 투쟁에 둔 탓이다.
흔히 '상해 임시정부'라고 적지만, 1919년 당시 선포된 정확한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북한은 정통성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김일성은 만 일곱 살이었다. 김일성이 글이나 제대로 썼을까 싶었던 나이에, '대한민국'은 있었다.
김일성, 혹은 사회주의 진영의 독립 투쟁을 아예 없었던 일 취급했던 과거 군사 정부의 역사 서술은 틀렸다. 그러나 보천보 전투 등을 너무 부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은 유령 취급하는, 북한 식 역사 서술 역시 잘못이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은 의도와 달리 북한 식 역사 서술과 통하게 됐다.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무시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1948년 건국' 주장으로 이익 보는 집단…북한과 삼성, 중앙일보
'1948년 건국' 주장으로 이익을 보는 집단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북한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이 낮아질수록 북한의 정통성이 강화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계속 바뀌었지만, "3.1 운동" 표현은 빠지지 않았던 한 이유일 게다. 1919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무시하는 논리가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걸 다들 알았던 게다.
다른 한 부류는 4.19 혁명 발포 책임자로 지목된 홍진기의 자손 및 친인척이다. 바로 <중앙일보>와 삼성이다. 홍진기를 추앙하려면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승만의 정적이었던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깎아내려야 한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할은 자연스레 지워진다.
'1948년 건국'을 고집하는 박근혜 정부는 대체 어느 편인가. <중앙일보>와 삼성? 아니면, 설마 북한과 주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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