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한국의 사드 배치 논의로 연일 조용할 날이 없다. 지구인이 하나 되는 축제 개막식을 며칠 앞두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중국과 미국의 암투에 다시 냉전 시대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남중국해 중재안 최종 판결이 지난 7월 12일 발표됐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언론들이 중국이 대패했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중재를 신청한 필리핀은 대승한 것일까? 중재 신청에서부터 판결까지 중국은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 필리핀이 '대승'에 맞는 국익을 챙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슷한 시기, 계획이라도 한 듯 한국에서는 갑자기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중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사드 배치가 국가와 국민의 안보 차원이라고 하지만 사심 없는 애국심에 기한 진정한 안보 차원인지 군과 정부에 묻고 싶다.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며 그 효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든 사드 문제든 당사국인 필리핀이나 한국은 국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설 중재 재판소(PCA)의 판결
남중국해 내 영유권 분쟁은 수십 년간 이어져왔다. 이번 필리핀의 PCA 제소는 2012년 4월 중국이 황옌다오(黄岩岛, 스카보러암초)를 무력 점유한 것이 시초가 됐다. 필리핀은 이듬해 1월 유엔국제해양법재판소에 남중국해 분쟁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5명의 판사로 구성된 중재 법정이 PCA에 구성되었다.
남중국해 분쟁안에 대한 PCA의 판결은 중국이 이미 제기했듯 분명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 지난 2002년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중국과 '남중국해 각방 행위 선언(Declaration on the Code of Conduct on the South China Sea)'을 합의한 바 있다. 선언에 따르면 남중국해와 관련된 분쟁은 당사국 간 상호 협의를 통해 직접 해결하기로 되어 있다(제4조).
필리핀이 이를 무시하고 미국을 배후에 두고 일방적으로, 무리하게 중재를 제기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중재는 말 그대로 제3자가 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키는 것을 말하는 데, 당사국 일방이 중재를 거절했는데 '중재'가 성립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은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에 근거,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분쟁 해결 절차 적용의 선택적 예외(제298조)를 천명한 바 있다. 이에 근거하여 당사국인 중국이 중재를 거부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PCA가 판결을 내린 것은 지금까지 국제법 판례와는 다른 이례적인 사례다.
우려되는 것은 남중국해 분쟁과 같은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이를 국제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독도와 이어도 문제로 각각 일본, 중국과 마찰을 겪고 있는 우리도 이러한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
PCA 판결에 대한 이러한 중국의 주장들은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 주변국과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제 사회의 비난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지도상에 그어놓은 남해(南海) 9단선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를 차지하며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 200해리와도 상당 부분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영해의 판단 기준을 모르는 이들이 보아도 이는 정당화되기 힘든 주장이다.
분쟁의 핵심 지역인 난사군도(南沙群岛, 스플래틀리군도)는 중국, 필리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까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언제든 마찰 가능성을 내포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이 미국을 내세워 강제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중국이 먼저 주변국과 대화하는 태도를 보이며서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다. 오히려 난사군도에 매장된 자원, 군사적 가치 등에 현혹되어 주변국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암초 위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 기지화 하는 것은 소위 '대국'으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중국이 난사군도를 중국의 영해에 편입시키고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미국의 견제에 대한 대응 차원인 것도 있다. 미국은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예의 주시하며 견제해 왔다.
이번 중재 판결이 발표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벤 로즈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은 "이번 판결은 법적 구속력이 있으며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런데 미국은 분쟁 당사국도 아니다. 이런 발언을 미국이 하는 것이 적절한가의 문제와 함께,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 비준국도 아니기 때문에 판결의 법적 구속력이 있다 없다를 논할 처지가 아니다. 국제법의 수호를 외치면서 자국의 이익을 희생해야 하거나 불리한 국제 협약에는 비준조차 하지 않는 미국의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
평화적 부상을 외치는 중국도, 세계 경찰이라 자부하는 미국도 말로는 국제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조약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것이지 결코 대국 간 권력싸움에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사드 배치 논쟁의 시점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사드 배치 논의는 뭔가 석연치 않다. 남중국해 중재 판결에 맞춰 이뤄진 사드 배치 논의는 미국의 대 중국 압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된 계획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지만, 미국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필리핀과 한국을 통해 중국에 크게 한방을 날린 것은 확실해 보인다.
힘없는 필리핀이 거대 중국과 홀로 맞서 싸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도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주변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대국으로서의 면모가 아닐까.
(윤성혜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법률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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