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NXC(넥슨 지주 회사) 회장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통했다. 회사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공연 등 문화예술에 심취했고, 인문학 소양도 깊었다. 나이 마흔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다.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언론은 그의 이런 행태를 게임 산업의 특수성과 엮어서 설명했다. 창업자가 지닌 인문학 소양이 창의적인 게임 개발과 맞닿아 있다는 게다.
그런데 정작 게임 개발자들은 이런 설명에 갸우뚱 했다.
넥슨은 만화가 김진의 작품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삼은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출시를 계기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그게 1996년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회사의 성격이 확 달라졌다. 개발보다 유통에 주력하는 회사가 됐다. 개발보다는 인수합병으로 성공했고, 이미 자리 잡은 게임에서 현금을 쥐어짜는 요령이 발달했다. 창의성, 인문학 소양 등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업 성장사다.
넥슨과 네이버의 차이
김 회장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김 회장은 이른바 '86학번 공학도' 그룹 가운데 한 명이다. 정보기술(IT) 기업을 창업해서 성공한 기업인들 가운데는 유독 1986년에 공과 대학에 입학한 이들이 많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김 회장은 이들 또래 기업인과 다른 점이 많다. 연극에 대한 관심 등 개인적 특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기업 지배 구조가 특이하다.
이해진 의장이 지닌 네이버 지분은 4.6%다. 우호 지분을 갖고 있던 개인 주주도 많이 떠났다. 경영권 위협에 취약한 지배 구조다.
반면, 김정주 회장 부부는 비상장 회사인 NXC 지분 96.6%를 갖고 있다. NXC는 넥슨재팬 지분 57.87%를 갖고 있고, 넥슨재팬은 넥슨코리아 지분 전체를 보유한다. 그리고 넥슨코리아는 네오플, 엔도어즈 등 다른 계열사 지분 전체, 그리고 넥슨지티 지분 63%를 갖고 있다.
요컨대 김 회장의 넥슨에 대한 지배력은 철옹성이다. 그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어떤 경우에도 경영권을 위협받을 일은 없으니까 그랬던 게다.
철옹성 지배 구조의 한계
그게 꼭 나쁜가, 라고 할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면에선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기업이 법을 제대로 지킨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설명이다. 이런 철옹성 지배 구조에선 총수가 비리를 저질러도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김 회장은 친구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뇌물을 줬다. 사건을 수사하는 이금로 특임검사팀은 지난달 29일 진 검사장과 김 회장을 각각 구속 및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된 건, 사상 처음이다.
아울러 이날, 김 회장은 사과문 발표와 함께 넥슨재팬 등기이사 직에서 사임했다. 같은 날,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2'도 서비스를 중단했다, 출시 23일만이다. 이 게임은 낮은 완성도, 지나친 선정성 등으로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었다. 시장에서도 외면당했다.
논란거리를 한꺼번에 털고 가겠다는 게다. 하지만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은 아니다. '서든어택2'는 어차피 망한 게임이다. 계속 서비스하는 게 손해다. 넥슨재팬 등기이사 직 사임 역시 마찬가지다. 김 회장의 경영권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NXC 회장이다. 그가 NXC 지분을 내놓지 않는 한, 그의 넥슨 장악력은 계속 견고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비결
오히려 넥슨재팬 등기이사 직 사임은 '꼬리 자르기'에 가깝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넥슨으로 향한다면, 그가 상장회사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비상장 회사인 NXC 회장은 유지하되 상장회사 등기이사 직에서만 사임한 건 그래서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런 상황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지금 넥슨에서 벌어진 사태가 네이버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총수가 비리에 연루된 사태 말이다. 이해진 의장의 경영권은 불안해질 수 있다. 실제로 이 의장은 "주주들에게 실적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토로하곤 했다. 총수가 긴장하는 게 기업에겐 좋다. 불안정한 경영권이 지닌 순기능이다.
반면, 김정주 회장은 더 심각한 비리가 드러나도 경영권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다. IT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안전판이 김 회장의 윤리 의식을 느슨하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김 회장이 40대 나이에 연극 공부를 시작하는 등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이유와도 통한다.
'3분의 1' 지분 집착이 위험한 이유
삼성 등 주요 재벌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창업자의 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을 때가 되면, 지분이 희석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러 형제 및 친척들에게로 지분이 분산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3세 총수가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참모들이 머리를 싸맨다.
삼성 계열사가 지금 복잡한 이합집산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장기적으로 지주 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지분'은, 주주 총회에서 특별 결의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을 가리킬 때가 많다. 특별 결의를 위해선 3분의 2 지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지분 비율은 3분의 1이상이다. 지주 회사 지분을 이 정도 확보하고 있다면, 어떤 돌발변수가 생겨도 경영권이 흔들릴 일은 없다.
그러나 최근의 넥슨 사태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영권'이 꼭 좋은 일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총수에겐 좋은 일이다. 김정주 회장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총수 가족이 아닌 나머지 다수에게도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적당한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약이 된다
'적당한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총수를 더 분발하게 한다. 법을 어길 위험에 대해서도 더 조심하게 만든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닐 삼성 지주 회사 지분은 20% 정도가 적당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이 이런 주장을 한다. 20% 지분 확보를 목표로 한다면, 삼성 입장에선 큰 부담이 없다. 계열사를 팔아서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줄어든다. 직원들도 덜 불안해진다. 아울러 이 부회장에겐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회사와 총수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성매매특별법 등 현행법을 어긴 정황이 있다. 이 회장은 과거에도 종종 법을 어겼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 총수가 된 뒤에는 분위기가 다를 게다. 한국 사회가 재벌 총수의 범법 행위에 대해 계속 관대할 가능성은 낮다. 이 부회장도 법을 무서워해야 한다. 범법자가 되면 경영권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너무 안정적인 경영권은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 넥슨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삼성 등 경영권 승계를 앞둔 재벌이 넥슨 사태를 잘 연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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