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26일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언론들은 벌써부터 이 법률안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렇다,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이명박 행정부 탓은 아니다.
이 법안은 입법예고가 생략됐다. 국무회의에 상정된 법안자료를 보자.
"입법예고(2006.12.22~2007.1.10)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제17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된 법안과 동일한 내용으로 재입법예고를 생략함"
그렇다. 이 법안은 이명박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이 아니다. 노무현 행정부가 이미 법안을 만들어서 제출까지 했지만 국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던 법안일 뿐이다. 문제는 "누구누구"의 행정부 탓이 아니다. '행정부 탓'이다. '관료주의 탓'이다. 시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국가의 정보독점이다.
대통령령에서 일반법으로·신원조사 제한 규정은 긍정적
1970년 5월 14일 전문개정 된 대통령령 제 5004호 「보안업무규정」이 있다. 대통령령이면서도 보안업무 관련 행정부의 일반법처럼 작동됐다. 비밀을 보호하고 공무원의 신원을 조사하며, 보안조사에 관한 권한을 국가정보원이 행사하도록 한 근거였다.
법률적 측면에서 대통령령이라는 형식적 잘못, 위임범위를 초과하여 비밀관련 업무의 전반을 정보기관이 다루는 데 대한 문제제기, 비밀의 해제나 공개에 대한 규정이 없어 알권리와 지나치게 충돌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이에 비해 이번 법안은 이런 형식적, 실체적 잘못들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법치주의의 실질화라는 측면에서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신원조사를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규정은 "국가보안을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 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신원조사를 행한다"고 정함과 동시에 공무원 임용예정자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을 하고자 하는 자, 공공단체의 임직원까지도 신원조사의 대상으로 묶어놨었다. 그런데 법안은 이번 비밀취급인가자에 대한 신원조사로 한정했다.
(물론 공무원 등에 대한 신원조사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보안업무규정」에 근거한 신원조사가 남용의 위험성이 컸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보안업무규정」이 해체되고 신원조사에 대한 별도의 일반법, 혹은 일반규정을 만들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신원조회는 좀 더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이다. 그 한도 내에서 긍정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참고로 국회법제실의 강대출 사회법제과장은 현행 국가비밀보호제도의 문제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비밀문건의 과다와 같은 과다한 비밀보호, 둘째 자의적 비밀지정, 셋째 비밀의 해제 및 공개요건 및 절차의 미비, 넷째 근거 없는 대외비 제도 등이다.(『국가기밀보호관련 법령의 정비방안』)
법안에 대한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사항들
"국방부만 하더라도 비밀건수가 Ⅰ급이 9건, Ⅱ급이 9707건, Ⅲ급이 36만 7929건, 모두 한 60만 건 정도 됩니다."(정형근 의원, 2007년 4월 27일 국회정보위원회 법률개정 공청회)
그럴 것이다. 국가안전보장의 특성상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부서는 어느 정도일까? 특히 외교통상부의 경우는 워싱턴 미 대사관과 오가는 모든 전문마저도 Ⅲ급 비밀로 묶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이번 법안은 "국방외교 등 국가안전보장"을 넘어 "통상·과학 및 기술개발 등과 관련된 국기이익"을 새롭게 '비밀'로 묶어버렸다. 얻은 것은 국가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밀행주의요, 잃은 것은 국민의 알권리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2년 "국가기밀은 일차적 결정권이 정부에 있으나, 정부가 정보공개의 원칙을 무시하여 일방적으로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했다. 국가의 정보 독점에 대한 분명한 경고다.
알권리는 헌법상의 권리다. 자유민주주의는 '기밀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자유로운 정보에의 접근을 바탕으로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것은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기본 인간형이다. 비록 노무현 행정부 시절 제출된 법안이라지만 이명박 행정부의 국정철학과 배치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찬반논쟁은 어차피 쇠고기 수입 문제 때와 동일하게 전개될 것이다. 참여정부가 제출하고 열린우리당이 뒷받침하며, 한나라당이 반대했던 법안이 이제는 역으로 이명박 행정부가 제출하고 한나라당이 호위하며, 민주당이 어정쩡하게 반대하는, 그런 모양이 될 것이다. 법안의 근저에 깔린 한미FTA 일방통행성 때문에 그렇다.
외국도 나라 차원에서 비밀을 보호한다. 하지만 그 비밀은 대부분 이번 법안 이전의 보안업무규정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우리의 기준국이 될 미국, 독일, 일본이 그렇다. 미국도 '국가안전보장'이 기준이다. 독일도 "외적 안전"이라는 표현으로 국가안전보장이 한정됨을 표현한다. 일본도 "국방상"이라고 분명히 한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통상·과학 및 기술개발까지 '비밀'로 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주권자인 국민은 알아야 한다. 알권리가 있다. 나라의 운영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민주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기밀'의 확대는 정책실패, 관료실패, 정부실패에 대한 은폐로 이어진다.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과실을 은폐한다. 결국 자기모순에 빠져들고 그 피해자는 시민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선진화'된 나라는 무분별하게 기밀의 범위를 확대시키지 않는다.
국가기밀을 보호하려면 개인의 비밀도 함께 보호해야 했다. 이를테면 영국은 지난 1988년과 1990년에 걸쳐 '의료기록 접근법'과 '건강기록접근법'을 제정했다. 접근을 철저히 제한하는 내용이다. 왜?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은 툭하면 건강보험 기록이 유출되는 나라다. 유명 연예인들의 병력을 호기심에 들여다보고, 수시로 입출국 기록을 확인하는 나라다. 국가기밀을 보호하는 법안을 제출하려면 개인의 비밀을 보호하는 법안도 함께 제출해야 했다.
나아가 국가비밀을 보호하는 법안을 제출하려면, 불필요한 비밀에 대한 정보공개를 광범위하게 허락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개정도 동시에 시도해야 했다. 형식적으로는 국익정보 등 8개 항목을 비공개 기준으로 정하고 있지만, 그 제한 범위가 사실상 무제한임은 누구나 안다. '정보공개법'이 아니라, '정보공개제한법'이라는 것쯤도 누구나 안다. 쇠고기 수입협상 관련 정보 공개도 철저히 거부되어 지금 소송 중이다. 이런 정보조차도 제한된다면 민주시민의 의사결정을 무엇에 근거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국가기밀의 범위를 강화함과 동시에 개인의 정보접근에 대한 권리를 강화시켰어야 했다.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또한 강화했어야만 하는 것이다.
보안업무규정은 국정원장이 "보안사고에 대한 전말 조사"로 규정하고 있다.(제38조) 이번 법안은 '경위조사'(법안 23조)다. 경위조사는 공공기관장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 다만 긴급한 사정이 있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는 예외다. 경위조사 과정에서 범죄행위를 발견하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을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대한 주무기관으로 정함에 따라 불가피한 조치다. 주관기관이 되는 이상 조사권한을 갖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정원 직무 중 하나로 "내란, 외환 및 국가보안법"에 대한 수사권을 법이 부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보 기능과 집행 기능, 그러니까 정보수집 분석 기능과 수사, 조사 기능이 결합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이 부분은 국정원 전체 직무조정과 연계돼야 할 사안이다.
지금까지는 국가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정보수집권 및 국가보안사범에 대한 수사권만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국가기밀보호라는 측면에서 '통상·과학 기술개발' 등의 분야까지 정보의 수집과 분석 권능이 확대되고, 이 부분에 대한 조사 권능까지 국정원이 '합법적'으로 담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히 사회적 동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대부분의 '선진화'된 나라는 통상, 과학, 기술개발 등에 대한 정보는 국가기밀의 범주가 아닌 일종의 영업비밀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취급한다. 국가가 국가소유 부동산을 임대할 때는 주체가 국가라 하더라도 시민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사법(私法)'의 적용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주체는 국가지만 사적 영역으로 보고 일반 사기업의 산업기밀과 마찬가지로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특별히 보호해야 할 국가적 과제의 경우, 예를 들어 우주항공 기술과 같은 경우에는 별도의 특별법이나 스파이 보호법을 만들어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철저히 제한적이고 보완적이다. 그 이유는 자칫 민간 영역의 기술개발과 창의성을 저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 법안의 형식적 필요성은 존중한다. 다만 실질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18대 국회의 치밀한 토론과 사회적 동의가 요구된다. 이 법안이 노무현 행정부에서 성안되고 제출된 것은 맞다. 그렇지만 ABR(Anything But Rho)야말로 이런 법안에 필요하다. 한미FTA와 관련된 쇠고기 수입협상의 교훈이야말로 이럴 때 필요하다. 설사 노무현 행정부의 정책에 동의하더라도 한번쯤 정반대의 입장에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 기준은 이명박 행정부의 국정철학이다. 작은 정부론이다. 경제성장론이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론이다.
그렇게 본다면 과연 이번 법안이 이명박 정보의 국정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무런 논쟁 없이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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