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취임 이후 기자들의 취재에 거의 응대하지 않아왔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본인의 신상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우 수석은 2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무려 1시간에 걸쳐 본인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해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문점, 혹은 논란 거리가 여전히 남는다.
법률가 출신인 우 수석은 이미 법적 검토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큰 의혹인 넥슨의 처가 부동산 매매 의혹에 대해 우 수석은 "(넥슨) 김정주 회장한테 진경준 검사장을 통하든 말든 부탁을 했느냐 아니냐 부분이 핵심 아니냐"라며 "땅에 대해서 김정주 회장한테 사달라거나, 그런 것 한 적 없다. 아예 그런 사실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넥슨의 처가 부동산 매매 의혹이 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 즉, 우 수석이 진 검사장의 알선에 의해서든, 넥슨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서든, 적극적 행위를 해서 땅이 처분됐다면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그러나 우 수석인 이 부분에 대해 수차례 강조하며 "(접촉 등) 아예 그런 사실이 없다"고 차단을 했다.
우 수석은 죄가 성립되느냐 여부 외에는 정치적 논란 말고 딱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논란은 감수해야 할 부분으로 남겨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 수석이 지금 물러나게 된다면 박 대통령은 더욱 거센 정치적 후폭풍에 시달리게 된다. 실세 측근이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데다, 사정라인에 대한 장악력은 급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레임덕을 촉진시킬 수 있다.
우 수석은 명실상부 사정 라인 컨트롤타워다. 검찰 조직 핵심 실무자인 대검 범죄정보1담당관은 이영상 전 민정수석실 행정관이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에도 우 수석 측근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검사장 승진 두 달만에 국내 정보 및 대공 수사를 총괄하는 국정원 2차장에 발탁된 최윤수 차장도 '우병우 사단'으로 거론된다. 만약 우 수석이 물러나면, 검찰과 국정원 등의 '우병우 사단'은 급격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은 우 수석이 물러날 경우 레임덕이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우 수석 역시 그 사실을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난타 당하더라도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 수석이 물러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관측도 있다.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 수석을 안고 가는 것 자체가 야당은 물론, 여권의 비박계에 공격의 빌미를 계속 제공해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권력 금수저인 우병우 사단을 시급히 제거해야 레임덕 폭탄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조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각종 의혹에 대한 우 수석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남는 것도 문제다. 법적으로 문제될 수 없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문제될 수 있을 만한 사안들의 불씨는 여전히 있다.
의혹 1. 땅 매매 관여 안 했다 → 계약 현장에 있었다
우 수석은 땅 매매 계약 현장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우 수석은 지난 18일, <조선일보>의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넥슨, 5년 전 1326억 원에 사줬다"는 당일 1면 보도에 대한 해명 자료를 내고 "민정수석은 처가 소유의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땅 매매 계약 현장에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장모가 불러서 갔고, 위로를 해 줬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이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단정적으로 한 발언이 "진경준에게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이유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즉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말과 계약서 작성하는 현장에 있었다는 말은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날 <국민일보>는 "계약 당일 이상달 전 정강중기·건설 회장의 사위가 (옆방에) 와서 계약서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부동산 중개 관계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이 전 회장의 사위는 우 수석 말고 4명이다. 해당 보도에서 어느 사위인지는 특정되지 않았지만, 법률 전문가는 우 수석 혼자다.
의혹 2. 몰래 변론 안 했다? <경향신문>과 진실게임
우 수석은 '정운호 게이트' 등과 관련한 '몰래 변론 의혹'에 대해 "확실히 말하지만 모든 사건에 선임계를 내고 다 신고했다"며 "전화변론같은 것도 한 적이 없다. 다 찾아가서 설명하고 의견서도 냈다"고 강조했다.
앞서 <경향신문>은 우 수석이 지난 2013년 1년간 변호사로 일하면서 정식으로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론해 변호사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역시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신문은 다만 "우 수석 혼자서 선임계를 내지 않고 이른바 '전화 변론', '몰래 변론'을 한 사실은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다. 검찰은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착수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우 수석의 해명과 <경향신문>의 주장이 부딪히는 상황이다. 우 수석이 <경향신문>에 법적 조치를 취한 만큼, 이 부분은 추후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의혹 3. 이민희, 본 적이 없다?
우 수석은 해명 과정에서 "정운호도, 이민희도 모른다. 만난 적도 없는데 수임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이날 이민희 씨의 운전기사가 "우 수석과 회장님(이민희)이 같이 있는 것을 봤다. 2013년 호텔 커피숍에서 한 번 봤고, 한번은 팔래스호텔, 나머지는 강남이나 청담동 식당"이라고 구체적인 장소까지 언급했다.
'진실 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우 수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경향신문>이 오보를 낸 것인데, 이 씨의 운전기사 증언의 신빙성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운전기사는 "회장님이 (나이가 7살 어린) 수석을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말도 했다.
만약 사실 관계가 밝혀진다면, 우 수석과 <경향신문> 중 한 쪽은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우 수석은 이 외에도 각종 논란에 대해 해명을 내놓았다.○ 강남 땅 매매 관련해서는 "수 없이 많은 대기업들이 (땅을 사겠다고) 다 왔다. 수없이 많은 중개업자가 수없이 많은 매수자를 데리고 와서 사겠다고 한 것이고, 그 중에 (넥슨은) 하나다"라고 말했다.○ 다운계약서 작성을 통한 탈세 의혹에 대해 우 수석은 "1300억 원이 넘는 거래를 두고 금액을 줄였다? 가능한 이야기라고 보나"라며 "절대 아니다. 저쪽(넥슨)도 법인이고 우리도 그거 (판 돈을) 받아서 세금 낸 것 아닌가. 우리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기 위해 땅을 팔았는데 세금 줄일려고 다운 계약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했다.○ 강남 땅 매각으로 근저당을 해소하는 등 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에 대해 우 수석은 "(장인이 작고하면서) 상속세가 1000억 원 넘게 나왔다"며 "가액에 해당하는 만큼 담보를 다 제공했고, 우리는 강남 땅을 팔면 갚을 수 있으니까 팔려고 노력했다. 그 일련의 과정중에 하나일뿐"이라고 했다.우 수석은 "땅을 팔아서 세금을 내니까 (근저당이) 풀린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부분에 대해 불법 목적이 있거나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세금을 내려고 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우 수석은 어버이연합 배후설에 대해서도 "배후라는 의혹 제기한 것을 읽어보니 골프장 (지분) 반을 처가가 갖고 있고 아내도 그 중 하나이지만, 나머지는 경우회가 갖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경우회가 갖고 있어서 배당금이 경우회로 갔고, 어버이연합으로 (결과적으로) 지원됐다고 하니 거꾸로 따라왔을 때 나와 관련이 있다는 논리 아니냐"며 "그 자체가 논리 비약"이라고 했다.○ 우 수석의 아들이 군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꽃보직'을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참 가슴 아픈 부분이다"라며 "유학 가 있던 아들 들어와서 군대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다. 병역을 기피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우 수석은 "부탁이고 뭐고 간에 전 그사람(아들의 상관) 모른다. 만난적도 없고, 전화 통화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주식을 받아 '주식 대박'으로 논란이 된 진경준 검사장(구속 기소)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우 수석은 "차명재산, 차명 계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현 인사 검증 시스템으로 진 검사장 소유의 주식이 어떤 식으로 취득됐는지 알 수 없다는 취지다.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인데, 검찰 안팎에서는 "1~2억 늘어난 것도 아니고 수십억이 갑자기 늘어난 것인데, 그 자체로도 논란이 있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여전히 제기된다.○ 과거 진 검사장의 비위 사실을 입수하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에 대해 우 수석은 "그런 적 없다"며 "신문 보고 무슨 얘기인가 했다"고 말했다.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라는 것이다.앞서 <동아일보>는 이날 "우 수석은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일하던 2010년 초 진경준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의 비위에 대한 여러 건의 보고를 받았다. 금융기관의 범죄를 단속해야 할 진 부장이 저축은행 및 증권업계 관계자들과 술자리, 골프 등 부적절한 만남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진 부장이 사석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 이모 변호사와의 친분을 과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며 "우 수석이 당시 진 검사장의 비위를 윗선에 보고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진 검사장의 비위는 다른 검사들의 비위 첩보와는 달리 대검 감찰본부 등에 이첩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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