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파안대소를 하며 측근들에게 말했다. 옆에서 받아쓰고 있던 황병서가 말을 받았다.
"역시 불세출의 천재이십니다. 지대지 탄도미사일 쏴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가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드를 갖다 놓아봐야 소용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잠수함에서도 쏘자는 뜻……"
(중략)
"그러고 보면 남조선 위정자들 재밌어. 남조선에서도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 공화국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잖아.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사드를 들여놓겠다니……. 나 참 이렇게 우릴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하하하"
졸저 <말과 칼> '헬조선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사드 발표가 나오기 전에 소설처럼 쓴 얘기이지만, 이게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한의 노림수는 뭘까?
북한이 19일 새벽 황해북도 황주에서 동해를 향해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이와 관련해 남한 합참은 "비행 거리는 500∼600km 내외로, 부산을 포함한 남한 전 지역을 목표로 타격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한미동맹의 사드 발표 다음 날인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를 두고 군 당국과 언론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반발 또는 무력시위"라고 풀이한다. 북한이 지난 11일 총참모부 포병국 '중대경고'를 통해 "사드 배치 장소가 확정되는 시각부터 물리적 대응조치가 실행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단편적인 분석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북한의 '기만 전술'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이 사드 배치 결정에 쐐기를 박기 위해 미사일 발사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 내 사드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초래해, 대북 압박과 제재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많은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우려한 부분이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천명한 김정은 체제로서는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최소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를 이완시켜야 할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드 배치는 북한에겐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둘째,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드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들은 세력균형을 대단히 중시한다. 그런데 사드 배치는 한미일이 미사일 방어체제(MD)를 고리로 삼아 사실상의 삼각동맹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게 된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이 사드 배치 결정을 반색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는 방법은 '전략적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북핵이 한미일 삼각동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준다면, 중국과 러시아로서도 그리 나쁜 게임만은 아닌 셈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분석과 전망은 중국과 러시아의 일부 언론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 '성주의 군사화'
또 한 가지, 중요한 그러나 매우 우려되는 상황도 점쳐볼 수 있다. 바로 '성주의 군사화'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군 관계자는 "북한이 사드가 배치될 성주를 타격하기 위해 동원할 가능성이 가장 큰 무기가 스커드 미사일"이라며 "사드가 배치되면 패트리엇과 함께 스커드 미사일에 대응한 다층 요격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커드는 발사 각도를 조정하면 충분히 사드를 뚫을 수 있다. 사드의 최저 요격 고도는 40km인 반면에, 스커드는 낙하 단계에서 이보다 훨씬 아래로 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드는 '등잔 밑이 어두운 무기'가 되고 만다. 그래서 군 관계자는 패트리엇을 언급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패트리엇은 방어 반경이 2~4km에 불과한 '지점 방어(point defense)'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고 사드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패트리엇을 배치하려면, 이것도 성주나 바로 인근에 배치해야 한다. '성주의 군사화'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성주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어디든 사드를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드 배치는 김정은 체제에게 별로 압박감을 줄 수 없다. 이에 반해 기어코 사드 배치가 강행되면, 대북 압박과 제재의 국제공조에는 큰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계산을 달리해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도 있다.
하여 사드 배치는 북핵 해결 포기 선언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를 격화시켜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백해무익한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고 압박-제재-대화의 삼중주로 김정은 체제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자꾸 졸저를 인용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서 <말과 칼>에 나오는 대목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말이다.
"휴, 내가 일전에 말한 것처럼 제도(체제) 경쟁은 이제부터야. 남조선 경제는 저렇게 엉망이지, 젊은이들은 무슨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고 있지. 난 처음에 남조선 애들이 헬조선이니 뭐니 해서 우리 공화국을 모독하는 얘긴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남조선은 저렇게 꼴아 박고 있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있으니 이제 한 번 해볼 만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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