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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은 유람선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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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은 유람선에서 시작됐다"

[김윤태의 중국은 하나?] 혁명의 고향, 지상낙원 저장성

오는 9월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에서 제11차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가 개최된다고 한다.

저장 성은 어떤 곳일까? 저장 성은 소상품 생산과 전문 시장의 발달이라는 경제적 특징 외에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는 곳이다. 구석기 시대의 원시 인류 '건덕인(建德人)‘이 활동한 지역이기도 하고, 100여 곳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된 지역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닝보(寧波) 지역의 허무두(河姆渡) 신석기 유적은 당시의 사람들이 벼농사를 하고 배를 만들어 이동하는 생활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는 중요한 문화 유적이다.

중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쌀농사의 발상지인 셈이다. 그만큼 문화유산과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항저우의 시후(西湖)와 롱징차(龍井茶), 사오싱(紹興)과 와신상담의 전설, 쟈싱(嘉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불교 성지 푸퉈 산(普陀山)과 텐타이 산(天台山)을 비롯해서 곳곳에 역사문화 유산이 그득하다. 저장만 돌아봐도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꿰어 찰 수 있을 정도다.

지상의 낙원 항저우(杭州)와 와신상담의 사오싱(紹興)

항저우는 경치가 빼어나서 '지상 낙원'으로 불린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로 항저우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이다.

굳이 마르코 폴로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항저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항저우는 중국 7대 고도(古都)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베이징, 난징, 뤄양, 시안 등과 더불어 유구한 도읍지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덕에 항저우는 중국인들도 많이 찾는 중국의 3대 관광지로 꼽힌다. 항저우의 대표 관광지인 시후(西湖)는 바다로 착각할 정도로 넓은 인공 호수이다. 송나라의 유명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눈에도 시후는 천하의 절경이었다.

▲ 소동파가 천하의 절경이라 극찬한 시후(西湖). ⓒwikimedia.org

사오싱은 춘추 전국 시대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재기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 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패배의 치욕을 잊지 않고 재기의 마음을 굳건히 하고자 했음이다. 사오싱은 오랜 역사에 걸쳐 만들어진 수많은 문화 유적뿐 아니라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가졌기에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또한 사오싱은 ‘명사(名士)들의 고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상 많은 명사들을 배출했다.

중국 문화의 거장 루쉰(魯迅), 현대 정치사의 거두 저우언라이(周恩來), 고대 중국의 4대 미인 서시(西施), 서예의 성인 왕희지(王羲之) 등도 이 고장에서 배출한 걸출한 인물들이다. 중국 장강 이남의 대중 오페라 위에쥐(越剧)도 사오싱(紹興)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다른 경극에 비해 역사는 길지 않지만, 서구적 기법을 도입하고 여성을 출연시키는 등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했다. 사오싱에서는 발효곡주 '사오싱 황주(黃酒)'를 빼놓을 수 없다. 누룩으로 빚어진 황주는 중국의 8대 명주 중 하나로 25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술이다.

혁명의 출발점인 쟈싱(嘉興)의 유람선 그리고 불교 성지들


쟈싱(嘉興)은 중국공산당이 탄생된 역사적인 날을 함께 했다. 1921년 7월말 공산당 창당 대회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한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국민당 밀정의 신고로 불심검문을 받았고, 신변의 불안을 느낀 대표들이 장소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관헌의 눈을 피해 회의 도중에 쟈싱(嘉興)으로 장소를 옮겼다. 쟈싱 난후(南湖)의 소형 유람선(畵舫)을 빌려 회의를 속개했고, 하루 종일 지속된 회의 끝에 저녁 무렵 드디어 중국 공산당의 창당을 내외에 알릴 수 있었다. 마오쩌둥과 함께 공산당 창당에 큰 역할을 한 동비우(董必武)는 후일 "중국 혁명은 유람선에서 시작되었다(革命聲傳畵舫中)"라는 시(詩)처럼 들리는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똑같이 이곳 쟈싱 난후의 유람선 신세를 졌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인해서 일본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일본군을 피해 이곳의 유람선에서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는 모두 26년인데 초창기 13년 동안은 상하이에 있었고, 윤봉길 의거 이후 8년 동안은 아주 힘들게 각지로 이동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임시정부의 장정(長征)시기라고도 한다.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정부의 추격을 피해서 전국 각지를 이동했던 장정과 다를 바 없는 고난과 역경의 세월이었다. 윤봉길 의거 이후 김구 선생께서 자신이 거사를 주도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서 곧바로 임시정부하고는 별도로 이곳 쟈싱으로 피신했다. 일제의 감시가 아주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임시정부도 마음 놓고 국무회의를 열수 없었고, 결국 일제의 추적을 피해서 이곳 쟈싱 난후의 유람선 상에서 선상 회의를 했다. 그러니까 아주 긴급한 상황에서 쟈싱이 좋은 피난처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뒤로 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난징, 창사, 류저우 같은 곳을 거쳐서 8년여 동안의 장정을 끝내고 충칭에 자리를 잡고 활동을 계속했다.

텐타이 산은 천태종의 탄생지이자 천태종의 성지(聖地)다. 수양제(隋煬帝) 때 지자(智者) 스님이 이 산에서 독자적인 수행 방법을 찾아냈고 이것이 천태종의 시작이 되었다. 그 후 백제의 현광(玄光), 신라의 연광(緣光)스님이 이곳 텐타이 산에 유학 와서 수행했고, 고구려의 파야(波若)스님은 이곳에서 수행 중 입적했다.

이러한 스님들이 백제로 신라로 고구려로 천태종을 전파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당나라 때의 불교 억제 정책으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있던 천태종을 고려가 다시 부흥시켰다. 고려의 의통(義通)스님이 고려에서 보관하고 있던 천태종 관련 서적을 가지고 와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런 이유로 닝보(寧波)의 관종사(觀宗寺)에는 의통대사가 천태종의 중흥조(中興祖)로 모셔져 있다.

저장에는 또 하나의 불교 성지가 있다. 중국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인 푸퉈 산이 그것이다. 중국 불교의 4대 성지는 4대 보살과 관련이 있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성지인 우타이 산(五台山), 실천의 상징 보현보살의 성지 어메이 산(峨眉山), 구원의 상징 지장보살의 성지 지우화 산(九华山), 그리고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의 도량 푸퉈 산(普陀山)을 중국의 4대 성지라 한다. 이 네 불교 성지는 중국의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불자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저장은 이처럼 불교의 성지를 두 곳이나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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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서 중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이며,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재중한인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만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슈뿐만 아니라 조선족 및 재중 한국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재중 한국인 사회 조사 연구>, <臺灣社會學想像>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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