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레시안은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 2001년 주식회사 형태로 출발해 2013년 6월 "10년이 넘는 언론사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를 자부하며 언론협동조합으로 새 출발을 한 지 3년을 넘기도록 안팎의 환경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의 운명을 함께 고민하는 관찰자가 아니라면,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프레시안이 이명박 정부 때를 못넘기거나, 그 다음도 진보 성향 인터넷 매체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문을 닫을 것은 명약관화하다는 애기들이 많았다.
프레시안은 이런 외부적 위기를 넘어 생존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뭣이 중한디…?"라는 질문 앞에는 늘 고개를 숙이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레시안 실망이야…"라는 외부 조합원들의 따가운 질책도 간혹 들려온다. 하지만 7월 초에 등장한 최승필이라는 이름의 새 조합원 한 분이 화제가 되었다.
"'프레시안 같은 독립언론들 많아졌으면…"
이 조합원은 프레시안 내부 조합원의 얘기를 우연히 듣다가 "이런 조직이라면 조합원이 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어 가입을 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내부 조합원의 권유를 받아서 조합원이 된 것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서둘러 이 조합원을 만나고 싶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그는 영상보안 전문업체의 임원으로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말 등산이나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등산 동행"에 의미를 두었지만, 결과적으로 등산을 함께 하는 시간은 속내를 끌어내는 인터뷰에도 도움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부담없는 등산이 가능한 우면산에서 최승필 조합원을 만났다. 그를 만나자마자 물어보았다. "보통 프레시안의 기사를 보거나 프레시안 조합원의 권유를 받고 가입했다는 경우는 많은데, 좀 특이한 동기로 가입했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처음에는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냥'이라고 할까…'느낌적 느낌'이라고 할까…"라고 당황해 했다. 하지만 조합원 인터뷰를 써야 하는데, '느낌적 느낌'이라고만 전할 수는 없다면서 "표현"을 강요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영상보안이라는 IT업계 종사자이지만 분명히 인문계쪽 출신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풍부한 표현력을 발휘했다.
"직장생활과 사업도 해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평사원이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대해 조직의 갈 방향이나 생존 등에 대해 자기 일처럼 고민하면서 얘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프레시안의 한 내부조합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프레시안이라는 조직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프레시안의 임원급인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은 조직원이 언론으로서의 프레시안의 역사와 성취에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비전을 고민하면서 함께 할 조합원들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얘기했다. 그 조합원과의 대화 중에 내가 가입해주길 원한다는 어떤 신호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나는 '조직의 평사원이 이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조직이라면…'이라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바로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에 조합원 가입신청을 했다."
'느낌적 느낌'을 구체적인 언어로 전환한 그의 표현력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누구나 프레시안 조합원에 가입하는 것은 아닐터, 그의 '느낌적 느낌'의 근원은 역시 그의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회생활에 무슨 어려움을 많이 겪은 것 같다"고 찔러 보았다. 그는 "역시 기자네…"라고 이해해 주었다. 그는 지금처럼 영상보안 업체의 임원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4년 전만 해도 "바닥을 친 인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IT리서치 분야에서 일찌감치 사업을 하던 그는 IMF 사태에서 버텨낼 만큼 사업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IMF 위기까지 넘겨냈다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바뀌어 안주하다가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는 "초심을 잃어버린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사업가로서 잘 나갈 때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절제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을 접고 난 뒤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좋아하던 술, 담배도 다 끊고, 초심이 무엇이었는지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그의 초심은 무엇일까? 그의 표현력을 다시 요구했다.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항상 비주류의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의 생태계는 크고 작은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생태계의 큰 부분들이 아니라, 다양하게 존재하는 다양한 작은 부분들에 더 눈길이 가는 타입이다. 사회적으로도 소수의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이런 목소리들이 더 원활하게 소통이 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왔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도 크게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필요한 조그만 일 중에서 내가 특히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초심이었다."
그가 지금 하는 영상보안 관련 사업도 '레드오션'의 치열한 경쟁에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원 오브 뎀' 기술이 아니라 큰 매출을 올리기는 힘들어도 꾸준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특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단다.
그는 "프레시안은 권력과 자본에서 독립한, 작지만 소금 같은 언론이 될 희망이 있어 보인다"면서 프레시안 내부 조합원들이 기가 더욱 살아날 토대가 하루 빨리 마련되길 기원했다.
그는 '비주류 성향' 답게, 다양한 독립언론들이 이 사회에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30년만의 보도지침 사건'으로 정권에 통제되는 언론들의 민낯이 드러난 요즘, 일부 '주류 언론'이 오히려 '대표 기레기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지탄을 받는 한국의 언론 생태계에서 그의 말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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