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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과 중국은 전쟁을 할 수 없나?

[박홍서의 중미관계 돋보기] 과잉 팽창 자제하는 중국

"중국은 타국의 권익을 탐하지 않을 것이고 타국의 발전을 질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한 권익을 결코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 인민은 악을 믿지도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단(事端)을 일으키지 않을 테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나라도 (중국이) 핵심 이익을 거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 또한 중국이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이 훼손되는 것을 감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7월 1일 열린 중국공산당 95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시진핑의 발언이다. 시진핑은 공산당의 집정 능력 강화나 전면적 샤오캉 사회 건설 등 기념사 대부분을 국내 문제에 할애하면서도 외교 관계에 대해 위와 같이 발언했다. "우리는 남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나 남이 우리를 침범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침범할 것이다"라고 외쳤던 마오쩌둥의 결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시진핑은 누구에게 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미국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미국만큼 중국의 '핵심 이익'을 대놓고 건드리고 있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통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고, 북핵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사드 배치를 예고하고 있다. 5월에 취임한 타이완의 차이잉원 정권과도 비공식적 접촉을 확대하기까지 하고 있다.

중국은 정말 핵심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국과의 전쟁을 불사할 것인가? 당연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사실 사활적 국가 이익이 침해될 때 손 놓고 가만히 있을 국가는 없다. 특히, 공산당 일당 영도라는 통치 정당성 확보에 목매는 중국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중국 정부가 미국의 공세에 소극적 반응을 보인다면, 대중 민족주의 세력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권 타도를 외칠 수도 있다.

미국도, 중국도, 상대의 핵심 이익 건드리지 않을 것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침범할 의도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핵무기 시대에 상호 충돌은 최소 공멸이거나, 재래식 무기를 통한 국지적 분쟁이라 해도 미-중 양국의 국가 이익은 심각히 훼손될 수밖에 없다.

2015년 현재 중국이 한해 대미 무역 흑자로 벌어들이는 돈은 무려 한화 430조 원에 달한다. 한국의 한해 예산이 약 370조 원이라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중국 경제가 얼마만큼 미국 경제에 의존적인지 알 수 있다. 미국 역시 중국이 필요하다. 미국이 현재 엄청난 '중국 달러'를 자국으로 환류 시켜 재정 적자를 보전하고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미-중 양국의 지리적 위치라는 물리적 환경은 향후 미-중 관계가 20세기 세계 대전 전야의 갈등적인 강대국 간 관계와 다를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강대국 간 전쟁은 결국 세력권 간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이 영국과 미국의 세력권을 침범하였던 것은 결국 그들의 급속한 세력 확장을 담아낼 지리적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2015년 9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주석 부부에게 링컨 침실에 있는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소개하고 있다. ⓒwikimedia.org

21세기 중국은 분명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다르다. 중국은 이미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그 영토에 대한 완전한 통제조차 힘겨워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도농 간의 현격한 격차, 신장 및 티베트 지역과 같은 소수민족 문제 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반대로 현재 중국의 영토가 급속한 부상을 담아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의 중국은 무섭게 부상하던 19세기의 미국과 닮아 있는 것이다. 미국이 대외 식민지를 추구하지 않았던 것은 평화를 애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부라는 거대한 내부 식민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외적 팽창을 할 합리적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중국으로서도 대내적 통합 및 발전이 요원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대외 팽창을 추구하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시장에서 기업의 도산이 과잉 생산과 '문어발식' 기업 확장 때문이라는 점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거대한 영토 가진 중국, 역사적으로 과잉 팽창 스스로 자제

실제로 과잉 팽창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미 한나라 시기부터 과잉 팽창을 지양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집권 초기 한무제는 흉노, 남월 및 조선 등에 대한 정벌을 통해 세력권을 확장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등 위기가 발생하자, 한무제는 '윤대의 조(輪臺詔)'를 내려 이후 군사 행동 자제와 민생 안정에 전력할 것을 결정했다.

한대 이후에도 과잉 팽창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화 질서 속에서 조공국에 외교와 내치에서 실질적인 자주권(속국 자주)을 허용했던 이유도 유교의 '덕치' 규범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게 서구 제국과 같은 강압적 식민지 건설은 궁극적으로 제국을 퇴락시키는 과잉 팽창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통 시기 중국의 외교 전략인 '기미책'은 무리한 세력 확대를 자제하려는 전략적 의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15세기 초 정화의 해외 원정을 급작스럽게 중단시킨 것도, 18세기 말 영국의 특사를 접견한 건륭제가 "중국에는 모든 게 있다"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던 것도 모두 그 기저에는 과잉 팽창에 대한 경계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6년 현재 중국도 다르지 않다. 영토가 유럽연합(EU)의 2배에 달하고, 더구나 인구는 3배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힘의 대외적 투사는 분명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외치는 '화평발전'이 단순히 정치적 수사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중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정책은 대외 팽창이 아닌가? 일대일로는 군사 안보적 측면의 세력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 안보적 과잉 팽창이 국내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면, 일대일로는 오히려 대내 경제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목표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의 이익을 모두 수용할 만큼 넓다."

시진핑이 미국에 누차 강조하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상생이 가능한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중국의 발전 경로가 20세기 초 독일과 일본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다수의 국제 정치학적 시각들은 향후 미-중 양국의 갈등이 불가피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적 세계 질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중국은 생존을 위해 힘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패권 국가인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미-중 사이의 광대한 지리적 공간을 포착하지 못한다. 미-중 관계는 20세기 초 갈등적인 영-독 관계나 미-일 관계와는 물리적 차이가 있다.

오히려 21세기 미-중 관계는 20세기 후반 미-소 관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미-소 양국은 그렇게 상호 갈등 지향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왜 상호 간 전쟁을 극도로 회피하였는가? 미-소 양국 모두 광활한 세력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상대방의 세력권을 탐할 합리적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을 '대충돌'의 전조가 아니라 세력권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는 기 싸움이라 볼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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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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