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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박근혜만 결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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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 박근혜만 결단하면 된다

[박홍서의 중미관계 돋보기] 북핵 대응 5가지 시나리오와 마지막 대안

"그때 잠깐 미쳤었나봐. 수류탄이나 부비트랩을 넣어뒀어야 하는데…. 갖은 욕을 쓴 편지를 넣어두었어…."

한국 전쟁을 다룬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이다. 시도 때도 없이 주인이 바뀌는 동부 전선 애록 고지. 퇴각하는 국군 소대원들은 담배며 초콜릿이며 소지품들을 땅에 묻는다. 어차피 또 탈환할 거 힘들게 가지고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것.

며칠 후 고지를 탈환하고 묻었던 상자를 열어보니 인민군들이 물건은 다 가져가고 상자 안에 인분을 잔뜩 담아 놓았다. 소대원들은 분노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욕설이 담긴 쪽지 이외에는 '실질적' 복수를 하지 않는다.

고지는 다시 일진일퇴, 재탈환한 고지의 상자 안에는 그때 물건 잘 썼다는 인민군의 편지와 북한산 청주 대병이 들어있다. 이후 국군과 인민군들은 상자를 매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묘한 협조(내통) 관계를 이룬다.

서로 적대 행위를 반복하는 행위자 간에 어떻게 협력이 생겨날 수 있을까?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ad)는 '관용'이라고 말한다. 상호 보복(tit-for-tat) 상황에서 어느 일방이 먼저 '관용'을 베푼다면 협력이 창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분을 수류탄으로 복수하지 않은 소대원들의 관용이 이후 인민군과의 협력 관계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2016년 남북 관계는 영화 속 장면과 다르다. 여전히 적대 행위가 무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일방도 관용을 베풀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진정 해결하고 싶다면 누가 먼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북핵 대응 5가지 시나리오, 실현 가능성은?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 방법은 5가지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북핵 인정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핵을 가져서는 안 될 '불량 국가'가 핵을 가지려 한다고 주변국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북핵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소된다.

물론 그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양국이 공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해와도 같다. 북핵 인정은 곧 핵 확산을 초래해 필연적으로 미국의 헤게모니를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핵 인정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함으로써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그만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핵 개발을 추진하던 박정희 정권이나 파키스탄의 부토 정권을 미국이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의 침략 역사가 여전히 뇌리에 선명한 중국으로서도 일본의 핵무장은 심각한 안보 위협일 수밖에 없다.

둘째, 북핵 인정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극단적 대안이 존재한다. 북한 붕괴 전략이 그것이다. 북한 붕괴도 북핵 문제의 주체가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근원적인 해결 방안이다. 그러나 북한 붕괴 역시 그 실현 가능성은 낮다. 필연적으로 초래될 전쟁의 폐해는 논외로 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대미 세력 경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배제된 상황에서 진행된 한국 주도의 통일은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중국이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협조 하에 북한에 대한 '공동 통치(condominium)'를 시도할 수도 있다. 해방 정국 당시 한반도 신탁 통치의 재판이다. 러시아나 일본도 참여가 보장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 역시 이러한 상황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역시 실현되기 어렵다.

셋째, 북핵 방치다. 현재의 상황이다. 오바마 정권이 내세우는 소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의 요체이기도 하다. 시진핑 정권 역시 집권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및 '6자 회담' 재개라는 상투적인 수사 이외에 실질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이나 일본, 러시아도 다를 바 없다.

사실, 이러한 방치 전략은 후기 산업 사회의 독특한 지배 전략인 '슬럼화' 전략의 국제 정치 확장판이기도 하다. 우범 지역을 '건강한' 지역과 격리시키고 무엇을 하든 내버려두는 전략이다. 격리 구역 밖으로만 나오지 말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들의 자율성을 인정한다. 그 지역을 '정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효용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방치하겠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핵 개발을 방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북한으로서도 손해 볼 건 없다. 어찌됐든 자신의 핵 능력은 계속 증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수소 폭탄 실험과 잠수함 발사 미사일(SLBM)까지 개발했다고 으스대고 있다. 방치 전략의 부정적 결과다.

넷째, 북핵 방치 이외에 남는 대안은 결국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뿐이다. 핵 폐기와 평화 협정을 맞바꾸는 것이다. 9.19 공동 성명도 이를 이미 '훌륭하게' 규정해 놓았다. 관련국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제 핵 폐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2년 헌법에 핵 보유를 명기하고, "9.19 공동 성명이 최종적으로 소멸됐다"고까지 하고 있다. 노동당 7차 대회에서는 '핵 무력-경제 병진 노선'을 공식화하고 핵을 통해 안보를 확립하며 그 기반 위에서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외 안보적 측면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도 핵의 효용 가치가 막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이 핵 폐기에 나설 가능성은 더욱 낮다. 북한 정권에게 핵은 원활한 주민 '동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 어떠한 권력도 주민 동원에 목을 맨다. 지배 권력이든 저항 권력이든 동원력을 상실한 권력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권력의 힘을 끊임없이 과시해 인민들을 동원케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핵 실험을 할 때마다 전국적으로 핵 실험 경축 군중 대회가 성대히 열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이벤트를 통해 '증명'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핵 실험은 '군사적 아리랑'이다. 핵 실험을 통해 권력의 강건함을 주민들에게 '상연'하고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 해도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대안은 '핵 동결'과 평화 협정의 교환뿐이다. 북한은 핵동결을 받을 수 있는가? 가능하다. 핵 동결은 북한 핵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북한이 더 이상 핵을 이용한 강압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안, '핵 동결'과 평화 협정의 교환

4차 핵 실험 이후 평화 협정 카드를 주장하고 있는 중국 역시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리수용이 이끄는 대규모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해 조중 간 '우애'를 확인하기까지 하였다. 러시아, 일본도 핵 동결과 평화 협정 카드를 수용할 수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키는 방치 상태보다야 핵 동결이 낫다. 합리적 선택이다.

미국으로서도 핵 동결, 평화 협정 카드는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 북한의 핵 능력이 미국을 실제적으로 위협할 수준이 아니라면, 현재적 시점에서 핵 동결에 타협하는 것이 미래의 통제 불가능한 북핵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최근 미 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가 방한해 대화 가능성을 떠 본 것은 이러한 미국의 의중을 드러낸다.

▲ 미국의 최고위급 안보 책임자들. 맨 왼쪽이 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 ⓒwikimedia.org

이렇다면, 핵 동결에 반대하는 행위자는 남한만 남는다. 박근혜 정권의 '선핵폐기' 주장은 상호주의란 기준에서 보면 합리적인 대응이다. 9.19 정신을 훼손한 일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도 핵 동결을 수용하기는 힘들다. 정권을 떠받치는 보수 세력이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 남한이 핵 동결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면 북핵 문제는 앞으로도 방치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무리 핵 동결 카드를 수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동맹국 남한을 소외시키면서까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위와 존재는 늘 별개의 문제다. 북한 붕괴를 바란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냐라는 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 둘을 혼동하는 것은 하늘을 날고 싶다고 빌딩에서 무작정 뛰어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한이 묻어둔 상자에 핵이라는 인분을 가득 채워놓은 북한. 똑같이 인분을 담아 놓을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형태든 일말의 관용을 보일 것인가? 선택은 이제 남한의 몫이다. 북에 관용을 베푸는 것은 비겁한 '정신승리법'이 아니다. 남은 阿Q처럼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분을 담을 것인가 편지를 써 넣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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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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