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는 김근태였다. 그와 함께 품었던 꿈이 사람들을 한데 묶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점점 불어나 단체를 꾸렸다. 지난 16일 창립 보고 대회를 연 사단법인 '다른 백년'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김근태의 꿈'으로 묶인 사람들
이래경 다른 백년 이사장은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후원회장을 지냈었다. 다른 백년 이사 및 기획위원 등을 맡고 있는 최상명 우석대학교 교수는 김근태민주주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근태 전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난 게 지난 2011년 12월 30일이다. 그가 품었던 꿈도, 세월에 점점 떠밀려 갔다. 그의 꿈에 다가가려면, 숙제를 해야 한다. OECD 국가 1위인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최저 수준의 출산율, 미래를 포기한 청년들 등 이른바 '헬조선'의 현실이 바로 숙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전 상임고문과 가까웠던 이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여기에 연구자, 언론인 등이 결합하면서 다른 백년 창립 준비 모임이 됐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민주 진영의 정권 탈환은 실패했다. 그 결과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노골적으로 뒤로 돌렸다. 수권 능력이 부족했던 야당과 시대를 읽지 못하는 여당. 중간에 잠시, 새정치 바람도 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중심에 있었다. 일부는 여기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왜 '백년'인가?
백년을 내다보는 긴 시야가 더 절박해졌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정치는 대중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됐다. 창립 준비 모임 시절, 다른 백년이 마련했던 여러 토론 및 공부 모임들을 가로지르는 생각이다. 예컨대 다른 백년 창립 준비 모임이 진행한 백년 포럼은, 말 그대로 지난 백년의 역사를 잉태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과 독재의 근현대사가 생겨난 배경을 보다 큰 시야로 돌아봤다.
다른 백년, 백년 포럼. 그들은 왜 그토록 '백년'에 집착할까. 다른 백년 이사를 맡고 있는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해서 배경 설명을 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한다"라는 표현이다. 현실은 지난 역사가 낸 궤적을 따라 흐른다. 따라서 다른 길을 따라 걷고자 한다면, 지난 역사가 낸 궤적부터 살펴야 한다. 요컨대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지난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제도정치 밖의 정치, 대학 밖의 대학, 언론 밖의 언론'
이래경 이사장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관심이 많다. 숱한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피를 뿌렸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120여 년 동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4.19혁명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 6월 항쟁, 그리고 IMF 외환위기를 거쳤다. 제국주의와 독재에 맞섰던 이들의 희생이 켜켜이 쌓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여전히 '헬조선'에서 살아간다. 뭐가 문제였을까.
분명한 건, 과거의 방식으론 한계가 명백하다는 점이다. 한두 차례의 선거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위험하다. 새로운 대안을 잉태할 시민사회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그러자면 교육과 정치, 언론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제도정치 밖의 정치, 대학 밖의 대학, 언론 밖의 언론'을 지향하는 다른 백년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쯤에서 다른 백년 창립 준비 모임을 이끌었던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마침, 그들이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다른 백년 창립대회 행사로 마련된 토크쇼다. 이래경 다른 백년 이사장, 김동춘 다른 백년 연구원 원장(성공회대학교 교수), 최상명 우석대학교 김근태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우석대학교 교수),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등 다른 백년 법인 이사 5명 전원이 참가한 '백년 토크'다.
"제대로 된 시민 혁명이 없었다"
첫 번째 발언자인 이래경 이사장은 "장사꾼, 그러니까 기업인 출신"이라며 자기 소개를 했다. 그가 평생 사업을 해서 모은 자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사회적 상속' 형태로 내놓으면서, 다른 백년 창립 계획이 구체화됐다.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 등을 오래 했던 그는, 생계를 위해 오퍼상을 시작했고, 이후 독일 기업 호이트의 한국 법인 대표이사가 됐다.
그는 "다수 시민의 집단지성이 발현된 지난 총선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세월이 대책 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을 대신할 야권의 역량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다. 야당의 집권이 대중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잘못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과거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의 관성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등의 문제는, 낡은 프레임으로는 풀기 힘든 문제다.
김근태 전 상임고문과 평생 가까웠던 그는, 김 전 상임고문이 자주 쓰던 표현인, "제민지산(制民之産)"을 인용했다. <맹자>에 나오는 내용인데, 대중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게 정치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헬조선'이라는 비명이 나오는 현실은 정치가 근본에서 멀리 이탈했다는 증거가 된다.
결국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제대로 된 시민 혁명이 없었다"라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눈앞의 과제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할 지식인들이 "역사적 책임 의식이 결여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성숙한 시민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뭘까. 그는 '새로운 경로 만들기'가 바로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자살 친화적 경제 성장
최상명 교수가 이어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 역시 김근태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두환 군사독재가 철옹성 같던 1984년, 최 교수는 김근태 전 상임고문을 처음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새로운 계기를 만났다. 당시 최 교수는 한 경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 전 상임고문이 당시 상황에 대해 문의했고, 최 교수는 먼저 IMF 구제 금융을 겪은 나라들에 대해 조사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자산 및 소득 양극화가 심해져 있었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을 따를 터였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불거진 새로운 과제 앞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최 교수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김 전 상임고문 옆을 지켰다.
최 교수 역시 '새로운 경로 만들기'가 김 전 상임고문이 남긴 숙제라고 본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김근태의 꿈'에 한발 더 다가가려면, 지금껏 우리가 따랐던 성장 경로를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경로는 '자살 친화적 성장 경로'였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자살률이 높아졌다. 이런 사회경제시스템을 넘어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가 다른 백년을 통해 하려는 일이다.
"새로운 민주화 세력을 어떻게 세울 건가"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은 사회경제적 경로 변경과 더불어 한 가지 과제를 더 제시했다. 바로 새로운 변화를 일궈낼 주체를 키우는 일이다. 박 이사장은 "예전에 그토록 열심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되물었다. 과거의 활동가들은 흩어졌는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운동가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는 게 숙제라는 말이다.
이어 그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한다"라는 문장을 소개했다.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꾼다면, 과거를 다른 눈으로 살펴야 한다는 게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권력은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싸움터인지를 잘 안다.
'자살 친화적 성장 경로' 대신 새로운 경로로 옮겨가려면, 과거의 성장 경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박 이사장은 "새로운 민주화 세력을 어떻게 세울 건가"라고 거듭 질문했는데, 이는 '자살 친화적 성장 경로'를 잉태한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맞물린 작업이다. 과거의 경로를 제대로 반성한 이들만이 새로운 경로를 찾아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연탄 가스…관찰자로만 있을 수 없었다"
이어서 발언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자신의 각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론계 은퇴를 앞둔 그를 가리켜, 사회자인 김미경 PD는 "투사가 될 준비를 했다"고 소개했다.
이 주간은 자신의 30여 년 언론인 생활이 민주화 이후 30여 년 역사와 거의 겹친다고 했다. 숱한 시민과 학생이 피를 흘린 끝에 절차적인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다양한 사회경제 영역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인권이 퇴보하는 현상을 30년 가까이 지켜봤다.
그는 "사회 전체에 연탄 가스가 스몄다"라며 "사람들이 조용히 죽어간다"고 했다. 아울러 한국 사회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저(底)신뢰 사회'가 됐다. '각자도생' 논리만 판치는 정글이다. 그래서 그는 "관찰자로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이야기했다.
평생 기자로만 살아온 그에겐, 거대한 변화다. 그는 "취재 및 논평 대상에 늘 거리를 둬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기자의 직업윤리니까. 그래서 그는 무대 밖에서 관찰하는데만 익숙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무대 위로 뛰어오르려 한다. 어색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다른 백년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진행될 예정이다. 연구, 논평, 포럼 등인데, 이 주간은 이 가운데 논평 역할을 주로 맡기로 했다. 상투적이고 일회적인 논평 대신, 집중력이 있는 논평을 선보일 생각이다. '백년을 위한 합의'라는 이름의 논평인데, 책과 인물, 대중문화에 대한 논평도 포함된다.
"후배 연구자가 사라져간다"
마지막 발언자는 다른 백년 연구원 원장을 맡은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였다. 그는 이래경 이사장과 젊은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앞서 소개한 다른 백년의 세 가지 활동 영역 가운데 연구 부문을 담당하기로 했다. 여섯 개의 연구 분과가 있다. 우선 계량 지표를 다루는 리서치 부문이 있다. 또 남북관계 등을 다루는 국제 부문, 대안 민주주의와 사회적 경제를 연구하는 부문이 각각 있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중요한 특징을 규정하는 자영업을 연구하는 부문이 있고, 30~40대 소장 연구자 모임이 있다.
김 교수는 "후배 연구자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인문 사회과학 등 기초학문 연구자의 싹이 마르면, 장기적으론 정치와 정책, 언론과 문화의 수준이 떨어진다. 이는 다시 시민사회 역량의 퇴보로 이어진다. 시민사회의 힘을 키우려는, 다른 백년 입장에선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셈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사람을 키우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른 백년이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다. 미래의 정치가, 연구자 등이 모여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경로 변경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다.
다른 백년의 과제
토크쇼에 앞서 김 교수는 '다른 백년의 판을 여는 말'을 낭독했었다. 식민지적 근대성, 서구 따라잡기,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 등으로 요약되는 지난 백년의 질서가 전환기를 맞았다고 했다. 새로운 경로를 찾아서 이동하는 작업을 다른 백년이 주도하겠다는 게다. 이를 위한 다른 백년의 과제로 김 교수는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제도정치 밖의 정치, 정당 아닌 정치다. 제도정치가 제 역할을 하도록 담론과 정책을 만들어 압박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30년 민주화 운동의 에너지가 고갈된 만큼, 미래의 정치가와 사회운동가를 키우는 일이다.
세 번째는 대학 밖의 대학이 돼 지식 유통과 생산의 거점을 만드는 일이다.
네 번째는 언론 밖의 언론이 돼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다선 번째는 철학과 사상을 만드는 기지가 되고, 교류와 친교의 사랑방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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