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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에 물린 농협, 벼랑 끝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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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에 물린 농협, 벼랑 끝 위기

농협법 개악 위기에 신임 회장 압수 수색까지

국책 은행도 아닌 농협은행이 조선-해운 업계에 수조 원에 달하는 부실 대출, 보증으로 궁지에 몰린 차에 17일 농협중앙회에 대한 검찰의 압수 수색까지 단행되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있다.

검찰의 압수 수색은 지난 1월에 치러진 제23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김병원(63) 농협중앙회장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따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이성규)는 이날 서울 중구 농협 본사 11층 김 회장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현재 농협중앙회장 선출 방식은 농협조합장들이 선출한 290여 명의 대의원들이 투표로 뽑는 간선제다.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로 선출됐다. 결선 투표가 치러지기에 앞서 "김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문자 메시지가 선거인단에 뿌려졌는데,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1차 투표 후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보내진 것은 불법 선거에 해당한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미 검찰은 선거 당시 문자 메시지 발송 등 부정선거 혐의를 받은 관계자들을 잇따라 구속 기소하고, 김 회장도 직접 개입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압수 수색에 나선 것이다.

농협은 전국 1155개 지역조합과 조합원 235만여 명, 자산 약 400조 원, 31개 계열사, 임직원 8800여 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으로 부패와 비리, 관치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농협은 태생부터 정부 주도로 설립돼 중앙회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다가 1988년 직선제로 전환됐다. 하지만 직선제로 선출된 3명의 중앙회장이 모두 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받았고, 예외 없이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3월 퇴임한 최원병 전 회장도 측근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 검찰이 농협중앙회장 선거 부정 의혹과 관련해 김병원 현 회장의 개입 단서를 포착해 전격 압수 수색에 나섰다. 17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농협은행, 국책 은행보다 높은 대기업 부실 채권 비율

농협중앙회장들의 수난사가 이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농협중앙회장은 비상근직이지만 '책임 없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기형적인 자리다. 책임도 없이 권력만 누리는 회장이 이끄는 조직이 수백 조 원의 자산을 주무를 때,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농협은행이 국책 은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중 은행이 도저히 안되겠다고 조선 업체들의 채권단에서 빠져나갈 때 끝까지 남은 것도, 농협이 기형적으로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농협은행은 조선 등 대기업 부실 채권을 떠안고 있는 비율이 10%에 육박한다. 지난 1분기말 기준 농협은행의 대기업 부실 채권 규모는 1조9832억 원으로 전체 대기업 여신 22조1879억 원의 8.94%에 이른다. 지난해 말에는 대기업 부실 채권 비율이 9.44%로 10%에 육박했다. 구조 조정 대상이 된 조선업과 해운업의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 1분기말 기준 산업은행의 대기업 부실 채권 비율은 6.48%였고 지난해말에는 6.75%였다. 시중 은행들의 대기업 부실 채권 비율은 3% 내외다.

농협의 전체 여신에서 차지하는 부실 채권 비율도 시중 은행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지난 1분기말 기준 농협은행의 고정이하여신(부실 채권)은 4조 원이다. 전체 여신 186조5000억원의 2.15% 수준이다. 산업은행(6.70%), 수출입은행(3.35%)보다 낮지만 시중 은행 대부분이 1% 내외라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농협은행의 부실 채권 규모도 산업은행 8조6000억원보다 적지만 수출입은행의 4조2000억 원과 맞먹는다.

게다가 농협은행은 여신에 대한 건전성 분류 자체를 보수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이서 시중 은행 수준의 보수적 기준을 적용하면 실질적인 부실 채권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평가된다. 농협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도 약 1조4947억 원의 여신을 제공한 상황인데, 여신 분류 등급을 최상위인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시중 은행 수준으로 대손충당금을 적립한다면, 농협은행이 2조5000억 원 정도를 추가해야 하지만 자금 마련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리스크. 여신 관리 시스템 유명무실


농협 측에서도 그동안 농협은행이 산업에 대한 이해도 없이 외형만 늘리기 위한 무분별한 여신을 많이 해왔고, 이를 통제하는 심사나 감리 시스템도 없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1년 전부터 산업 분석과 여신 관리 시스템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업계에서는 리스크 관리 능력 구축이 단기간에 형식만 갖추었다고 농협은행이 제대로 가동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농협은행의 리스크 관리 담당 임원과 여신심사 담당 임원 자체가 리스크 관리 분야 경험이 거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은 여전하다.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는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수출입은행장 시설 성동조선해양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이렇게 문제가 되는 농협을 개혁하기 위해 농협법을 바꾸기 위한 정부의 개정안도 지난달 20일 입법 예고됐다. 하지만 오히려 농민들로부터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거제에서 호선제가 개혁?


개정안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장을 선거로 뽑아서 비리가 많다는 이유로 30명으로 구성된 이사진끼리 호선하는 것으로 바뀐다. 정권에 입맛에 맞는 인물이 회장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내년 2월 출범하는 농협경제지주의 대표 체계를 농협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 경우 조합원 수가 많은 농업인 중에서 축산경제 대표가 선출되거나 아예 대표를 뽑지 않을 수 있다.

지난 2000년 축협이 농협과 합쳐지면서 농업과 축산업의 산업 구조가 다른 점을 감안해 농협중앙회는 농업 경제와 축산 경제의 대표를 따로 두면서 축산 경제 대표는 축산 조합장들이 추천하는 인물로 선임하도록 특례 조항을 두었다. 개정안은 이 조항을 삭제해 축산 종사자들은 "정부가 축산을 버렸다"고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장의 비대한 권한을 축소한다는 이유로 각 부문 대표들이 독자적인 권한을 갖도록 바꾸었다. 하지만 오히려 정치권의 압력에 더욱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개정안은 이달말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8월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전국농업경영인조합장협의회와 전국신임조합장협의회, 농업조합장 정명회 등 3개 농협 조합장 단체는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농협법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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