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조선업의 구조 조정, 그리고 하청 노동자의 대량해고가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프레시안>에 연재된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2015년 연재된 '조선소 잔혹사', 그리고 지난 6년간 허환주 기자가 조선소를 취재하며 쓴 기사들을 바탕으로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라는 책이 발간됐다. <프레시안>에서는 책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싣는다.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울산에서 또 사망 소식이 날아들었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만 세 번째 발생한 사망 사고였다. 이번에도 하청 노동자였다. 현장 노동자들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블라스팅 공장 내에서 작업하다 사단이 났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공장 내 총 100개의 작업등 중 27개가 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주일 뒤, 또다시 노동자 둘이 죽었다. 18일과 19일, 연달아 굴착기에 끼어 사망하고,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
5월에도 사망 사고는 이어졌다. 10일과 11일 각각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두 조선소는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다. 5월 기준으로 한 그룹에서 총 일곱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셈이다. 이 중 다섯 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2014년, 열세 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전쟁터 병사보다 5배나 더 죽는 노동자들
사고가 있기 전인 3월, 현대중공업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중요한 취재원이니 안 만날 이유가 없었다. 내심 기대했다. 그간 일어난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려는 게 아닐까.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자신들도 별수가 없는데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전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하청업체에 아무리 요구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단다. 일하다 사람이 죽기는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인데 자신들만 너무 집중해서 다루는 게 아니냐고 항의도 했다.
잠자코 있으려다 한마디 했다. 현대중공업에는 하청 노조가 있어서 그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하청 노조도 없는 곳에서는 그런 소식도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사실 '왜 우리만 비판하느냐'는 그의 말도 일리는 있다. 노동부 집계로 2014년 한 해 동안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1850명. 보수적으로 잡은 통계에서도 하루에 다섯 명이 죽어 나간다. 현대중공업 그룹에서만 2014년 한 해 동안 열세 명이 죽었다 해도 전체 사망자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일지도 모른다.
매년 산재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2014년 국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희생된 사망자 수(357명), 1991년 걸프전 때 미군 사망자(382명)보다 약 다섯 배나 높은 수치다. 이라크전 종전 때까지 사망한 미군 사망자(총 4,412명, 1년 평균 490명)보다는 3.6배나 많다.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동안 사망한 미군 사망자(총 2,346명, 1년 평균 180명)보다는 열 배나 많은 수치다. 전체 인원 대비 사망률은 차치하고 사망자 수로만 본다면 전쟁터 병사보다도 다섯 배 이상 위험한 삶을 한국 노동자들은 살고 있는 셈이다. 말 그대로 '산업 역군役軍'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천장이 무너져 깔려죽는다면?
내게는 이런 비극이 유독 비정규직에게만 닥치는 것처럼 보였다. 공개된 노동부 통계자료에는 1,850명의 사망자 가운데 누가 정규직인지, 누가 비정규직인지 구분하고 있지 않았지만, 실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이 죽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했다. 중소 사업장의 경우 하청업체가 대부분이었고, 이들 사업장에서의 사망률은 대형 사업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사실 죽어 가는 비정규직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비정규직'이 이제는 너무 흔했고, 그 숫자가 늘어난 만큼 죽어 가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리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이런 죽음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천장이 무너져 깔려 죽고, 서류 결재 받으러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죽고,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타다 추락해 죽는다면….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으로 매일 다섯 명씩 죽는다면 어땠을까?
서울은 여느 지방 도시와 비교해서 매우 안전한 도시다. 2014년 노동부의 전국 16개 시도별 사망만인율을 보면 서울(0.49‱)은 제주도(0.43‱) 다음으로 전국 2위를 차지했다. 평균 만인율은 1.08‱였다.
2015년 38명이 사망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사태를 생각해 보자. 메르스 발병부터 종식 선언까지 217일이 걸렸으니 일주일에 한 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당시 서울시와 중앙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에서 불거졌던 제도 문제도 일일이 손을 보았다.
하지만 일하다 죽어 가는 노동자의 죽음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다. 이는 정부만이 아니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대중을 질타하는 게 아니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다. 내 주변에서 그런 어이없는 죽음을 목격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메르스와 달리 나와는 상관없는 일, 다른 도시의 이야기라고 치부해서일까. 하지만 나는 그들의 죽음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같은 작업복 입고 같은 조선소에서 일하지만…
요즘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소 구조 조정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 시작은 현대중공업이다. 300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사무직, 정규직 중심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의 해고는 시작된 지 이미 오래전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도, 언급하는 이도 거의 없다.
2016년 5월 현재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불황이라는 이유로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다. 2014년 12월 말 4만105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은 2016년 3월 말 현재 3만331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1년 3개월 사이에 7742명이 사라진 셈인데, 그야말로 소리 소문이 없었다.
2016년 4월 기준으로 1분기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배는 세 척에 불과하다. 해양플랜트 관련 수주는 2014년 11월 이후 전무하다. 이런 현상은 거제에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조선업종 노조에 따르면 남은 해양플랜트 일감은 2016년 6월부터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2016년 올해에만 최소 2만 명 이상의 하청 노동자가 대량 해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워낙 하청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밀어내면 앞으로 닥칠 물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국내 대형 조선 3사에는 1.5~2년 정도의 물량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회사 측도 판단한 듯하다.
개미처럼 일해 온 사람들이 노조도 없이 제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그런 그들이 조선소에서 해온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꺼려 하는 위험한 일을, 그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떠맡았다.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조선소에서 일해도 임금 차별부터 자잘한 간식비에 이르기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모든 게 달랐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거나, 그게 아니면 사라지는 존재가 지금의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비단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 일일까. 이른바 '헬조선'을 살아가는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슷한 처지에 있다. 우리 집을 지켜 주는 아파트 경비원, 내 주변을 정리해 주는 청소 노동자에서부터, 화이트칼라로 보이지만 계약직인 사무직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모든 노동자들이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고 버려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사용되고 버려지는 그들
과거 나는 경상남도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했다. 취재를 위해서였다. 고작 열흘 남짓 있었던 곳이지만 골목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관방의 큼큼한 '아저씨 냄새'도 잊히지 않는다. 살면서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지내던 여관방 서랍에서는 그림 두 장이 나왔다. 삐뚤빼뚤 서툰 솜씨로 그린 앵그리버드와 정체 모를 동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가 그린 게 분명했다. 근방 여관에는 가족 단위의 투숙객이 적지 않았다. 노동자인 아버지 혹은 남편을 따라 나선 이들이다. 내가 묵은 방 또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개월 동안 그들의 '집'이었을 것이다. 허름한 방에서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가 눈앞에 그려졌다. 그 가족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홀로 여관방에 누워 있으면 그런 생각이 문득 나를 괴롭혔다.
나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삶과 일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어떻게 조선소로 흘러오게 됐는지, 조선소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길래 그토록 황망하게 사라져야 하는지……. 내가 경험한 조선소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들의 삶과 현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를 통해 현재 '헬조선'을 살아가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톺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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