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에서는 중국판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라 일컬어지는 드라마 <환락송(歡樂頌)>이 인기리에 종영했다. <환락송>은 웹 소설을 원작으로 한 42부작 장편 드라마로, 서로 다른 직업과 개성을 가진 다섯 명의 직장 여성이 상하이에 위치한 환락송이라는 22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환락송>의 가장 큰 매력은 중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차와 젊은이들의 팍팍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환락송>은 재벌 2세,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 아르바이트, 이직, 남존 여비 사상 등 현대 중국 사회를 아우르는 이슈들을 거의 모두 투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하이 드림을 꿈꾸며 시골에서 상경한 23살의 직장인 추잉잉(邱螢螢)은 한달 월급으로 4000위안(한화 약 73만 원)을 받는데 집세와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을 하곤 한다. 그녀의 룸메이트 관쥐얼(關雎爾)은 22살의 외국계 기업 인턴으로 가장 성실하고 착한 캐릭터이다. 이 둘과 한집을 쓰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서른 살의 판성메이(樊勝美)는 가정 환경 탓에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해외 유학파 출신의 재벌 2세인 취샤오샤오(曲筱綃)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MBA를 졸업하고 월가에서 일하다 귀국한 30대 초반의 안디(安迪)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웃으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가 방영 초기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중국 시청자들은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서로 결혼 및 가족 관계에 대한 고민을 토론하고 이것들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점점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다. 특히 극 중에서 끊임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만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판성메이의 푸념 섞인 대사는 중국 시청자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서른 살이나 된 여자가 돈 한푼 모아놓은 것이 없어. 오빠가 결혼할 때 마련한 집의 계약금도 내가 냈고, 대출도 내가 갚고 있고, 심지어 조카가 태어났을 때도 내가 돈을 냈어야 했어."
보통 드라마가 남녀 한 두 커플의 연예 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것과 달리 이 드라마는 다섯 명의 직장 여성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루다 보니 다양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중국 사회의 문제들을 부각시키며 공론의 장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중국 드라마는 시대극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탄탄한 스토리와 세련된 연출로 한국 시청자들의 높은 눈높이도 충분히 충족시킬 만큼 잘 만들어졌다. 드라마 속 여배우들의 스타일은 한국 여배우들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고, 세트장의 배경이나 소품도 한국 드라마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물론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멋진 야경도 한국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이 드라마를 본 후에 상하이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싶을 만큼 중국 드라마가 어느새 한국 드라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밖에도 이 드라마의 성공에는 홍보 전략도 주효했다. 젊은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실제로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계정을 개설하여 시청자들과 소통한 덕분에 웨이보에서 '환락송'이란 단어의 검색수는 43억5000건을 돌파했다.
<환락송>은 중국 사회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어 학습자나 중국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의 현실도 배우고 드라마 속 중국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를 배울 수 있어 그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독자들을 위해 주인공들의 대사 몇 마디를 소개해 볼까 한다.
"나도 가오푸솨이(高富帥)가 좋지만, 그런 사람을 만날 수가 있겠어?"
"옆집으로 이사온 여자는 바이푸메이(白富美)인 것 같더라."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법한 표현들로 최근 중국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가 들어 있다. '가오푸솨이(高富帥)'라고 함은 키 크고 돈도 많고 잘 생기기까지 한 남자를 뜻하며, '바이푸메이(白富美)'는 하얀 피부에 돈도 많고 예쁜 여자를 뜻한다. 이렇듯 통통 튀는 신조어와 젊은이들의 고민을 투영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중국 드라마가 점점 젊은 감각과 참신한 스토리로 무장해 가고 있는 것에 놀랄 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드라마가 지난 번 글에서 필자가 소개했던 <랑야방(瑯琊榜)>과 같은 제작진이 제작한 드라마라는 사실이다. <랑야방>에 출연했던 배우 중 15명이 <환락송>에 다시 등장한다니 만약 <랑야방>을 본 시청자라면 <환락송>에서도 낯익은 얼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드라마로서는 처음 촬영 시작 단계에서부터 시즌제를 도입한 <환락송>은 오는 9월에 시즌 2가 제작된다. <환락송>의 제작자 허우홍량(侯鴻亮)은 <랑야방>을 고전물의 브랜드로, <환락송>을 현대물의 브랜드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환락송>은 현대극으로서는 호흡이 꽤 긴 42부작의 드라마이다. 물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는 재벌 2세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거나, 인터넷 화상 대화로 국제적인 큰 계약을 단번에 따내는 등 너무 과한 설정이 옥의 티이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현재 중국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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