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롯데그룹 총수 일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명박 정부와의 유착을 통한 특혜 및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핵심은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다. 과거 정부가 공군 조종사 안전 등의 문제로 막았던 제2롯데월드 공사를, 이명박 정부가 허가했다. 이 과정에서 공군의 반발 등 다양한 논란이 있었다. 보수 정부가 안보를 무시한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제2롯데월드는 건축 과정에서도 다양한 사고가 있었다. 부실 공사는 대개 비자금 의혹과 맞물려 있다. 협력업체 선정 및 자재 구입 등에서 비리가 있었으므로, 공사가 엉망이라는 게다. 이 대목도 집중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재벌 총수 자택 수사한 검찰, 비리 입증 자신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10일 검사와 수사관 200여 명을 투입해 롯데그룹 본사와 계열사 7곳, 회장 및 핵심 임원의 자택, 롯데호텔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과 평창동 자택,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본사 내 거처 및 롯데호텔 34층 집무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재벌 총수의 자택과 집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이 롯데그룹의 다양한 비리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내 5위 재벌 총수 자택을 수사할 엄두를 내기 힘들다. 배임, 횡령, 비자금 조성, 탈세, 불법 로비 등 다양한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롯데그룹 정책본부가 압수수색 당했다는 점이다. 또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등이 출국금지 대상에 포함됐다. 정책본부는 다른 재벌로 치면, 비서실 또는 기획조정실 등에 해당한다. 이인원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이며, 명실상부한 그룹 내 2인자다. 그 다음 서열이 황각규 사장이다. 그룹 내 정보가 집결된 곳이 수사 대상이 됐다.
신영자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
이날 압수수색은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롯데그룹 측이 각종 비리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했기 때문이다. 이날 압수수색에 앞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비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신 이사장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로비 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롯데그룹 측은 신 이사장뿐 아니라 신동빈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 관련 자료까지 모조리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행태가 검찰을 자극했다.
검찰은 일찍부터 롯데그룹 비리 의혹에 대한 내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꼬리에 불과한 신영자 이사장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몸통에 관한 증거 자료가 사라진다면, 그간 진행한 내사가 헛일이 된다.
결국 검찰은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곧장 치고 나갔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이미 중요 자료 상당부분을 인멸한 것으로 알려져서, 수사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예견된 수사, 롯데는 어디까지 대비했을까
박근혜 정부가 롯데그룹을 임기 중에 한번쯤은 손을 보리라는 전망은 공공연하게 나왔었다. 이념이 비슷한 정부가 뒤를 이어도, 전임 정부와는 차별화하려 한다. 노태우 정부는 '5공 청산'을 했고,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했으며, 노무현 정부는 '대북 송금 특검'을 했다. 모두 전임 정권 실세들을 감옥에 보낸 사례다.
이런 역사에 비춰보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로부터 특혜를 입었던 기업들에 대해 현 정부가 칼을 대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삼성 못지않게 치밀한 관리로 유명한 롯데그룹이 어떤 식으로든 대비를 해뒀다는 것 역시 정설이다.
이인원, 황각규 입 여는 게 관건
검찰이 계열사를 에두르는 길 대신 롯데그룹 정책본부, 이인원 부회장, 황각규 사장 등을 정면 겨냥한 것도 그 때문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 측이 예상하고 대비한 것보다 높은 수준의 수사를 해야만,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이 한국에 진출한 초기에 입사했다. 롯데그룹 내 주류 인맥에 속한다.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에 처음 부임했을 당시부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한국어에 서툴렀던 신 회장으로선, 일본어에 능통한 한국인 직원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황각규 사장은 신 회장의 대표적인 가신이다. 신 회장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취임하면서 한국 롯데그룹 경영에 발을 들였다. 석유화학 엔지니어였던 황 사장을 그때 만났다. 황 사장은 이후 경영지원 업무로 보직을 바꿨고, 줄곧 신 회장을 보필했다.
이인원 부회장과 황각규 사장의 입을 여는 게 수사의 관건이다. 제2롯데월드 공사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실세에게 불법 로비를 했다면, 사실 관계를 가장 잘 아는 게 이들 두 사람이다. 이번 수사가 정치적으로 기획된 것이라면, 즉 검찰 수사의 칼날이 이명박 정부 실세를 겨냥했다면, 이 부회장과 황 사장에 대한 조사는 피할 수 없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드러난 비자금 의혹
현재 해외 체류 중인 신동빈 회장이 검찰에 출석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 때문에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가 드러났다. 또 신 회장이 투자한 중국 사업 실적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 회장과 경쟁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의 폭로였다.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이런 폭로 내용을 지지했다. 결국 자기 무덤 판 셈이다.
실적 조작이란 곧 분식 회계를 뜻한다. 이는 다시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자금, 즉 비자금이 있을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진흙탕 싸움은, 그들의 의도와 달리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검찰은 이들 형제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비자금 관련 중요 단서들을 포착했다고 한다.
아울러 경영권 다툼 속에서 드러난 롯데그룹 지배구조 역시 수사의 명분을 세워준다. 롯데그룹이 사실상 일본 기업이라는 게 드러났다. 또 롯데그룹을 실제로 지배하는 이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는 롯데그룹에 대한 국내 여론을 악화시켰다. 수사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민유성은 왜?
신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패배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안심해도 될까.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그룹을 오랫동안 맡았던 탓에 한국 롯데그룹과는 깊은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한 고리가 있다. 최근까지 진행된 경영권 다툼에서 신 전 부회장의 참모를 맡았던 건,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이었다. 한국 사정에 어두운 신 전 부회장 주변을 채운 건, 대부분 민 회장 쪽 인맥이었다. 그런데 민 회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산업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리먼브라더스 서울지점 대표였던 그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발탁했다. 민 회장이 산업은행을 이끌던 시절, 성진지오텍 사건이 있었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 주식을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샀는데, 당시 산업은행이 주관사를 맡았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비리 사건으로 꼽힌다. 여기에 연루된 전직 산업은행 수장이 신 전 부회장과 가까웠다.
롯데그룹 총수 일가 가운데 누구도 수사의 칼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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