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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데자뷔…"또 국회 우회 꼼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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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데자뷔…"또 국회 우회 꼼수인가?"

정부, 국책 은행 자본 확충 펀드 조성 계획 발표

정부가 최대 11조 원 규모의 국책 은행 자본 확충 펀드를 만든다. 해운 및 조선 등 대기업 구조 조정 과정에서 부실에 빠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이 10조 원, 기업은행이 1조 원을 댄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와 닮았다. 당시엔 건설업과 저축은행 부실이 문제였다. 금융 위기 이듬해인 2009년 초, 정부는 20조 원 규모로 은행 자본 확충 펀드를 조성했었다. 그 뒤에도 채권 시장 안정 펀드, 증권 시장 안정 펀드 등을 잇따라 만들었다.

2008~2009년 당시 제기됐던 비판이 반복될 수 있다. 정부는 국회의 사전 동의 및 사후 감사 절차를 극도로 꺼린다. 예컨대 추가 경정 예산 편성을 통한 재정 투입 등의 대책은 늘 뒷전이다. 대신, 그때그때 필요한 유사 공적 자금을 조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부실 범위가 제한적이라면, 이래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부실이 계속 확산된다면, 부작용이 심한 방식이다. 적은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시기를 놓치고,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학교 교수)은 "정부가 국회와 대화하는 길을 피하느라 꼼수를 쓴다"라고 평가했다.

코코본드 매입으로 자본 확충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 회의에서 "정부가 직접 출자를 통해 선도적 역할을 하고 구조 조정 상황에 따른 탄력적 대응을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함께 자본 확충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면서 "국책 은행이 발행하는 신종 자본 증권 등을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국책 은행 자본 확충 펀드의 설립 주체는 자산관리공사다. 한국은행이 기업은행을 통해 10조 원을 대출해준다. 기업은행 역시 자산관리공사에 대한 후순위 대출을 통해 1조 원을 보탠다. 이런 식으로 11조 원을 확보한다.

이 펀드는 구조 조정 과정에서 발행되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코코본드를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자본 확충을 지원하게 된다.

'코코본드(CoCo bond, contingent convertible bond)'는 의무 전환 사채, 조건부 자본 증권 등으로 번역되는데,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따라서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인정된다. 지금 필요한 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게 아니다. 자본 건전성 악화에 대비해서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채권이지만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코코본드' 발행 아이디어는 그래서 나왔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직접 출자하는 걸 가로막는 현행 법을 우회할 수 있다.

자본 확충 펀드에서 당장 11조 원 전부가 투입되지는 않는다. 구조 조정 상황을 보면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투입하는 '캐피탈 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지원한다.

정부는 아울러 올해 안에 수출입은행에 대해 1조 원 규모의 현물출자도 병행한다. 또 내년 예산안 편성 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현금출자 수요도 파악해 반영할 예정이다.

구조 조정 대상 업종 더 늘어나면, 그땐 어쩔 건가

그러나 정부는 더 세부적인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돈이 기업은행을 거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 계정으로 흘러가는 과정은, 정부 보도자료 속 문장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다. 복잡한 법적 쟁점이 많다. 예컨대 이 과정에서 정부 보증이 필수적인데, 담보의 적격을 둘러싼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 발표만으론, 정부가 이런 문제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야당은 정부의 이번 대책이 한국은행법 제64조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부실 업종이 해운 및 조선업체뿐이라면, 11조 원의 펀드로도 충분하다. 정부는 실제 투입되는 자금은 5조~8조 원 규모라고 예상한다. 예상보다 넉넉하게 펀드를 조성했다는 게다.

문제는 구조 조정 대상 업종이 추가되는 경우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유사 공적 자금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할 건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2008년~2009년 위기 당시엔, 주변 국가와의 통화 스왑(자국 통화를 상대국 통화와 맞교환하는 방식)을 통해서 재빠르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위기가 터졌는데, 당시와 같은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 라는 질문이다. 정부 재정 투입을 포함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우회로만 찾는 식으론 대응이 불가능하다.

정부 측 컨트롤 타워, 국회와 어떻게 소통할 건가

정부의 산업 구조 조정 정책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컨트롤 타워(사령탑)이 없다는 점이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선 진일보한 입장을 내놨다.

유일호 부총리는 "산업 구조 개혁은 개별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을 넘어 산업 차원의 구조개편과 미래비전 제시가 필요하며, 구조 조정 과정에서 고용과 지역 경제 영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산업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 회의를 신설,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 회의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이날 발표만으론,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그대로다. 이 회의를 이끄는 장관이 국회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가 20대 국회 원 구성이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나왔다는 점도 답답한 대목이다. 국회와 소통할 의지가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것.

국회와 소통할 의지가 없다는 건, 공적 자금 조성, 증세, 추가 경정 예산 편성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미리 배제한 것과 같다. 이들 정책 수단은 모두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 것들이다.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정부는 손발 묶어놓고 풀겠다고 한다.

▲ 유일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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