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 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이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 당국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이 시장 원리가 아닌 현 정부 실세들의 간섭으로 이뤄졌다는 게다.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또 산업은행 자회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그리고 산업은행 몫이 3분의 1"이라고도 했다.
'친박' 금융인, <경향> 인터뷰에서 '친박' 비판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8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홍 전 회장은 금융계의 대표적인 친(親)박근혜 계열 인사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의 금융 분야 가정교사 노릇도 했다. 박 대통령과는 서강대학교 동문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다 2013년 4월 KDB금융그룹 회장에 임명됐다. 3년 가까이 산업은행을 이끌다, 지난 2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발탁돼 현재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인 '친박' 금융인이 진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친박' 실세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 지원 액수, 정부가 다 정했다"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유동성 지원 결정 과정에 대해 "작년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최경환 전 부총리 등은 현 정부 실세로 꼽힌다.
그는 이어 "당시 정부 안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최대 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며 "산업은행은 채권 비율대로 지원하자고 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채권 비율은 53% 대 22%였지만, 최종 지원금액은 산업은행 2조6000억 원, 수출입은행 1조6000억 원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들러리…이용당하다 결국 전범재판 서게 되는, '안소니 퀸' 같다"
이런 과정에 대해 그는 "애초부터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이) 모든 게 투명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채권단에 전적으로 맡겨줬어야 했다"며 "그런데 당국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당국은) 모든 사안에 관여하면서도 방식은 (흔적이 남지 않게끔) 말로 지시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지금은) 욕은 욕대로 먹고 있다. 안소니 퀸이 나오는 영화 <25시> 봤나. '게르만 민족의 표상'이라며 이용당하다 결국 전범재판에 서게 되는, 내가 지금 그 안소니 퀸 같다"고도 했다. 조선 산업 부실에 대한 책임자로 지목된 자신이 '희생양'이라는 게다.
"'밀실'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모든 걸 정했다"
STX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의 지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STX조선과 팬오션 문제가 불거진 2013년에도 정부는 서별관 회의에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파장이 크다'며 산업은행에 무조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통해 떠안으라고 했다"라는 내용이다.
청와대 서별관 회의란, 경제부처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가하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다. 청와대 본관 서쪽의 회의용 건물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업 구조 조정에 관한 민감한 결정이 대부분 이 자리에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진행된 논의는 '속기록'조차 남지 않는다. 따라서 고위 정책 당국자들이 책임 회피 목적으로 서별관 회의를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밀실에서 진행되는 서별관 회의 대신,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구조 조정 컨트롤 타워(사령탑)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산업은행 파견 감사를 잘랐다"
홍 전 회장은 산업은행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 감사, 사외이사 등에 대한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서도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그리고 산업은행 몫이 3분의 1이다. 산업은행은 업무 관련자를 보내지만 당국은 배려해 줄 사람을 보낸다. 이런 식으로 인사한 지는 꽤 됐다"로 폭로했다.
이어 그는 "오히려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산업은행보다 더 큰 배경을 갖고 있었다. CEO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주주 역할은 제한돼 있었다. 오히려 모 사장 때는 산업은행에서 파견된 감사를 잘랐다. 그런 상태에서 정확한 회계 부실을 감지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2015년 3월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임기가 만료돼 이런저런 후보를 올렸다. 위쪽에서 특정 인물을 찍어 검증한다며 자료를 올리라고 하더라. 결과는 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이는 주요 인사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홍 전 회장의 이런 폭로에 대해 청와대는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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