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잃은 정부는 무슨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나쁘게 받아들여진다. 로마의 최고 지도자이자 집정관이던 코넬리우스 타키투스의 경고다.
외교 안보 및 국제정치학계의 권위자인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가 7일 연세대에서 열린 고별 강연에서 "박근혜 정부가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졌다"고 했다.
"개성공단 폐쇄 사태 같은 것이 자주 일어나면 정부에 대한 시민, 사업자들, 북한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신뢰성에 위기를 가져온다. 다음에 개성공단에 가라고 하면 누가 가겠나. 타키투스의 함정이다. 정부가 죽일 것과 살릴 것을 가려서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문 교수는 "남북 관계는 행정부가 자의적 결정으로 좌지우지하는 것보다 국회 동의를 받거나, 동의를 받고 하는 사업에 대해선 입법부가 보호해주는 장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현실성 있는 통일 방안을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통일인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문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남북 연합을 통일의 목표로 잡으면 비용이 적게 든다"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버릴 게 아니다. 그 안에 지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근거한 흡수 통일론은 "비용도 많이 들고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이날 강연을 마지막으로 대학 강단을 떠나는 문 교수는 스스로를 "실패한 교수"라고 했다. 고별 강연에 앞서 <프레시안>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는 같은 말을 했다.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급 논문이 40여 편, 70여 권의 저서, 700편 이상의 언론 칼럼을 '쏟아낸' 그가 실패한 교수라고?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다"고 했다. 젊은 시절 주목했던 개발국가론이나 제3세계 국가 안보 분야에 집중했더라면 '대작'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그는 "큰 담론을 가지고 오랜 시간 승부를 걸어보지 못했고, 그렇다고 방법론적으로 메소디스트가 된 것도 아니고, 세상 흘러가는 현세적 토픽을 가지고 공부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대학 강단을 떠나지만 학자로서의 연구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문 교수는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책 한 권씩 쓰면서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한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보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큰 박수와 꽃다발로 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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