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송기호 국제통상위원장은 3일 일본이 주는 10억 엔은 국내법에 비춰봤을 때 배상금이 아닌 일종의 '기부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설립 준비 중인 일본군 위안부 지원 재단이 공익법인으로 만들어질 경우 공익법인법상 재단의 설립 목적은 장학사업·학술·자선의 세 가지로 제한된다면서, 위안부 재단은 '자선' 목적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재단에 투입되는 일본의 10억 엔 역시 자선 목적을 가진 기부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주장이다.
재단이 공익법인이 아닌, 여성가족부의 허가 절차를 통해 설립되는 민법상 비영리 법인의 형태를 띤다고 해도 일본이 출연할 10억 엔을 배상금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송 변호사는 "비영리법인의 경우 해당 재단이 사업 목적을 선택하는데,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가 이야기하듯이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재단의 목표라면, 이러한 사업 목적으로 쓰이는 돈은 기부금이지 배상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법상에 명시된 피해자 권리 차원에서 접근하더라도 일본의 10억 엔은 배상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민법상 피해자의 권리에 따라 제3자가 손해 배상금을 수령할 권한이 없다. 특히 상속인이나 변호사 등 법률상의 위임 없이 제3자가 배상금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제3자인 재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임 없이 배상금을 받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송 변호사는 "앞으로 설립될 재단이 비영리법인으로 만들어지고, 이 법인이 하려는 활동의 대부분이 피해자와 관련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이 주는 돈은 기본적으로 법인에 귀속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공공 기금이나 정부 기관을 만들지 않고 민간 법인을 만들어 여기에 10억엔을 주는 일본의 전략이 관철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지고 배상금을 주지 않으려는 일본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진단이다.
한편 재단이 어떤 형태로 갖춰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여성가족부는 '여성가족부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에 의거, 재단을 여성가족부의 허가 절차를 통해 설립되는 민법상 비영리법인의 형태로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배상금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책임은 졌다?
일본의 출연금이 배상금이나 치유금이냐는 논란은 지난해 위안부 합의 때부터 불거져 재단 설립을 앞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배상'은 국가가 잘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보상'이나 '치유'는 국가의 잘못이 없어도 손해를 본 국민에게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10억 엔을 배상금이 아닌 치유금이나 도의적인 보상금 정도로 규정하면 정부는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채로 합의한 셈이 된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외교부는 지난해 위안부 합의 타결 이후 지금까지 일본이 출연하는 10억 엔은 사실상의 배상금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재단 설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기존 정부 입장과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5월 31일 '일본군 위안부 재단설립 준비위원회' 제1차 회의를 개최한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김태현 재단 설립 준비위원장은 일본의 출연금은 배상금이 아니라 치유금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는 정부가 일본의 법적 책임 추궁을 포기했다는 것으로, '졸속 합의'였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된다.
파장이 커지자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자리에서 10억 엔의 성격을 두고 "정부에서도 배상금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배상 조치로도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10억 엔이 일본이 법적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이라고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일본 정부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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