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면 다 죽을 할머니들인데 재단이 무슨 필요가 있다고 만듭니까? 우리는 돈이 탐이 나서 그런 것 아닙니다.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겁니다."
정부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후속 작업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한 것과 관련, 31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 거주하고 있는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할머니는 "나이 어린 소녀들이 전쟁통에 끌려가서 군인들 노예가 됐고, 수년 동안 여기저기 끌려다니다가 겨우 생명만 부지해서 돌아왔는데, 우리가 돈 몇 푼 준다고 마음이 바뀌겠나"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 정부한테 사죄하라고 하고 명예 회복시켜주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 몇 푼 받으려고 싸운 것 아니었다. 그런데 정부가 재단을 만들었다. 이게 잘한 일인가?"라며 "이건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것밖에 안 된다"고 일갈했다.
김 할머니는 "정부가 국민들 모두가 반대하는 걸 하고 있다. 국민을 희롱하는 일"이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직접 나서서 법적으로 배상하고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협 역시 이날 입장 자료를 통해 "12.28 합의는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이루어진 절차적 결함은 물론 그 내용에서도 배상도 아닌 '돈'으로 피해자들을 입막음하고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로써, 잘못된 합의라는 점이 각국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전문가들을 통해서도 확인돼 왔다"고 주장했다.
정대협은 "그러나 이 외침을 듣지 못하고 있는,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뻔뻔한 한일 양국 정부가 '화해와 치유'를 위한 재단의 설립을 강행하겠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또 누구에 의한 화해이며 치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대협은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동원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을 상징하는 평화비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정부를 비호라도 하듯, 잘못된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굴욕 외교가 그들의 말대로 진정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대협은 박근혜 정부가 "시간과의 싸움에 놓인 피해자들을 향해 도리어 시간을 핑계 삼아 '묻지 마 합의'를 떡하니 해놓고는 배상도 아닌 성격조차 불분명한 '돈'을 받으라 강요한다"고 개탄했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가 '책임'이라 말하면 '법적 책임'인 것으로, '정부 예산'이라하면 '배상'인 것으로 알아서 과대 포장과 창의적 해석을 해가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으려는 박근혜 정부에게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할 자격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고 일갈했다.
정대협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일구어 온 국제사회의 판단과 지지, 한결같은 피해자들의 온당한 요구를 한순간에 엎어버린 정치적 합의를 한 것도 모자라 기어이 이를 강행한다면 일본정부에게 10억 엔에 면죄부를 팔아넘긴 부끄러운 정부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비롯해 소속 의원 19명은 지난 30일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합의' 무효 확인 및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진행된 양국 정부 간 합의는 법적·정치적·외교적으로 무효임을 확인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 등을 위한 책임 있는 재협상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또 31일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일본군 위안부 재단'과 관련, 결의안은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공식 입장을 유엔에 제출하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합의 이행이라며 재단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에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임을 확인하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단의 설립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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