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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히로시마, 오바마 두 발 채운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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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히로시마, 오바마 두 발 채운 족쇄

역사적 화해로 치장한 미일 군사 동맹

오키나와의 면적은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하다. 여기에 주일미군의 75%가 몰려있다. 아시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해보면 약 10만 명의 미군이 포진해있다. 그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2만5000명이 오키나와에 몰려있다. 세계에서 이렇게 미군에 의해 군사화된 곳은 없다. 미군 주둔의 명분은 자국의 이익과 동맹국의 안보 보호다.

오키나와에서 지난 19일 20세 여성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용의자는 미국 해병대 출신인 케네스 프랭클린 신자토. 그는 주일미군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동맹국의 안보 보호를 위해 주둔한다는 미군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벌인 일이다.

지난 1995년에도 오키나와 미군 병사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성난 민심을 달래려 미-일 정부는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 등의 기지를 반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후텐마 기지의 대체 기지를 섬의 북동쪽 외곽인 헤노코에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에서 '고립된 섬' 오키나와 주민들은 11년째 미군기지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입만 열면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주민들의 미군기지 반대 요구를 모른 척 했다. 미국은 아시아의 군사적 요충지로 선택한 오키나와에서 발을 뺄 생각이 전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히로시마 방문'을 코앞에 두고 발생한 미군 관계자의 범죄와 이로 인한 반미 감정에 미일 당국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양국은 당초 26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미일 정상회담 일정을 25일 밤으로 앞당겼다. 미군 기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자 이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일정 조정이라는 설명이다.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오키나와 사건과 관련해 '강한 분노'와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사건 발생 직후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사과 의사를 일본 정부에 밝힌 만큼, 오바마 대통령도 정상회담에서 이에 관한 언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군대를 움직이는 건 정치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목적은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베트남에 무기 금수조치를 전면 해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사적 화해'로 포장한 남중국해 싸움이다.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는 아베 총리도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일체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도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를 포함한 대중 견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군속의 범죄에 대한 아베 총리의 분노와 미국 정부의 사과는 양국이 군사적으로 지향하는 방향과 모순된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27일 히로시마 방문으로 예정돼 있었다. 자신이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 드라이브에 화룡점정을 찍는 상징적 행보다. 전범국 일본은 피해자로 변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 미 군사전문매체 <디펜스원>은 "히로시마를 찾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핵가방이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간다"고 지적했다. 핵가방은 핵무기 통제시스템이 담긴 가방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는 핵가방을 들고 핵무기 피해지를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순을 꼬집은 것이다.

이 매체는 "71년 전 미군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로 날아가 원자폭탄을 투하하기까지 5시간 30분이 걸렸다"며 "이번 히로시마 방문에선 불과 30분 안에 '2만2000개의 히로시마 비극'을 만들 수 있는 통제권이 오바마 대통령의 손끝에 걸려있다"고 했다.

비핵화를 주장하며 이에 역행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중 잣대는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 행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핵무기 현대화에 돈을 썼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향후 30년간 약 1조 달러를 핵무기 현대화에 투입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에서 장황한 연설보다 짧은 개인적 소회를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벤 로즈 백악관 안보부보좌관은 지난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헌화 후 짧은 투어를 하고 자신이 받은 인상에 관해 짧은 언급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핵무기 현대화 계획 철회 등 '핵 없는 세상'에 부합할만한 굵직한 언급은 없을 거란 전망이다. 이런 식으로는 오키나와와 히로시마의 모순이 해결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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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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