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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또 바둑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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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세돌, 또 바둑계 흔들었다

프로기사회 전격 탈퇴…법정 분쟁 가능성

이세돌 9단이 한국 바둑계를 또 뒤흔들었다. 프로 바둑 기사 320명 전원이 가입한 단체인, 프로기사회를 전격 탈퇴한 것. 이세돌은 전에도 한국기원을 정점으로 하는 주류 바둑계와 자주 충돌했었다. 이번 탈퇴 결정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세돌 형제 "대국 수입 일률 공제는 불합리"


이세돌은 지난 17일 함께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양건 프로기사회장을 만나 탈퇴서를 전달했다. 이세돌의 친형인 이상훈 9단도 함께 탈퇴서를 냈다. 프로기사회에서 탈퇴자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한국기원과의 관계는 유지하기로 했다. 요컨대 프로기사회는 떠나지만, '기사' 자격까지 버리지는 않겠다는 것.

이세돌 형제가 내건 탈퇴 이유는, "기사들을 구속하는 불합리한 관행"이다. 프로기사회는 회원의 대국 관련 수입 가운데 3∼5%를 공제한다. 이세돌 형제는 이 같은 일률 공제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본다.

'알파고 충격' 이후 각성한 이세돌. '8전 8승' 새 전성기 맞아

이세돌은 지난 3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세계적인 지명도를 확보했다. 당시 대국 이전에는, 기력(棋力, 바둑 실력)이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승 4패를 기록한 뒤, 이세돌의 기력이 급상승했다. 지난 3월 이후 지금까지 8차례 대국에서 모조리 이겼다. 바둑 팬들은 "'알파고 충격'이 이세돌의 새로운 잠재력을 끌어냈다"고 이야기한다.

또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이세돌이 인격적으로 훨씬 성장했다는 평가도 있다. 재능을 뽐내던 거만한 모습을 버리고, 겸손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대충 뒀는데 이겼다", "(이창호, 조훈현 등 선배 기사들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등의 발언으로 감정적인 반발을 사곤 했었다.

"'친목 단체'가 무슨 근거로 기사를 통제하나"법정 분쟁 가능성

바둑 인생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이세돌 입장에선, 대국 관련 수입을 일률 공제하는 프로기사회의 관행이 더 답답하게 여겨졌을 수 있다. 앞으로도 프로기사회에 많은 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프로기사회가 은퇴한 기사에게 주는 퇴직 위로금은 최대 4000만 원이다. 이세돌이 불만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대국 관련 수입이 훨씬 적은, 다른 프로기사회 회원이라면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명료하게 정리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프로기사회는 '친목 단체'다. 회원의 수입을 공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한국기원 정관에도 프로기사회의 위상과 역할, 권리와 의무 등이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다. "소속 기사의 품위 향상과 기력 연마를 촉진하고 본원 운영에 참여케 하기 위해 기사회를 둔다"라는 문장이 있을 뿐이다. 이세돌 형제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탈퇴서를 낸 것으로 보인다.

전선을 프로기사회에 국한한 이세돌, "한국기원과의 충돌은 원치 않아"


현행 프로기사회 정관에 따르면, 탈퇴 회원은 한국기원이 주최하는 일정에 참가할 수 없다. 이런 규정이 적용된다면, 이세돌은 국내에서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친목 단체'의 정관이 프로 기사의 활동을 제약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또 이세돌 형제에 이어 탈퇴자가 더 나온다면, 이 같은 정관이 자연스레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양건 프로기사회장은 19일 오전 기사 대의원회를 소집해서 대책을 논의했다. 이세돌 형제가 동의할만한 절충 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법정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세돌 형제는 탈퇴서를 내기 전에 법률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세돌 측은 싸우는 대상을 프로기사회에 국한한다. 한국기원과의 충돌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지금은 외국 주최 대회 출전 수입 가운데 10%를 기원 발전기금 명목으로 한국기원에 내게끔 돼 있다. 이세돌 측은 이런 정책은 계속 따르겠다고 한다.


3단인데 최우수 기사한국기원, 승단 규칙 변경


이번 사태를, 단지 수익 분배를 둘러싼 갈등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이세돌은 프로바둑 입문 직후부터 한국기원과 갈등을 빚어왔다. 튀는 발언과 행동이 잦았고, 그때마다 보수적인 바둑계와 충돌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출신으로 12살에 프로가 된 이세돌은 지난 2000년 32연승 기록을 세우며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그는 17살이었다.

문제는 당시 이세돌이 고작 3단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우수 기사'로 선정됐다. 실력과 단 사이의 괴리가 대단히 컸던 것이다. 이세돌이 승단 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승단 대회가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비판은 전에도 있었다. 이세돌은 관행을 거부했고, 결국 한국기원이 승단 규칙을 변경했다. 새로운 규칙에 따라 이세돌은 9단이 됐다.

주류 바둑계 관행과의 충돌, 저작권 및 대국료 갈등

지난 2009년에도 이세돌은 주류 바둑계와 정면 충돌했다. 이번에 탈퇴하기로 한 프로기사회와의 갈등이다. 당시 프로기사회가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한 이세돌에게 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그러자 이세돌은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프로기사가 '휴직계'를 낸 일 역시 전무후무했다. 바둑계 최고 스타인 이세돌의 휴직 선언은 한국기원으로서도 부담이었다. 이세돌은 2010년 1월 한국기원과 협의한 뒤 복귀했다.

이런 갈등의 배경은 아주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세대, 문화 갈등도 있다. 이세돌은 매우 발랄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오로지 바둑만 파고든, 과묵한 선배 기사들과 많이 다르다. 또 프로 기사를 혹사시키는 바둑계 관행도 문제였다. 기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서 대국 일정을 잡는 관행이다. 기보(棋譜, 바둑 둔 기록) 저작권 및 대국료를 둘러싼 경제적인 갈등도 있었다.

'바둑 격언'에 의문 들었다던 이세돌, 바둑계와 맞서다

지난 17일 탈퇴서 제출은 이 같은 갈등이 풀리지 않은 채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 이세돌과 함께 탈퇴서를 제출한 이상훈 9단 역시 '바둑 신동' 출신이다. 하지만 동생 이세돌의 재능을 접한 뒤에는 '매니저' 역할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세돌은 3남 2녀 가운데 막내인데, 집안 전체가 바둑 재능이 흘러넘쳤다. 이세돌의 작은 누나인 이세나 6단은 <월간바둑> 편집장이다. 큰 누나인 이상희 6단과 작은 형인 이차돌 5단 역시 바둑 재능이 출중했다. 이차돌 5단은 동생인 이세돌이 큰 노력 없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보고 프로기사 대신 평범한 삶을 택했다. 이들 남매는 이세돌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해 왔다.

또 보수적인 바둑계 분위기에 답답해하던 젊은 기사 중에도 이세돌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지난 3월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고전할 당시 이세돌을 만나서 격려하고 위로했었다. 그들은 이세돌의 이번 싸움에서도 우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국을 마친 뒤, "인간의 창의력이라든지 바둑 격언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라고 했다. 바둑계의 전통과 관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을 수 있다. 이번 갈등은 지난 3월 알파고와의 대결 직후 예고된 것일 수 있다.

▲ 이세돌 9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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