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수습책을 만들려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 구성이 17일 친박계의 조직적인 사보타주로 무산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로 예정됐던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는 모두 '성원 부족'으로 개회조차 되지 못했으며,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회의 불발 후 자진 사퇴와 친박계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친박계 지지로 선출되었으나 비박계 중심의 혁신위·비대위 인선을 주도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장직의 유지 여부도 현재로선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적지 않은 새누리당 관계자가 '이대로면 분당'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꺼내는 가운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친박-비박 간 계파 전면전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당초 이날 상임전국위는 김용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당헌 개정 등의 안건 의결을 위해 소집됐다.
잇따라 열릴 계획이었던 전국위원회는 김영우 김세연 이혜훈 홍일표 등 비박계 의원들이 대거 위원으로 내정된 비대위를 추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의 결렬, 또는 안건 부결의 분위기는 전날부터 감지됐다.
박대출 김태흠 이장우 김선동 당선인 및 의원 등 친박계 초재선 20인이 집단 기자회견까지 벌이며 비대위-혁신위 추인이 안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다.
끝내 회의가 불발되자 김용태 의원은 기자회견장을 찾아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면서 격하게 반발했다.
그는 혁신위원장직을 자진해서 내려놓으며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세 번의 국회의원이라는 은혜를 주신 국민과 당원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고도 말했다.
김 의원은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에게 꿇을 수는 없다"면서 "이제 국민과 당원들께 은혜를 갚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도 했다.
비박계의 정두언 의원은 무산된 회의 장소를 빠져나가면서 "이것은 정당이 아니라 패거리 집단이다. 동네 양아치들도 이런 식으로 안 할 것"이라면서 친박계를 겨냥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정 의원은 "아무런 명분 없이 이런 패거리 집단에 내가 있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겠다"면서 탈당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다른 비박계 의원들도 참담한 심정을 줄지어 표현했다.
비대위원으로 내정됐던 이혜훈 의원은 "국민들이 더 기다려줄까 걱정이다. 정말 절망적인 심정"이라고 했고, 김영우 의원 또한 "얼마나 더 어려움 겪어야 정신 차릴지 부끄러워서 말을 못할 정도"라고 한탄했다. 한 전국위원은 "친박계가 당·청 갈등의 해결책으로 당을 당분간 삭제하려는 것 같다"고도 현 상황을 표현했다.
새누리당의 이번 계파 갈등은 이전과는 차원과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간 김무성 전 대표의 '상하이 발언'이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국면 등 때마다 계파 갈등이 터져 나오긴 했으나 새누리당 특유의 신속한 봉합으로 분당 및 집단 탈당과 같은 극단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4.13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비박계 학살' 공천으로 사실상 심리적인 분당 사태까지 치달았었던 데다가, 가깝게는 전당대회 멀게는 대선 후보 경선이라는 큰 '링(싸움터)'이 목전에 있는 만큼 양 계파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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