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가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가 5월 19일로 예정되어 있고, 남겨진 법안이나 해결할 현안을 다룰 상임위원회도 열릴 것이니 19대 국회도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매번 국회가 끝날 때마다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는 소리를 듣곤 하지만 19대 국회는 그 가운데서도 "더욱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국회의사당이 부서지고 의원과 보좌진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여야 했던 18대 '동물 국회'에 대한 반성으로 제정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식물 국회'로 19대 국회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는 비난은, 비단 '국회 심판론자'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만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국회의원 법안 발의 건수는 폭증하는데 통과되는 건 적다며 "입법 포퓰리즘"이라 힐난하거나 그것을 "생산력 부족"이라 문제 삼는 것은 입법의 실제와 많이 동떨어진 비판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하려는 일마다 발목을 잡았다는 비난은 국회, 특히 야당의 의미를 이해 못하거나 아예 왜곡하는 것이기에 논평할 바도 아니다. 이명박정부의 실정을 확실히 파헤쳐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 박근혜 정부의 '무위(無爲)'와 '무능(無能)'이 얼마나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했던가를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것은 19대 국회의 명백한 한계이자 오점이라는 주장을 회피하긴 어려울 듯 하다.
지난 4.13 총선을 거쳐 이학영, 남인순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고, 권미혁, 정춘숙, 제윤경, 이재정, 박주민, 채이배, 추혜선 등 (광의의) 시민운동가 출신 당선자들이 20대 국회 진입에 성공했다. 김기식, 최민희, 홍종학, 김제남, 박원석 등 시민 단체 출신 국회의원 다수가 재선에 실패했고, 민병덕, 천준호, 이용선, 오성규, 김민영 등도 낙천과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런 '총선 성적표'만으로 19대 국회 '시민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시민 정치'는 과연 독자적인 의회 전략을 발전시켰던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화'를 이뤄냈던가를 기준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관련 기사 : 국회로 간 시민운동가, '기대'와 '실망'은 종이 한 장 차이). 그런 점에서 19대 국회에서의 '시민정치'에 대한 평가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
19대 국회에선 시민정치포럼이 만들어졌고 4년간 매년 '우수 의원 연구 단체'로 선정되었다.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운영되었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중심으로 시민 사회와의 협력, 시민 단체 출신 보좌진 모임인 새정치연구회와의 협업도 중시했다. 국회 운영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도 활발히 펼쳤고,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주요 입법 과제들이 국회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간 국회의 관행이나 기준으로 볼 때 파격적이라 할 시도도 적지 않았고 성과도 물론 작지 않았다. 시민 단체 출신 개별 의원들의 의정 활동 또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분명히 잘했다. 다른 의원 연구 단체보다 잘했고, 다른 의원들보다 잘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였다. "시민 단체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후에 의정 활동 잘하고, 재선에 성공하는 것"을 두고 '시민 정치'의 성과라고 말하긴 민망하다.
19대 국회 기간 동안 대표적 시민 정치 운동 조직인 '내가 꿈꾸는 나라'는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에 들어섰다. 가히 '유권자 혁명'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던 총선시민연대의 2000년 낙천·낙선 운동의 충격을 2016년 총선넷 활동에서 다시 발견하긴 어려웠다. '헬조선'에 대한 시민적 분노는 선거 당일 투표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으나 '절망'도, '희망'도 선거의 쟁점으로 만들어 내진 못했다.
시민 단체 출신 후보의 정치적 존재감은 그(녀)가 박원순'계'로 분류될 때나 겨우 감지되었다. 박원순'계'로 분류된 이유는 서울시에서 직책을 갖고 일했거나 시민 단체 출신 후보였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과정에서 '시민 정치'는 겨우 그렇게 표현되었다. 그나마 시민 단체 출신 후보와 당선자의 '세대 교체'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시민 정치' 담론과 실천의 쇠퇴는 '시민 정치'를 표방했던 주체들이 독자적인 의회 전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세력화하지 못했던 것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19대 국회의 가장 대표적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사례를 살핀다면 '전략'의 수립과 '세력화'의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일방적이고 억압적 '갑을 관계'로 인한 '을(乙)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간 이를 정치적 의제화하거나 세력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원식 위원장을 필두로 한 40명이 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소속 보좌진들 그리고 당직자들은 지난 4년간 쉼 없이 문제 해결에 매달렸다. 단순한 민원 해결을 넘어 제도 개혁과 입법적 성과를 이끌어 냈고, 개별 의원실 만이 아니라 '의원실'과 '의원실' 그리고 '당'과의 협력 메커니즘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좌도, 우도 아닌 아래"로 내려가는 '민생 정치'를 주창했고, 스스로를 '현장파'로 자임했다. 비록 한계도 많지만 한국 정치와 정당의 나아갈 방향을 보여 주는 정치적·조직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러한 '현장파' 을지로위원회의 성과는 19대 국회에서 '시민파' 국회의원들의 세력화와 조직적 성과가 불가능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새정치'는 설령 낡은 이름이 되었을지언정 '새로운 정치'에 대한 시민적 열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을'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응답(response)하는 것에서 을지로위원회는 시작했다. 이것은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게 아니라 정치와 정당의 당연한 책임(responsibility)이고 일상적 활동이다. 20대 국회에 입성한 '시민파'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외침에 '응답'하고, '시민적 상식'이 '정치의 상식'이 되도록 '책임'을 다한다면 '시민파' 국회의원들의 활약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박원순'계' 국회의원이 아니라 시민'파' 국회의원으로서 독자적 의회전략을 수립하고 세력화를 이뤄내길 요청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협치(governance)'라는 용어의 오·남용부터 바로 잡길 바란다. 불안정한 '3당 체제'(또는 4당 체제)에서 구조적으로 강화되는 정치적 협의의 중요성을 '협치'라고 부르는 행태는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정치적 의사 결정에서 정치 세력 사이의 협상만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시민 참여'는 외려 배제될 우려가 크다. 19대 국회에서 을지로위원회가 '갑을 관계'를 법률 용어가 아니라 정치 언어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듯, 20대 국회 '시민파' 국회의원들은 '협치'를 협소한 정치인들끼리 협상 용어가 아니라, 시민들의 깊고 넓은 정치 참여를 의미하는 것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것에서부터 20대 국회 '시민 정치'의 의회 전략과 세력화의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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