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금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책임자인 신현우 전 대표는 지난 4월 26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고, '옥시 불매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진 것은 지난 2011년. 산모와 영유아가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숨지는 사례가 잇달아 일어났고,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충격과 분노와 애도는 잠시였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사과도, 피해 보상도 없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관심은 어느샌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더는 누구도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던 2013년, <프레시안>은 전국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만나 그들의 피눈물 나는 이야기를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연재 아홉 편으로 묶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신음합니다. <프레시안>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자 합니다.
여덟 번째로 전할 이야기는 윤건희 씨의 사연입니다. 윤 씨는 지난 2007년 당시 4살이던 둘째 아들 현준이를 잃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어떻게 윤 씨 가정의 행복을 망가뜨린 것일까요. 2013년 5월 20일, 윤 씨와 <프레시안>과의 대화를 다시 공개합니다.
"인생에 즐거운 일이 없어요. 즐거운 일이 생길수록 더 슬퍼집니다."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윤건희(가명·44) 씨는 지난 2007년, 당시 4살이던 둘째 아들 현준(가명)을 잃었다. 막내아들이 떠난 지 햇수로 7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윤 씨는 여전히 멍하니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다 술에 취해 잠들곤 한다.
지난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자식을 잃은 슬픔과 내 손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죄책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사과 한마디 없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와 남일 보듯 수수방관해온 정부를 향한 분노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갑작스러운 '폐 섬유화' 진단에 아내는 실신
윤건희 씨 부부는 첫째 성준(가명)이를 '멋쟁이', 왕방울만 한눈을 가진 현준이는 '예쁜이'라고 불렀다. 현준이는 형보다 더 독립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었다. 엄마가 업어준다고 해도 꼭 제 발로 걷겠다던 씩씩한 아이. 그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기침을 달고 살면서 엄마 등에 업혀 다니는 아이로 변해갔다.
- 당시 집안에 어린 아들만 둘이었네요. 두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었나요?
"2007년 당시 6살이던 큰 애(2002년 출생)와 4살이던 작은 애(2004년 출생)가 계속 기침을 하는 거예요. 그냥 감기라고 하기엔 증세가 심했지요. 큰 병원에 가야겠다 싶어서 3월부터 H대학병원에 갔습니다. 아이들이 기침하면 의사들이 늘 말하듯이 천식이란 진단을 내리더군요. 큰 애는 곧 괜찮아졌는데 작은 애는 갈수록 증세가 심해졌어요. 의사는 심각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심각하지 않다고 하는데 아이는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아내는 호흡 곤란에서 폐 섬유화까지 증세가 진행되면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단 말을 어디에선가 듣고 나서 매우 불안해했다. 불안해하는 부부에게 의사는 병원을 옮기고 싶으면 옮기라고 말했다. 결국 5월,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겼다.
-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긴 뒤 차도가 있었나요.
"삼성병원 의사가 H병원에서 찍었던 엑스레이 사진만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이런 애를 그냥 아빠 차로 데려왔느냐고 하면서요. H병원에서 구급차를 타고 갈지 제 차를 타고 갈지 묻기에, 현준이가 좋아하는 아빠 차를 탔던 것뿐인데요. 우리는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는데 의사는 이미 폐 섬유화가 진행돼서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이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요."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자고 약속했는데…
현준이는 5월 8일에 삼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곳에는 현준이와 비슷한 이유로 실려 온 아이들이 몇 있었다. 개중에는 산소 발생기에 연결된 줄을 코에 낀 채 퇴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윤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부부는 손을 꼭 잡고 공기 좋기로 소문난 과천의 주택 단지를 둘러봤다. "현준이가 퇴원하면 이곳으로 이사하자"는 말을 나누며 버텼다.
-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들은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고 나서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준이는 어땠나요?
"현준이도 병원을 옮기고 채 한 달도 못 버텼습니다. 5월 31일에 세상을 떠났어요. 아내는 그때 이미 반은 살고 반은 죽은 상태였어요. 수술 한 번 못 해보고 그냥 보내니까 너무 허망했어요. 생각해보면, 참 많은 피해자가 있었어요. 그때 중환자실에 현준이와 같은 증세의 아이가 하나 또 있었어요. 그 아이도 현준이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쯤 뒤에 죽었습니다. 현준이의 상을 치르고 그쪽 상갓집에 갔지요."
이유 없이 죽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의사들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데 의사도 아닌 부모가 이유를 알 수 있을 리 없다.
사람으로 태어나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인, 자식을 잃는 고통을 겪은 부모들의 머릿속은 멈춰버렸다. 윤 씨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 씨는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결혼할 때 윤 씨가 '나는 절대 아이들을 남기고 일찍 죽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그런데 아들이 먼저 떠났다.
"모든 게 무(無)가 되는 겁니다."
윤 씨는 자식을 먼저 보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빠, 현준이는 땅속에 있지?"
그렇지만 큰 아이인 성준이가 있었다.
- 성준이가 올해로 12살이 됐네요. 이제 철이 들고 있는 성준이에게 동생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셨나요.
"참 어렵습니다. 성준이가 어렸을 때는 그저 "하늘나라로 갔다"고만 하면 됐지요. 그런데 유치원에서 뭘 들었는지 '아빠 사람은 죽으면 땅에 묻는 거라던데 그러면 현준이도 하늘이 아니라 땅속에 있지?'라고 묻더군요. 도대체 성준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성준이가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려고 하고, 주말에 친구들이 자고 가면 굉장히 좋아해요. 얼마 전에는 갑자기 불쑥 엄마한테 '현준이 보고 싶어'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현준이에게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울지는 않았는지 물었지요. 울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가 화장실로 갔다고 하더군요."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와 아내는 현준이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는 좀 더 자주 현준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내를 다독여줘야 할지, 그저 모르는 척 각자의 상처를 눈감고 못 본 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현준이가 떠난 지 7년째, 여전히 그는 모르는 것투성이다. 이렇게 그의 삶이 망가졌다.
소송 제기하자 '김앤장'으로 맞선 기업
2011년 8월, 현준이를 죽게 한 원인이 밝혀졌다.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원인 미상 폐 질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역학 조사해 발표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집단은 원인 미상의 폐 질환에 걸릴 확률이 미사용 집단보다 47.3배나 높았다. 가습기 살균제와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연관성을 부정하려 해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수치였다.
- 처음 뉴스를 접한 뒤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대형 할인점에서 볼 때마다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샀거든요. 처음에 뉴스를 볼 때는 설마 했다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카페에 들어간 뒤에 확신했습니다. 아내에게 말하니 무슨 그런 물건이 다 있느냐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아내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런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제조업체는 옥시레킷벤키저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직접 가습기 살균제를 사서 썼다는 죄책감의 윤건희 씨를 옭아매고 있었다.
"애가 감기에 걸렸다니까 더 가습기를 틀었지요. 틀 때마다 살균제를 꼭 넣고 미친놈처럼 그걸 애 앞에서 틀어댔어요."
그가 몇 번이나 스스로 욕을 퍼부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습관처럼 죄책감이 따라다닌다.
- 사실 가장 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쪽은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판매 업체입니다. 기업 측의 태도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업 측을 상대로 한 소송을 하는 겁니다. 저는 사실 기업이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른 피해자들 앞에서도 한 말이지만, 한국은 결국 모든 피해 사실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해요. 피해자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증명해야 하니까 굉장히 어려워요. 게다가 기업은 '김앤장'으로 맞대응하고 있잖아요? 국내에서 가장 큰 로펌이 아무 생각 없이 소송에 꼈겠어요? 어차피 정부가 팔도록 허가해준 물건이니까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협조? 실망스럽다"
- 이제까지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온 기업 측이 소송에서도 적극 대응하고 있으니,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책임자가 처벌받기 어렵겠네요. 그동안 정부의 태도를 보며 하고 싶으신 말이 있나요?
"이건 기업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정부가 방향을 잡아줘야 합니다. 소비자를 큰 고통에 빠트린 기업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같은 법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요"
실제로 이 사건은 환경부(독성 물질 관리), 보건복지부(질병 관리),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안전 인증' 관리)가 각각의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그러나 세 부처가 힘을 합치기는커녕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그나마 지난 24일에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피해자들과 면담을 한 것이, 정부가 취한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 진영 장관과 피해자들이 만났다는 뉴스를 보셨나요.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기사를 보고 실망했습니다. 진영 장관이 보건복지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더군요. '협조'라는 말은 제3자나 쓰는 말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주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지요. 이건 교통사고도 아니고 100명이 넘는 국민이 정말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에 정부가 소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 측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정부가 '협조'만 외치는 사이에, 벌써 2013년의 3분의 1이 지났다.
"산소 발생기를 달고라도 살아 있으면, 힘들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기쁜 순간도 있기는 있지 않겠어요? 지금은 그저 웃는 게 죄 같아요."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삶의 무게다. 이 무게를 조금이나 덜 때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이제 정부와 기업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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