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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돈'으론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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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안철수, '돈'으론 못 이긴다!

[인터뷰]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②

박근혜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일종의 "자폐 상태"로 4.13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란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의 예측은 꼭 들어맞았다. 4월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 "국회 심판"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유권자들의 '종이 짱돌(페이퍼 스톤)'을 던져 여당과 박근혜 정부를 심판한 4.13총선에도 불구하고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를 예상하기는 아직 어렵다고 김태형 소장은 말한다.

유리한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드러난 야권의 대권 주자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었다. 불의와 싸우고 적과 대적하는 데 있어, 이들은 다소 과격할 만큼 배짱이 있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온순한 선비' 그 자체다.

안철수 : 무엇보다 정치 철학이 없어 문제다. 자신의 철학에 따른 비전을 제시해야 '새정치'가 시작되는데, 철학이 없기 때문에 '새정치'에는 내용이 없다. 국민들이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특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현재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게 '시대정신에 대한 오독'이라고 김 소장은 강조했다.

"월급이 늘어난다고 고통이 줄어들까? 정치인들은 지금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의 불행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었고, 양극화였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파탄이었고, 공동체의 파괴였다'라고."

'돈'이 아닌 '인간다움에 대한 회복'을 염원하는 시대정신에 용감하게 호응하는 새로운 리더십과 정치가 2017년 대선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김 소장은 강조했다.


(☞관련 기사 : ① "박근혜, 박정희·전두환보다 더 배신당할 것")

▲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호남, 문재인 OUT!

프레시안 : 4.13 총선에서 호남 민심이 논란이 됐다. 호남이 국민의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호남 민심, 어떻게 읽어야 할까?

김태형 : 신자유주의라는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5.18민주화운동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됐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는 '광주'가 시대정신으로 부각한다. 특히 정치 행위를 할 때는 진보성과 개혁성을 띤다. 그렇다 보니, 호남은 전략적 투표를 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 될 사람을 알아보고 밀어주는 능력,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열풍'은 광주의 지지를 받아 북상했다. 호남 사람들에게 노무현 후보가 부산 사람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 대권에서 상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살폈다. 노무현 후보는 이 두 개의 질문에 합격점을 받았다.

이번 선거 결과 나타난 호남 민심의 핵심은 정권 교체다. 2017년 대선에서 극우보수 세력(새누리당)이 아닌, 개혁 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길 바라고 있다. 또 '미완의 광주'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아니었기에 사람(대권 주자)을 보지는 않은 것 같다. 대신 더불어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이어갈 능력도,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역량도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이탈했다. 민심이반 현상은 서울지역 정당 득표율(더민주 25.9%, 국민의당 28.8%)에서도 드러났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평가가 '더민주 심판'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나.

김태형 : 그렇다. 호남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비록 박근혜 후보에게 51대 48로 졌지만, 문 후보는 호남 사람들에게 전국에서 제일 높은 지지를 받았다.(문재인 후보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광주 91.97%, 전북 86.3%, 전남 89.3%로 호남에서만 89.2%의 지지를 받았다.)

'문재인 패배' 원인 중 하나는 '배짱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었다. 불의와 싸우고 적과 대적하는 데 있어, 이들은 다소 과격할 만큼 배짱이 있었다. DJ는 젊은 시절 내내 '빨갱이'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1970년대 야당 최고 지도자로 박정희 정권과 타협하지 않아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5공화국 청문회 때 명패를 집어던질 정도로 투사의 이미지가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장인의 빨치산 활동이 논란이 되자 "나보고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라고 맞받아쳤다. 당시 '50대의 반란'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보수표가 이탈했다.

▲ 문재인 전 대표는 특전사 출신이다. ⓒ문재인
반면, 문 전 대표는 '온순한 선비' 그 자체다. 일단, '종북 공세'에 대처하는 자세가 확연히 다르다. 맞서기보다는 도망치는 스타일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종북 공세를 당하자, '종북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해병대를 방문하고 천안함 희생자를 기리며 보수주의자 흉내를 냈다. 누가 봐도 겁먹은 모습이었다.

이런 태도는 싸움에서 굉장히 불리하다. '종북 몰이'에 공포를 느끼는 국민들은 전투사령관이 벌벌 떨고 있으니, 더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대선에서는 전투력 여부가 중요하다. DJ와 노 전 대통령은 야권 출신이지만, 전투력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적(보수 여당)들의 최대 무기인 종북 공세를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다.

광주 사람들은 문 전 대표는 대선 주자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2017년 대선에 나가면 또 질 것이라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무엇보다 종북 공세에 맞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투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논란거리다. 야권에서도 '노무현 스타일로 더 이상의 집권은 불가능하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김태형 : '노무현 스타일'이 100%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권이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권'을 두고 싸우는 사람은 적어도 전투력이 있는 '투사형 지도자'여야 한다. 또 종북 공세를 정면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저열한 종북 몰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 후보님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친하신 것 같다'고 하자, 문재인 후보는 '박 후보님, 전교조는 법이 인정한 합법적인 조직입니다. 그걸 부정하시는 겁니까?'라고 대응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다음, 어떻게 했나. 바로 전교조를 불법화했다. 당시 문 후보가 '박 후보님은 왜 자신과 사상이 다르면 인정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민주주의자가 맞습니까? 혹시 파시스트 아닙니까!'라고 맞받아쳤다면? 아마, 박 후보는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광주는 적어도 이런 흐름을 볼 줄 아는 것 같다.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는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다. '문재인'이라는 카드로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한, 차기 대선 주자로 나서기는 어렵다고 본다. 전투력이 너무 없다. 책사(策士)로는 훌륭하지만, 지휘관이나 야전사령관으로는 부족하다.

호남, 안철수 AGAIN?

프레시안 :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야전사령관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호남과 수도권의 큰 지지를 받았다. 안 대표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은 아닌지….

김태형 :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얻은 지지는 더민주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강하다. 만약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종북 공세가 없었다면,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는 진보 정당에 쏠렸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정치 지형,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종북 몰이가 횡행하는 한 국민의 선택은 양당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13석(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을 차지하며 제3당이 된 적도 있지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이후 진보 정당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줄었다.


안철수 대표도 문재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대선에서 상대방을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안 대표는 무엇보다 정치 철학이 없어 문제다. 자신의 철학에 따른 비전을 제시해야 '새정치'가 시작되는데, 철학이 없기 때문에 '새정치'에는 내용이 없다. 국민들이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 15대, 16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프레시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권 욕심보다 자신의 정치 철학이 우선이었다. 두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대권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은 철학이 없다. 대권 욕심 외에는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정치인 스스로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어떤 시대를 이끌어갈 것인지를 제시해야 국민들도 제대로 된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정치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정치인 100자 평

김무성
4.13 총선에서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수준이 일단 국민과 안 맞는다. 그래서 대권 주자로 나오면 정말 반가운 사람이다. 실수를 연발해 야권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줄 것이다.

반기문
외교부가 공개한 '김대중 동정 보고'가 치명적이다. 일단 호남이 '반기문 등판'을 거부할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걸어온 길과 인간성에 대한 사회적 실망, 회복하기 어렵다.

오세훈
2011년 무상급식 파동 때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본인이 제시한 서울시장 재신임투표 당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오만의 극치를 보였다. '남자 박근혜'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유승민
일단 '유승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 하나뿐인데, '반박'이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지 기반마저 분명치 않다. 정치적 파괴력이 부족하다.

김부겸
김영삼(부산·경남)-박근혜(대구)-김종필(충청) 등 지역주의 맹주가 사라진 지금, 호남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대구 표밭에서도 반은 가져올 것 아닌가.

김종인
보수 인사 중에서 그래도 진정성이 있는 인물이지만, 나이도 정신도 늙었다. 경제 패러다임 역시 1987년 헌법 조항인 '경제 민주화'에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되고 난 뒤 전투력이 없어졌다. 욕심이 철학을 앞서기 때문이랄까? 과거 시민사회 단체장일 때와 같은 모습이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권 주자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이재명
'파이터 기질'은 문재인 전 대표보다 낫다. 자신의 실수마저 거세시킬 정도로 전투력이 있다. 만약 대권 주자가 된다면, 야권의 그 누구보다도 잘 싸울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와 사과는 빨갛다. 단, 사람은 아니다

프레시안 : '종북'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출중하지 않고는 깰 수 없는 프레임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북풍(北風)'이 작동하지 않았다. 유권자의 상당수가 더 이상 '종북 몰이'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김태형 : '종북'이나 '빨갱이'와 같은 색깔론은 늘 공포를 동반했다. 찍히면 죽는, '너, 조금 있다가 죽을 거야!'라는 살인 예고장을 받은 것과 같았다.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국민보도연맹 사건'(6·25 한국전쟁 초기 정부가 좌익 전향 단체인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체포해 집단 학살한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유신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민주화 운동 세력을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으로 둔갑시켜 사회 지도층과 학생 등을 검거한 사건) 등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탄생한 게 색깔론이고, 공포다.

색깔론이 언어적 공격에 그쳤다면, 공포심을 조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도 빨갱이 공세에 시달리지만, 위력이 크지 않다. '매카시즘 광풍'(극단적 반공주의)이 불었던 1950년대라면 공포였겠지만, 지금은 색깔론을 덧씌운다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80년대까지도 사람을 고문하거나 의문사로 위장해 죽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겪은 뒤, 두 번의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색깔론 공격을 총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색깔론 공포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론 공격이 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색깔론의 위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과거 정권들은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만 색깔론을 사용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종북 공세에 들어갔다. 이틀에 한 번씩은 쓴 것 같다.(웃음)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추모 열기를 종북으로 몰자, 국민들은 특히 분노했다. '종북 몰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인식만 불러왔다. '북한 무인기 사건'도 알고 보니, 화장실 문짝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이번에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귀순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래서 뭐? 그럴 줄 알았어. 아무 것도 없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종북 몰이가 남발되면서 희화화됐다고 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이 색깔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웃음)

▲ 2014년 3월 4일 자 '손문상의 그림세상'. ⓒ프레시안

프레시안 : '종북 공세'는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퇴행을 가져온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종북' 프레임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김태형 :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서도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과 같은 진보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한국은 종북 공세로, '버니 샌더스'(진보 정치인)의 등장을 철저히 막고 있다.

결국 한국의 진보 정당 또는 진보 정치인은 '버니 샌더스'가 등장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헌법 안의 정치'를 해야 하고, '헌법 안의 진보'를 표방해야 한다. 얼마나 왜곡된 정치 구조인가.(웃음)

한국에도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처럼 사회주의를 얘기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진짜 그렇게 외치면, 종북으로 몰리겠지?(웃음) 그래서 '버니 샌더스'와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

돈이 없어 불행하다? NO! 사람대접이 먼저다


프레시안 : 요즘 정치인은 철학도 없고 시대정신도 읽지 못한다고 비판했는데, 2017년 대권을 주도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김태형 : 시대정신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근원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과거 고통의 근원은 군부독재였다. 그래서 당시 시대정신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였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상당수의 정치인은 '돈이 없어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표피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하면, 대중 추세적인 관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인들이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대접을 못 받아서 고통 받는 것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대접을 못 받고 무시당한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뿐이다.

월급이 늘어난다고 고통이 줄어들까? 정치인들은 지금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의 불행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었고, 양극화였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파탄이었고, 공동체의 파괴였다'라고.

정치인의 임무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한 채 인간의 존엄성마저 유린당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회복, 즉 공동체가 부활되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와 같은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사회안전망 확충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자신의 정치 철학을 주장하다 '종북'으로 몰릴 각오를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초 '대중경제론'과 '연방제통일방안'을 주장했다. 그 결과, 빨갱이로 몰려 몇십 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6.15 남북공동선언 등을 이루며 역사를 바꿨다.

프레시안 : 현재 시점으로 보면, 다음 대선도 경제 문제(또는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대선 때와 같은 프레임인데, 야권은 이 싸움에서 한 번 진 것 아닌가.

김태형 : 시대정신을 '돈'으로 오도(誤導)하면, 새누리당이 무조건 유리하다.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대결한다고 해도 야권이 지난 대선에서 얻은 48%의 벽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방향은 맞았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구호에 맞는 정책과 설명이 없었다.

프레시안 : 지금 야권 정치인 중에 그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김태형 :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고통의 근원과 해결 방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좋겠다. 시대정신을 꿰뚫고 있어도 종북 공세가 무서워 말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야권 정치인들의 비겁성 또한 문제다. '버니 샌더스'와 같은 소신 있는,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 사회가 발전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감동을 주는 정치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에는 못 본 것 같다. 시대를 대변하고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진짜 정치인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얘기하는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와야 한다.


헬조선, '파라다이스조선'으로 SHIFT!

프레시안 :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가 2030대 투표율이 올랐다는 점이다. 세월호 이슈와 청년 문제 등에 분노한 민심이 표출된 것이라고 보는데, 젊은 층의 적극적인 정치화, 어떻게 봐야 할까?

김태형 : 성공을 꿈꾸며 야망을 불태우던 1990년대와 달리, 지금 청년들은 꿈과 야망을 포기한 채 공무원과 교사와 같은 안정을 찾고 있다. 이유는 '낙오될 것이다. 굶어 죽을 것이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포세대'가 된 청년들은 스펙을 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이들에게 결국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개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고통 역시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 스스로 '헬조선에 살고 있다'고 말하며, '흙수저·금수저'라는 단어로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불과 1~2년 새 젊은 층의 정신세계가 큰 도약을 한 것이다. 아직 행동화 단계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시각이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됐다.


이런 가운데, 4.13 총선이 하나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들은 '사회 모순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이미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훌륭한 야당이 이번 선거를 지도했다면, 젊은 층의 정치화는 더욱 가속화(투표율 상승)됐을 것이다.

이들이 다시 일어나 싸울 가능성은 높다. 1980년대와 같은 학생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섣불리 얘기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 대한 시각에 눈을 뜨고 있고 정치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이 일고 있다. 그로 인한 행동의 징후가 보인다. 물꼬만 터지면, 가속화될 것이다.

▲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 ⓒgoogle.com

프레시안 : 민심은 분명히 변하고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다소 왜곡돼 반영된 면이 있다. 그리고 2017년 대선이 기대되는 정치인 또한 보이지 않는다.

김태형 : 새누리당이나 야권이나 다음 대선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2017년은 야권에 가장 유리한 국면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집단이 막바지에 도달해 있을 뿐 아니라, '박근혜 득표력'도 차기 대권 주자도 없는 상황이다.

단, 유리한 상황을 '불리함의 가능성'으로 만들 사람이 야권에 있다는 맹점이 있다.(웃음) 야권이 내홍에 휩싸이거나 새누리당과 똑같은 프레임(돈, 또는 경제민주화)으로 경쟁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역사상 최초의 기회가 오히려 불리해 질 수 있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192시간 27분 동안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통해 전투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 발 더 나가 종북 공세에 맞서 잘 싸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줘야 한다. '세월호 싸움'이 야권의 진정성과 전투력을 확인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럼, 국민이 호응할 것이다. 무엇보다 야권이 어설픈 대선 주자를 낼 수 없게 하는 강제력이 생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단순히 대권을 노리는 사람인지, 철학을 가진 진짜 정치인인지 가려낼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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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기자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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