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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 땐 차라리 아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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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 땐 차라리 아파합시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때론 잘 아픈 것이 약이 됩니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어. 병원 갔더니 심장 검사를 해보자고 하는데, 일단 약만 좀 타서 왔네. 이제 시작인데 정말 걱정이야."

늘 웃는 얼굴로 오시던 분인데, 하루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로 방문하셨습니다. 연유를 물었더니, 혼자 사는 자녀가 중한 병에 걸려 치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늘 눈에 밟히던 자식이었는데 투병하는 것을 보기도 안쓰럽고, 뒷바라지를 하려니 너무 힘들다고 하셨지요.

이번에 보니 얼굴의 그늘이 더 깊어졌습니다. 몸 여러 곳에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으니 당신 몸도 잘 돌보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지만, 도무지 몸도 마음도 어떻게 하질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냥 두면 안 되겠기에 치료를 안 해도 좋으니 며칠에 한 번씩은 나오시라 했습니다. 알겠노라며 돌아가시는 환자의 뒷모습이 유난히 힘이 없어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진료하다 보면 의사로서 어쩔 도리 없는 경우를 마주합니다. 병이 중한 환자를 달래기가 어렵지만, 앞선 환자처럼 살면서 생기는 갑작스런 일 때문에 삶이 흔들린 경우가 더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아무리 좋은 치료를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요. 다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상황 때문에 환자 건강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도울 뿐입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살면서 겪는 많은 일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큰일을 겪으면 충분히 앓고 나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환자 중에는 강한 약으로 증상을 덮거나 간혹 일부러 꿋꿋한 척하는 분이 있는데, 제 경험상 그런 분일수록 도리어 회복이 더디거나 다른 불균형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큰일을 겪은 분을 치료할 때는, 우선 환자가 그 일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때까지 지켜봅니다. 물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죠. 몸과 마음에 닥친 불균형이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돕고, 환자가 특정한 상황을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도록 합니다(때론 병으로 도망치는 분들도 있지요). 또한 현재의 불균형이 다른 증상을 유발하지 않도록 조절합니다. 그러면서 천천히 그 상황을 소화할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마치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중심을 잃지 않고 맞은편에 이를 수 있도록, 몸이 기울 때마다 살짝살짝 옆에서 돕는 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분이 다 좋은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무게 때문에 주저앉는 분도 있고, 스스로 병을 안고 가길 선택하기도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오랜 시간 고통받는 분도 있습니다. 소화가 덜 된 상태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가, 특정한 상황이 되면 수면 위로 떠올라 새로운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태위태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소화하면서 잘 아프고 난 분은, 치료가 진행될수록 여유를 찾습니다. 그제야 그늘지고 수심 가득했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지요.

인생이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없이 흐르다가 바다라는 종착점에 이르면 좋겠지만, 우리 삶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이고 꽝! 하고 인생에 카운터 펀치를 먹을 때가 옵니다. 이때는 다시 일어설 힘을 보존한 채로 아플 만큼 아파보는 것도 좋습니다.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때론 적극적으로 맞아보는 것입니다. 이때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잘 아플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이정도 쯤이야!’하는 여유도 생기고, 자신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때론 역경을 피하는 요령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괜찮은, 그리고 건강한 삶은 이런 생채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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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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