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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제1의 관광 코스 ‘로만틱 가도’…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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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제1의 관광 코스 ‘로만틱 가도’…과연 어떤 모습일까?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⑥중세의 길, 로만틱 가도

중세의 길, 로만틱 가도

▲도나우뵈르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8월 5일. 도나우뵈르트 캠핑장의 아침은 추웠다. 먼저 버너를 켜고, 물을 끓여 커피를 연하게 타서 한 잔씩 마셨다.

라면에 계란과 소시지를 잘라 넣었지만 김치가 없어 그저 얼큰한 국물 맛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켓에서 구입한 진공 포장된 돼지고기는 꺼내서 코펠 뚜껑에 넣고 소금을 뿌리면서 볶았다.

‘으읍! 그런데 무슨 맛이 이럴까? 소금 덩어리다. 알고 보니 이미 소금에 절여진 고기였다. 어휴!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지도를 펴고 ‘로만틱 가도(Romantische Strabe)’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로만틱 가도는 독일 남부 퓌센(Fussen)에서 시작해 뷔르츠부르크(Wurzburg)까지 이어지는 총 439km의 구간이다.

우리는 그 중간쯤인 도나우뵈르트에서 뷔르츠부르크까지 295km를 달릴 예정이다. 유럽 제1의 관광 코스인 로만틱 가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뇌르틀링겐(Nordlingen)으로 가는 길에 노란 밀밭 들녘을 오르내리고, 좁은 시골길을 굽이돌며, 작고 예쁜 부락들을 들락거렸다. 부락마다 유치원과 우체국, 카페, 빵집과 더불어 한두 개의 레스토랑이 있었다.

▲뇌르틀링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로만틱 가도는 ‘로마로 가는 길’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세 로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지나온 마을들도 대부분 중세의 분위기라서 그런지 외형상 확연하게 구별되지는 않았다.

도나우 강변의 마을들과 비교한다면 로만틱 가도에 있는 마을들은 작은 시골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꼬불꼬불했고, 밭고랑과 울타리는 반듯하지 않고 어수선했다.

또 밭 군데군데에는 오랜 고목이 서 있었고, 숲에 덮여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은 도랑도 흐르고 있었다. 마을 길목마다 해진 흙벽돌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듯했다.

쿠당탕! 잠시 쉬는 도중에 갑자기 자전거 짐받이가 부러지면서 자빠졌다. 다행히 다른 곳은 망가진 데가 없었다.

“큰일이다. 이제부터 자전거를 어떻게 세워 놓지?” 앞으로 쉬려면 자전거를 나무나 벽에 기대어 놓게 생겼다. 그도 아니라면 땅바닥에 눕혀 놓거나 추니가 잠깐씩 붙들어 줘야 한다.

▲짐받이 부러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후 들어 뇌르틀링겐에 도착했다. 1,500만 년 전 운석이 떨어져 파인 대지 위에 생긴 뇌르틀링겐은 중세 도시의 모습을 온전히 남기고 있었다.

90미터 높이의 성 게오르그 교회의 다니엘 탑은 이 도시의 상징이었다. 우린 성벽에 올라 마치 예쁜 피자 한 판 같은 원형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그날 밤 성벽 안 민박에서 묵었는데 성곽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딩켈스뷜(Dinkelsbuhl)로 향하는 길은 거센 역풍이다. 자전거 탈 때 뒤에서 바람이 밀어 주면 훨씬 쉬운데 아마도 우리가 평소에 덕을 많이 쌓지 못했나 보다.

잠시 휴식 시간, 추니는 나무 꼬챙이로 체인 틈새를 파내고 기름을 쳤다. “윤활유 묻은 체인에 먼지가 붙어 잘 안 돌아가요.” 추니는 성실한 정비공이다.

▲딩켈스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벌채가 한창인 비포장 길에서 또 펑크가 났다. 두 번째 펑크다.

“왜 내 자전거만 펑크가 나는 거지?” 추니한테 운전 좀 잘 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둘러 타이어 속 튜브를 꺼내 공기를 불어 넣어 펑크 난 부위를 찾았다.

그리고 찢어진 튜브 주위를 사포로 문지른 후 본드를 칠하고 패치를 붙였다. 땜질 끝.

딩켈스뷜은 4백 년 넘은 건물이 많다고 한다.

중앙 광장에는 1440년에 지어진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이체스 하우스(Deutsches Haus)’가 있는데, 나무와 나무를 대각선으로 연결하고 그 가운데 공간을 진흙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기둥에 갖가지 조형물이 부착되어 있었고, 알 수 없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도이체스 하우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딩켈스뷜 시내에서 가까운 ‘DCC 캠핑장’을 찾았다. 하룻밤 이용료는 16유로, 2만 4천 원이다.

캠핑카 460대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로 화장실, 샤워장은 호텔 수준이었다. 우리 빨랫줄이 제일 길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네 식구 캠핑 가족과 이웃이 되었다. 짐이 한 트럭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 가족은 우리가 온 쪽으로 가고, 우리는 그들이 온 방향으로 가는 중이라서 서로 좋은 여행 정보를 주고받았다.

우린 청실홍실 한 개와 한복 차림의 휴대폰 고리 두 개를 그들에게 줬고, 그들은 독일 캠핑장 정보가 담긴 안내서와 복숭아 세 개를 우리에게 줬다.

▲DCC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8월 6일 아침. 엊저녁 빨랫줄에 넌 옷들이 이슬에 흠뻑 젖어 다시 한 번 쥐어짜 그냥 자전거에 실었다.

마실 물은 캠핑장에서 1.5리터 페트병에 한 병씩 담았다. 캠핑장 물맛이 좋은 것도 있고, 또 누구나 그렇게 한다.

캠핑장엔 식수와 설거지물 나오는 수도꼭지가 구분되어 있었다. 처음 오스트리아에 도착해 빈에서 물 두 병을 산 뒤로는 따로 물을 산 적이 없다.

▲옥수수 밭.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자전거 길가에 이동식 화장실이 한 군데도 없지만 옥수수 밭이 있어 걱정 없다.

비좁지만 가림막이 확실하고, 풀 내음 속에 쾌변을 느낄 수 있다. 종종 길가에 한 사람이 자전거 두 대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일 때면 그 옆은 늘 옥수수 밭이다.

오후 3시. 포이흐트방겐(Feuchtwangen)에 도착했다. 사거리에서 관광안내센터와 자전거 수리점을 찾으려고 어정대고 있는데 자전거에 장바구니를 단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뭐 도와 드릴까요?” 쾌활하고 거침없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네. 자전거 수리점을 찾고 있어요.”

그러자 장바구니 아주머니는 손짓으로 자기를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달려 시내 중앙 광장 옆 자전거 서비스센터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어떤 문제가 있나요?” 수리공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왔다. “네, 이렇게 스탠드가 부러졌어요.”

수리공은 자전거에 실린 가방을 땅바닥에 풀어 놓자마자 자전거를 덜렁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중앙 광장에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고 있었다.

“오늘 무슨 행사 있어요?” 이곳에 안내해 주고 어딘가 잠시 다녀온 장바구니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네, 자전거 축제가 있어요. 이 지역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건데 로만틱 가도에 있는 부락들을 자전거로 릴레이 하는 거예요. 경기가 아니고 그냥 축제예요.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요.”

흥겨운 표정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린 자전거를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구경하러 장바구니 아주머니를 따라 광장으로 들어섰다.

▲포이흐트방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자전거 축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추니는 앞줄로 살금살금 파고들며 연신 사진을 찍어 댔다. 자전거 행렬과 진행자, 열광하는 주민들 모습이 모두 이색적이다.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거리에 나올 줄이야! 거리 시민들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모두 함께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박수 치고 서투른 어깨춤도 같이 췄다. 어느새 경찰 오토바이와 함께 자전거 선두 그룹이 광장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렇게 5백여 명의 자전거 행렬이 모두 빠져 나간 한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한바탕 축제였다.

“오늘 밤 숙소는 예약했어요?” 옆에서 우리와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던 장바구니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뇨, 아직요. 이제 캠핑장을 찾으려고요.”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여긴 캠핑장이 없어요. 우리 집 정원이 있는데 거기에 텐트 치실래요?” 아주머니의 스스럼없는 제안에 나는 놀랐다. “정말요? 잠시만요, 제 아내한테 물어볼게요.”

나는 잠시 생각도 할 겸 여운을 남겼다. 추니는 혹시 어떤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워 했지만 느낌이 안 좋으면 다시 나오기로 하고 일단 가 보기로 했다.

▲포이흐트방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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