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107일 만에 청와대 참모와 정부가 동시에 물러나 사실상의 '국정 실패'를 선언한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다. 그러나 더욱 민감한 관건은 이같은 '초강수'가 과연 들끓고 있는 민심을 달랠 수 있을지 여부다.
"여론에 밀려 찔끔찔끔…언 발에 오줌누기"
여권은 청와대 비서진에 이어 내각의 사의 표명으로 쇠고기 파문이 진정되는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내각 총사퇴' 카드가 과연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관측이 적지 않다. 여론에 밀리다 못해 나온 고육지책인 탓이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폭발하기 시작한 지난 5월 초 이명박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에 세게 훈련을 했는데 뭘 또 바꾸느냐"면서 "내가 기업의 CEO를 할 때 느낀 것인데, 사람이 시련을 겪으면 더 강해지는 게 있다"고 '인적 쇄신론'에 쐐기를 박았었다.
곧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통합민주당 등 야당들이 주도한 정운천 장관 해임결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오히려 촛불에 기름을 부었다.
이 대통령은 "국민께 송구스럽다"면서 고개를 숙였고, "재협상은 없다"는 애초의 강경론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민간 자율협상'이라는 입장으로 한 발 물러섰다.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을 필두로 한 당·정·청의 인사들이 미국으로 달려가 '구체적인 조치'를 조율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1987년 6.10항쟁 21주년 행사와 맞물려 10일 촛불집회에는 최대인파의 집회와 거리시위가 예정돼 있다. 시민들은 2008년의 6월의 거리에 '제2의 6월항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각 총사퇴'라는 특단의 처방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앞세웠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물론 이번 사태가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강부자 청와대' 등 인사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만큼 내각 총사퇴라는 대책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라면서도 "대통령의 사태 파악도 너무 늦었고, 쇄신안도 너무 늦게 나왔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내각의 사의표명으로 당장 촛불집회가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귀영 연구실장 역시 "사퇴카드를 쓰려면 진작 썼어야 했다"며 "여론에 밀려 찔끔찔끔 물러서다 나온 총사퇴 카드는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삼모사' 쇄신안으로는…
게다가 청와대가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의 사의표명에 대해 '선별수리'로 가닥을 잡고 있는 대목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현재로선 장관들 중에선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등의 교체설이 거론된다. 한승수 국무총리의 경우엔 여권 일부에서 주장하는 '박근혜 총리론'과 맞물려 거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들 중에선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필두로 김중수 경제수석,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이종찬 민정수석의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장관과 수석 1~2명 정도가 더 교체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나라당에선 한승수-류우익 '투톱'을 교체해 인적 쇄신의 상징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장관 몇 명을 더 경질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참모들과 내각의 '일괄사의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선별수리론'이라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 총리의 '내각 총사퇴'가 현실화된 10일에도 "상식적으로 전면수리를 통한 조각 수준의 전면개각을 상정하긴 어렵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귀영 실장은 "물론 인재풀이 협소한 현 정부에서 장관과 참모들의 전면 교체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부분적 인적쇄신은 이미 국민들에게 '깜짝카드'가 되기 어렵다"면서 "시기, 방식 모두 충분치 않은 대책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참여연대는 "장관과 수석 몇몇을 바꾸는 것으로 국면을 모면하려 한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전면교체"를 압박했다. 사표를 일괄 수리하고 새판을 짜라는 주문인 셈이다.
참여연대는 "류우익실장과 내각을 통할하는 한승수 국무총리는 경질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도덕성에서 문제가 드러난 이동관 대변인,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김도연 교과부 장관과 쇠고기 협상의 책임자인 정운천 농식품부장관, 유명환 외통부장관, 대운하와 물민영화 및 학교자율화 등 국민의 뜻과 다른 정책을 밀어붙인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과 이만의 환경부장관,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은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또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상황의 책임을 물어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김중수 경제수석도 교체해야 한다"고 했고, "김성이 보건복지부장관과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 김경한 법무부 장관 역시 교체 사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통합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인사쇄신만 하고 재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재협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인사쇄신을 한다면 논리의 모순이 생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돌려막기'로 가나?
'내각 총사퇴'가 또 다른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도 여전하다. 1진이 물러간 자리를 2진이 메우는 식에 대한 우려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권력갈등 논란의 당사자인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원로 측근들과 함께 국정 쇄신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같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상득-최시중 라인이 또 다시 시나리오를 짜는 게 아니냐는 것으로. 쇄신 대상이 쇄신을 주도하는 격이다. 특히 여권에서 거론되는 '수혈' 대상자 중에는 총선 공천파동 당시 이상득 전 의원의 대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방호, 정종복 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차영 대변인은 "정권의 인적쇄신이 예고편만 요란한 졸작으로 끝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권의 필요에 따른 돌려막기식 인사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적 불신임을 당한 인사들을 정권의 필요에 의해 재신임한다거나 그 밥에 그 나물 수준의 인사로 돌려막기 할 생각이라면 아예 하지 않느니만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아직 사표를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노골적인 방송장악 의도를 드러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촛불시위 폭력진압의 책임자인 어청수 경찰청장과 함께 최 위원장을 겨냥하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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