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5월의 하늘 아래, 강릉단오제가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지난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축제입니다. 지금 문 열려는 강릉단오제학교는 강릉단오제를 가장 잘 아는 황루시 교수(가톨릭관동대학교)와 함께 이 축제의 의미와 재미를 만끽하며, 축제의 한가운데로 구경 가는 학교입니다.
황루시 교장선생님은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이자 민속학자입니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미얀마, 베트남, 인도 등 아시아의 굿현장을 답사하면서 무속문화연구에 천착한, 이 분야 최고 전문가입니다.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에 등재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강릉단오제의 현장과 이론에 가장 해박한 학자입니다. 요즘은 강릉단오굿의 무대화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굿위드어스>라는 제목의 공연을 진행중입니다. 저서로는 <한국인의 굿과 무당> <황루시의 우리 무당이야기> <강릉단오제 양중 연구> 등이 있습니다.
황루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강릉단오제에 대해 들어봅니다.
흔히 강릉단오제라고 하면 만물이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단오 때 남대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남자는 씨름하고 여자는 그네 뛰면서 춤추고 먹고 마시는 난장을 떠올립니다. 음력 5월 1일부터 8일까지 벌어지는 강릉단오제는 엄숙한 제례와 신명나는 무당굿, 재미난 탈놀이가 전승되고 각종 민속놀이가 벌어질 뿐 아니라 강릉 시내를 관통하는 남대천을 끼고 1킬로미터가 넘는 천막이 들어서 전국 최대 규모의 난장이 서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렇지만 강릉단오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닙니다. 강릉단오제는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인데 그 핵심에는 대관령신앙이 있습니다.
강릉단오제를 수식하는 단어는 바로 ‘천년축제’ 입니다. 935년 강릉의 왕순식장군이 왕건을 도와 견훤의 아들 신검을 토벌하러 대관령을 넘어가면서 산정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에 근거합니다. 신라 때까지 강릉사람들은 굳이 백두대간을 넘나들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려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가기 위해서 강릉은 물론이고 영동 지역민들은 수시로 백두대간을 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조선조까지 영동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길이 바로 대관령입니다. 아흔아홉 위험한 고개 대관령은 이때부터 영동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하고 의미있는 길이 되었고 가장 중요한 신앙처가 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승된 것이 바로 강릉단오제인 것입니다.
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신주를 빚는 것으로 시작해서 4월 보름 대관령에 올라가 신을 모셔오는 국사성황제, 그리고 남대천변에 마련한 본제 행사까지 한 달이 넘게 지속되는 전통축제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 학교는 음력 4월 보름 대관령에서 시작하는 대관령산신제와 국사성황제를 구경하고 강릉시내로 내려오는 신의 행차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영동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신성한 산 대관령에서 단풍나무 신목을 타고 신이 인간에게 내려 와 마침내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신명나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신주빚기(음력 4월 5일)
음력 4월 5일 강릉사람들은 정성스레 술을 빚습니다. 술과 떡은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입니다. 인간은 물을 마시지만 신을 술을 마십니다. 인간은 밥을 먹지만 신은 떡을 드시지요. 그래서 술과 떡은 제물의 기본인 셈입니다. 떡은 제사모시기 직전에 찌는 것이 가장 맛있습니다. 하지만 술이 익으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항아리에 담고 봉하는 술빚기는 모든 제의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제주는 대관령지킴이 산신과 영동지역 주민들을 수호해주는 대관령국사성황에게 바치는 술입니다. 위에 뜬 청주만 깨끗하게 거른 술을 강릉사투리로 ‘진땡이’라고 부릅니다. 솔찮이 독한 이 술은 신에게는 제주요 인간에게는 음복주가 되어 마침내 신과 인간을 하나가 되게 해주겠지요.
4월 보름 대관령을 오르다
열흘이 꼬박 지났습니다. 술이 알맞게 익었습니다. 음력 4월 보름 이른 아침, 해마다 어김없이 강릉사람들은 정성스레 거른 제주와 온갖 제물을 이고지고 대관령에 올라갑니다. 아흔아홉 구비 험한 고개, ‘대굴대굴 굴러 내려온다’고 해서 강릉사람들이 ‘대굴령’이라고 불렀던 대관령.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서 15분이면 쌩하니 올라갈 수 있지요. 하지만 국사성황에게 가는 길은 아직도 왕복 2차선 옛길을 이용하기에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옛대관령휴게소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대관령국사성황사와 산신당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발아래 안개가 자욱한 이곳이 바로 영동지역 주민들을 보호해주는 신의 거처입니다. 주민들은 산신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장군, 대관령국사성황은 고려초 유명한 선승인 범일국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엄숙한 대관령 산신제
김유신은 태백산에서 검술을 연마했고 선지사에서 검을 주조한 인연으로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산신제는 산신당에서 아침 10시에 시작합니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으로 선정된 3명의 제관이 영동지역 주민들을 대표하여 산신에게 잔을 올리고 험한 길을 오갈 때 아무 사고 없이 도와달라는 축을 고합니다. 산신제는 순수한 유교식 제례로 홀기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됩니다.
대관령 국사성황에게는 제사와 굿을 모두 바친다
대관령국사성황은 고려초 유명한 선승 범일국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황사 안에 모셔진 신의 그림은 말을 타고 활통을 멘 장수가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성황사에서는 강릉시장이 초헌관이 되어 제례를 올리고 이어서 무당이 굿을 합니다. 무녀는 먼저 부정을 가신 후 성황을 모시는 굿을 하지요. 마당에 앉아있는 구경꾼들도 제관이 축을 고할 때는 저마다 엎드려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러나 무녀가 굿을 시작하면 어느새 음복으로 나눠준 떡과 과일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구경을 합니다. 배는 부르고 굿은 재미있고 대관령의 공기는 맑고 참 기분좋은 봄날입니다.
대관령 산정에서 가장 신성한 나무는 단풍나무입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중 한 나뭇가지에 대관령국사성황이 강림하기 때문이지요. 양력으로는 5월이지만 대관령의 단풍나무는 이제 막 잎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뒷산 가득 안 그래도 아기손가락 같은 단풍나무 잎이 아침 햇살을 받아 초록으로 꼬물대고 있습니다.
굿이 끝나면 문득 신장부가 성큼성큼 산을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신장부는 무당이 아닌 일반인으로 신이 내려오는 신목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신장부의 뒤를 무녀와 악사들 제관들 그리고 저마다 카메라를 든 구경꾼들이 정신없이 따라가지요. 어느만큼 올라가면 신장부는 어느 단풍나무 앞에 멈추고는 가지를 양손으로 잡고 집중합니다. 황급히 따라간 무녀가 제금을 치면서 신이 내려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옛날 기록에 의하면 저절로 떨고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았다고 하네요.
드디어 신장부의 손이 떨리고 나뭇가지가 떨리고 어린잎이 사정없이 떨리면 제관들은 신목의 밑둥을 벱니다. 신장부가 신목을 모시고 내려오면 사람들은 다투어 붉고 노란 오색의 예단을 겁니다. 이른바 신에게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물론 예단을 바치는 사람들은 천 한 구석에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이름과 소원적는 일을 절대 빠뜨리지 않는답니다.
신의 행차를 따라 대굴령을 내려갑니다
자, 이제 신목과 평소 국사성황사 안에 안치되어 있던 대관령국사성황신위를 모신 일행이 강릉으로 출발합니다. 옛날에는 50리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 하루 종일 갔지만 요즘은 사실 자동차를 타고 갑니다. 하지만 옛 법을 그냥 버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성황사에서부터 40여 분간은 대관령 옛길을 걸어 반정까지 내려갑니다. 신을 따라가는 산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주변에는 보라색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노란 동백꽃과 신록 고운 숲이 청량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유명한 김유정의 그 ‘동백꽃’이랍니다. 그 길을 오색 예단으로 치장한 신목과 신위를 모신 엄숙한 제관들, 신목만큼이나 화려한 차림의 무녀와 악사들이 따릅니다. 물론 맨 뒤에는 신심 깊은 강릉시민들과 아마 우리들도 뒤따라 가겠지요.
꽃밭일래 꽃밭일래 사월보름날 꽃발일래 기화자자 영산홍
구산은 대관령에서 강릉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마을입니다. 옛날 구산에는 역원이 있어 관리나 여행자들이 말을 갈아탔다고 합니다. 국사성황을 모신 일행도 구산에 도착할 즈음이면 날이 저물어 피곤한 몸도 쉬고 저녁도 먹었습니다. 그 풍습이 남아있어 지금도 구산서낭당에 잠시 쉬어가지요. 구산마을사람들은 성황신을 환영하면서 신이 머무는 동안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무당굿도 합니다. 구산서낭당은 한 칸 기와집으로 영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당집입니다.
걸어서 내려왔던 시절에는 이렇게 쉬다보면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국사성황을 기다리던 강릉사람들은 손에손에 횃불을 들고 구산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신을 맞이하러 오는 것입니다. 이때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영산홍>입니다.
영산홍로 봄바람에 가지가지가 꽃피었네 기화자자 영산홍
꽃밭일래 꽃밭일래 사월보름날 꽃밭일래 기화자자 영산홍
일 년에 딱 한번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는 국사성황의 앞길을 밝혀드리기 위해 저마다 손에 든 횃불이 마치 이 무렵 산과 들에 붉게 핀 영산홍 같다는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대관령국사성황님, 고향에 돌아오시다
그 후 범일은 출가하였고 당나라에 수학한 뒤 영동지역을 대표하는 유명한 선승이 되었습니다. 신라 말 왕으로부터 두 차례나 국사로 초빙되었으나 가지 않았습니다. 학산 굴산사 주지로 있다가 입적 후 범일국사는 대관령국사성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학산에는 학바위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바가지에 든 태양을 마셨다는 우물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태풍 루사 때 떠내려갔습니다.
일행이 학산에 도착하면 마을사람들은 <영산홍> 노래를 부르면서 고향을 찾아온 국사성황을 환영합니다. 학산서낭당은 소나무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집보다 더 옛 모습을 지닌 예쁜 당입니다. 마을사람들은 누구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국사성황을 환영하면서 제사를 모시고 무당굿을 합니다. 굿이 끝나면 마을에서는 대추 하나, 밤 한 개에 신의 축복을 담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준답니다.
국사성황님, 자신의 영역을 돌아보다
이제 신의 행차는 강릉 시내로 들어갑니다. 트럭을 탄 신의 일행은 그 옛날 일제강점기에 강릉단오제의 맥을 이었던 중앙시장을 비롯해서 강릉 시내를 한 바퀴 돕니다. 신의 권위로 고을의 잡귀를 물리고 신의 영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행은 대관령국사여성황사로 갑니다.
드디어 만난 부부신, 이제 만물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국사여성황사는 대관령 발치를 흐르는 남대천 물가에 있습니다. 신장부는 고이고이 모셔온 신목을 당 안에 세워놓습니다. 제관들은 대관령국사성황신위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위 옆에 나란히 안치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단오제가 시작되는 5월 3일까지 두 신은 이곳에서 정기적인 신혼여행을 즐기실 것입니다.
자, 이제 두 분이 함께 계십니다. 그렇다면 다시 제사와 굿을 올려서 편안히 계실 것을 축원해야겠지요! 그래서 모시는 제사가 바로 봉안제입니다. 지금쯤은 아셨겠지만 강릉단오제의 종교의례는 항상 유교식 제례와 무당굿을 함께 합니다. 먼저 제사 모신 후 무당이 굿을 하는 방식입니다. 조선조 강릉단오제는 이속인 호장이 관장했습니다. 즉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였지요. 그래서 관리들이 하는 제례와 민중을 위한 굿이 공존했답니다. 그 역사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참가할 행사는 본격적인 단오제가 시작하기에 앞서 대관령에 올라가 서낭을 모시고 강릉으로 내려오는 이른바 ‘신의 행차’입니다. 행사는 아침 10시 대관령에서 시작, 저녁 7시가 넘어야 끝납니다. 하루 종일 강릉사람들의 신을 향한 지극한 정성과 신과 인간이 하나 된 기쁨이 신명으로 일행을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조금 고되지만 경건한 제의와 신나는 무당굿이 한데 어우러지며 숨 가쁘게 진행되는 신의 행차에 초대합니다.
강릉단오제학교 제1강은 음력 4월 보름, 양력 5월 21일(토요일) 당일로 열리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06:30 서울 출발(정시에 출발합니다. 6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강릉단오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를 준비하겠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강 여는 모임
09:00 옛대관령휴게소 도착. 대관령국사성황사로 이동
09:30 대관령국사성황사 도착
10:00 산신제
11:00 국사성황제와 성황굿(간식-대관령에서 나눠주는 떡과 음료, 약간의 어물)
12:00 국사성황행차(대관령 옛길로 반정까지)
14:00 구산서낭제와 서낭굿
15:00 학산서낭제와 서낭굿(점심-마을사람들이 준비한 떡과 과일, 어물 등)
16:00 국사성황행차(강릉 시내에서 국사여성황사까지)
17:00 저녁식사 겸 뒤풀이(막걸리를 곁들인 막국수와 수육)
18:00 봉안제
19:00 서울 향발. 제1강 마무리모임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걷기 편한 차림(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모자, 선글라스,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과일,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강릉단오제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학습자료-강릉단오제란?]
강릉은 서쪽으로 한반도를 수직으로 가르는 백두대간에 막히고, 동쪽으로는 동해바다에 면한 작은 도시이다. 구불구불 아흔아흔굽이 오십리(20킬로미터) 길을 휘감아돌아 오르는 치높은 고개, 백두대간의 분수령인 대관령은 한반도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길목이자 중앙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오랜 세월 동안 영동지역 사람들 마음의 고향이 되어왔다. 가장 높고 신성한 그곳에는 국사서낭님[國師城隍神]이 좌정해 계셔서 주민들의 삶을 관장하고 보호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릉단오제는 바로 이 대관령을 신앙의 중심공간으로 하여 천여 년 동안 계승되어온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축제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부터 5월초까지 한 달여에 걸쳐 대관령과 강릉시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음력 4월 5일 신주빚기로 시작, 4월 15일에는 대관령에 올라가 국사성황신을 모셔 강릉 시내 국사여성황사에 봉안한 뒤 5월 3일부터 7일 저녁까지 강릉 시내에서 본격적인 단오제 행사를 벌인다. 신주는 강릉시장과 시민들이 정성을 다해 바친 쌀과 누룩으로 빚는다. 4월 보름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천 명의 시민들이 대관령에 올라가 국사서낭님을 모셔온다. 국사서낭님은 대관령 정상의 단풍나무를 타고 내려온다고 믿어 신이 깃든 나무를 베는데, 이날부터 신목은 단오제가 끝나는 날까지 국사서낭님의 상징으로 모셔진다.
본격적인 단오제는 5월 3일부터 닷새동안 강릉 시내를 관통하는 남대천 강가 단오장에서 벌어진다. 단오장은 굿당을 비롯하여 탈놀이판, 농악장, 씨름판, 그네장이 서고 거기에 온갖 음식과 생활용품을 파는 난장이 있는 임시 축제마당이다. 이곳에서 강릉시민들은 일년에 단 한번, 축제의 신명을 즐기면서 일상의 피로를 풀어내고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강릉단오제는 한국의 대표적 전통신앙인 무속, 유교, 불교, 도교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 가운데 성립된 축제이다. 특히 강릉 출신의 승려이면서 고려 건국의 정신적 지도자인 범일국사를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공동체의식을 다져왔다. 신성한 제의, 신명나는 민속놀이, 질펀한 난장이 한데 어우러지는 강릉단오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독창성을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축제를 구성하는 무당굿, 가면극, 농악, 민요 등 관련 예술의 각 부분들은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습무들이 주관하는 무당굿은 종교의례인 동시에 노래와 서사시 구연, 춤, 반주음악, 촌극 등으로 구성되는 종합예술이다. 가면극은 한국 유일의 무언극으로서 원시적 단계의 탈, 흥겨운 장단, 정교한 춤사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수십 명이 함께 타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추는 농악은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축제마당에 나온 사람들의 신명을 돋우는 음악이자 놀이이다. 모를 심거나 김맬 때 부르던 민요는 힘든 노동을 놀이로 바꾸는 힘이었는데 오늘날 단오장에서 즐길 수 있다. 그외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놀이인 씨름과 여자들의 놀이인 그네는 단오제의 대표적 민속놀이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축제의 문화적 원형이 살아있는 강릉단오제는 오늘날 전통문화 전승의 통로이자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키워내는 정신문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강릉단오제는 지역주민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강릉단오제위원회를 통하여 행사의 계획과 진행, 예산 책정과 집행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축제로서 해마다 22만 강릉시민을 포함하여 국내외 관람객 등 약 1백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역사성과 전통성을 인정받아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고 지난 200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명실공히 세계의 축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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