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고 또 내리고
8월 2일. 잉골슈타트(Ingolstadt)로 가는 도중 자전거를 타고 가던 어떤 젊은 부부를 만났다.
그 부부는 우리에게 다가와 도나우 강 상류에 비가 많이 내려 자전거 길이 일부 폐쇄되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래서 우린 켈하임(Kelheim)에서 웰턴부르크(Weltenburg) 구간을 40분간 페리로 이동했다. 1인당 7천 원을 지불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라이딩을 하면서 도나우 강가에 위험 표지판을 못 본 것 같다. 공사 중인 곳을 제외하고는 커브길이나 협곡, 낭떠러지도 마찬가지였다.
‘수영하지 마라, 낚시하지 마라, 이곳은 수심이 깊은 곳이다, 구명환을 걸어 놓았으니 비상시에 사용해라.’ 하는 경고문도 보지 못했다. 물론 가드레일을 설치한 곳도 없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참 이상했다.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걸까, 아니면 각자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걸까?
제방 길을 달리는 도중 갑자기 핸들이 이리저리 뒤뚱거렸다.
‘앗! 펑크다. 첫 펑크가 났다.’
날카로운 자갈에 타이어가 조금 찢어졌다. 가방을 자전거에서 내린 뒤 곧장 수리를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뭐 도와줄 거 없느냐”고 연신 물었다.
“안녕하세요. 태극기를 보니 한국에서 오셨군요.”
어떤 젊은이가 꼬마 아들과 자전거를 끌고 다가와 더듬더듬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듣자 하니 작년에 홍익대학교에서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했었단다.
경주도 가 보고, 광주 비엔날레도 가 봤다며 한국에 있는 동안 친구들이 너무 잘 대해 줘서 고마웠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 잉골슈타트에 있는 ‘아우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한국에 꼭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젊은이는 땜질하는 곁에서 사포질도 해 주고, 바퀴에 공기도 주입해 주었다. 답례로 꼬마에게 ‘세계평화의 종’ 책갈피를 줬다.
잉골슈타트에 거의 다다르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까운 상점에 들어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오후 4시 44분이었다.
“여기서 우리 집이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
추니가 혼잣말을 했다. 상점 종업원에게 캠핑장과 호텔에 대해 물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제각기 자기 말만 하다가 대화가 끊기고 말았다.
아직 가랑비가 후드득후드득 내리는데 캠핑장을 찾아 나섰다. 길 가는 이에게 물으니 가까운 공원에 작은 캠핑장이 있단다.
그래서 그곳으로 바퀴를 굴렸는데 막상 가 보니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텐트 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에구! 안 되겠다. 호텔을 찾아보자고요. 비도 계속 내릴 것 같고…….”
시내 한복판에서 ‘호텔 가르니(Hotel Garni)’를 찾았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호텔 앞에서 머뭇거리자 인근 상점 주인이 다가왔다.
‘이 호텔에 묵으려면 전화하세요.’라는 호텔 정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고 주인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5분 뒤, 주인이 차를 타고 나타났다. 숙박비는 조식 포함 60유로였다. 비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호텔 바로 앞. 타이 음식점이 밤늦게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할로? 매운 음식 뭐 있어요?”
식당 주인이 못 알아들었는지 아무 응답이 없다.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할머니가 식당 주인에게 뭐라 뭐라 하자 그제야 메뉴 중 한 개를 가리키며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부채질을 한다. 그 정도로 맵다는 것일 게다. 우린 OK했다.
음식이 금방 나온 걸 보니 한국 사람 급한 성질을 알고 있었나 보다. 배고팠던 터라 음식이 조금 늦게 나왔더라면 독촉했을지도 모른다. 짭짤하고 매콤해서 정말 우리 입맛에 ‘딱’이었다.
“와인 한 잔씩 더 주시고요, 밥 좀 더 주세요.”
와인 원샷에 고봉으로 담아 온 밥 한 대접을 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나중에 보니 밥 한 솥을 우리가 다 먹었다.
8월 4일.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오늘은 도나우 강의 마지막 라이딩 구간인 도나우뵈르트(Donauworth)를 향해 출발했다.
지난 7월 16일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해 도나우 강 물길 따라 서쪽으로 600km를 거슬러 올라왔다. 길을 달리며 문득 지난날을 돌아봤다.
먼저 걱정했던 캠핑장은 도나우 강변에 촘촘히 있어 텐트 칠 곳을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늘 여분이 있었다. 식재료는 미리 이삼일 치를 구입해 싣고 다니면서 캠핑장에서 직접 취사를 하기도 했고, 이동하면서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우기도 했다.
지도가 길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분명히 세워져 있었다. 날씨는 장마철이라서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를 피하느라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하루 50km 정도의 라이딩은 체력에 그다지 무리가 가지 않았다. 더 달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2% 아쉬운 순간에 우리는 멈췄다. 다행히 추니의 허리 통증이 사라져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해질녘 도나우뵈르트에 도착해 관광안내센터에 들러 ‘로만틱 가도’ 자전거 지도책을 구입했다. 가격은 9.90유로, 한화로 만 오천 원이었다.
왜 이런 책을 국내에서 구입하지 못했을까? 이번 로만틱 가도 자전거 길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왔는데, 이렇게 좋은 정보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사실 유로벨로6 루트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달리면 유럽 서쪽 대서양과 만나게 된다. 이 길은 비교적 단순하고 편안한 주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다이내믹한 노선을 선택했다. 유로벨로6 자전거 길 중간에서 직각으로 핸들을 돌려 로만틱 가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할 것이다.
저녁 식사로 연어구이와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별도의 팁은 거의 지불하지 않았다.
팁을 주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받은 경우에 준다고 하는데 음식을 주문받는 사람, 가져오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이 각기 달라 누구에게 감사의 팁을 줘야 할지 몰라서다. 다른 사람들도 팁 주는 걸 아직 못 봤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도나우뵈르트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초저녁엔 몰랐는데 밤이 깊어지면서 낙차가 심한 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점점 요란스럽게 들렸다.
우린 취사장 전원에 스마트폰을 꽂아 놓고 문밖에서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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