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귀포시가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조직위의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요청을 거부했다. 영화제가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곧바로 문화예술계와 지역사회의 반발이 일었다. 상영할 작품이 위법적 사유가 없는데다 당국이 일방적으로 문화예술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는 무릇 예술의전당이라면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예술공간'이 돼야 하고, 당국도 이러한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지역 문화예술계의 릴레이 기고를 게재한다.
1987년의 일이다. 내가 속했던 '놀이패 한라산'은 창단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문예회관 측은 우리의 대관신청을 불허했다. 우리의 공연이 정치적이고 편향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정보기관과의 협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공연 대본을 극장과 정보기관에 제출해서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던 시기니까.
그 이후로 우리의 공연은 무조건 불허됐다. 극장을 구할 수 없었던 우리는 변두리 민간 소극장이나 제주시민회관 등을 이용해 공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민회관도 단 1회 공연을 허가한 후에는 또한 무조건 불허됐다. 대관신청을 하면 무조건 '내부공사 중이라 대관할 수 없다'는 답변만 늘어놨다.
유독 우리가 신청한 날짜 전후로 내부공사를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는 우리의 공연을 허가했다가 뒤집어쓸 덤터기를 우려한 직원들의 자의적 판단이었다.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공연을 '허가'하는 공공기관은 감사대상이자 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엊그제 서귀포예술의전당 측은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의 대관을 '정치성을 띠고, 편향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30년 전에 정말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제주의 문화예술 수준이 정확히 30년 전으로 후퇴했다. 사회전반의 민주화 수준이 역행하고 있듯이.
관련 보도내용에 따르면 전당 측이 대관불허 이유로 밝힌 정치성, 편향성 운운은 관장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검열'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유감없이 휘두른 것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관장님은 문화예술계의 '갑'님으로서 완장을 화려하게 휘두르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해서 정부기관의 말단 죄장답게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것일 거고.
'허가'와 '불허'라는 양날의 칼을 쥔 인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작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가장 비문화적인 인사가 문화의 상좌에 앉아 가장 비예술적으로 예술을 유린한 것이다.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자유다. 어느 누구라도 간섭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문화예술의 민주화! 이 또한 시대적 소명이다. 어느 누구라도 억누르거나 구속할 수 없다. '정치성 편향성' 운운하는 자들이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편향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나는 묻고 싶다. 오만하거나 저열한 자의적 판단으로 문화예술의 이름에 칼질을 한 인사는 과연 그 판단이 문화예술 전반에 미칠 파장을 생각이라도 했는지.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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