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이 어려운 기존 선거제도의 문제점
[표 1]에서 보듯이 거대 양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매번 자신의 정당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새누리당은 36%의 정당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수는 이보다 많은 42%이고, 더불어민주당도 정당 지지율은 27%에 불과하지만 의석수는 43%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29%의 정당 지지에도 불구하고 의석수는 13%에 불과하고, 정의당은 8% 지지를 받았는데 의석수는 2%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경우, 지역구는 기호 2번, 정당 투표는 3번을 찍은 유권자들의 교차 투표에 따른 예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지지와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모순된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큰 왜곡 현상은 소수 정당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의 의석수는 그들이 받은 정당 지지율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왜곡 현상은 정치에서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먼저 선거 결과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고,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로또' 당선과 같이 운에 맡기게 된다. 또 기존 정책의 지속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더 지적할 문제점은 낮은 투표율의 문제이다. 물론 투표율이 조금씩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10~20% 이상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 하에서는 당선자가 아닌 후보자를 선택하는 유권자의 표들이 모두 사표가 되어 버리는 것이 낮은 투표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표 심리로 인하여 아예 투표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패배
박근혜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실망, 야권 분열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친박과 비박 간의 권력 투쟁, 그에 따른 어이없는 공천 파동 등이 새누리당 패배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지면서 수도권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물론 일부 지역구에서 야권표가 분산되면서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달성한 곳이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여권표가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새누리당 후보가 떨어진 곳도 많이 보인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뒤에 국민의당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새누리당의 수도권 패배는 기존 선거 제도의 문제점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한다. 필자의 지난 글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유권자의 지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의석수를 얻고 있다. (☞관련 기사 : 새누리 152석, 독일식 비례대표제 적용해보니…)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서울, 인천, 경기에서 자신의 정당 지지율에 비해 24석이나 부족한 의석수를 얻었다. 이번 20대에서도 물론 전반적으로 지지율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그런 낮은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의석수를 얻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서울에서 9석, 인천 2석, 경기도에서 6석으로 모두 17석이나 모자랐다.
필자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세미나, 토론회 등에서 기존 선거 제도와 관련하여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거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야권은 이미 이에 동의하고 있으나, 아직 새누리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제 새누리당 내 수도권 정치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이다. 새누리당을 심판하려는 유권자들이 정당 투표에서는 원하는 정당을 찍었지만, 지역구에서는 당선 가능한 2번을 찍어주는 교차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유권자들의 그러한 선택은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에 비해 거의 40석이나 많은 의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새누리당의 실정이 가져다준 횡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분석일 것이다.
국민의당의 돌풍
국민의당은 돌풍을 일으켰다고 평가되고 있으나, 선거 결과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당 지지율이 30%에 이른 것을 감안한다면, 최소 90석은 확보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얻은 의석은 38석뿐이다. 호남을 석권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의 지역구에 출마한 많은 후보자들이 적게는 10% 내외, 많게는 20% 내외에 이르는 높은 득표율을 보인 것에 비해 실제 결과는 매우 부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득표율이 모두 야권 지지층에서만 온 것이라면, 새누리당은 대승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이는 의외로 많은 여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을 찍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국민의당 정당 득표수를 살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이 당은 정당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보다도 30만 표나 더 많은 635만 표를 얻었는데, 이 숫자는 야권의 지지표만으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정당 득표수는 18대와 19대에서 1000만 표에 육박했으나, 20대에서는 약 800만 표로 감소하였다. 그렇게 줄어든 200만 표가 국민의당으로 간 것으로 분석된다.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약 170만 표, 정의당에서는 약 50만 표가 감소했는데, 이러한 야권의 220만 표가 더해졌을 것이다. 나머지 200만 표는 투표율 증가에 따른 새로운 유권자들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재 국민의당 지지층은 여권 성향이 3분의 1, 야권 성향이 3분의 1, 그밖에 무당파층이 3분의 1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지층을 감안할 때, 국민의당의 미래는 거대 양당에 비해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잘한다면 여야 양쪽 방향에서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확장 가능성이 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렇지 않다면 양쪽의 지지층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면서 생존 여부가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의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기존 양당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서 표출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당이 내놓은 정책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천 등 선거 과정에서의 모습도 기존 정당들과 거의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선거 제도에서 오는 정의당의 피해
그동안 정의당을 위시한 진보 정당은 기존 선거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매번 총선에서 전체 국민의 5~10%에 달하는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의석의 2~4%만을 얻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민심의 왜곡이다. 그들은 현행 300석 가운데 최소 15~30석의 당선자를 가져야 하고, 당연히 원내 교섭 단체로서의 지위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20대 국회의 정치개혁 과제
빈부 격차, 소득 양극화, 경기 침체, 청년 실업, 노인 빈곤 등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들은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단편적이고 일방적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의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대변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보다는 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국정 전반을 고려하는 것이 가능한 비례대표 의원들이 나서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거나 다양한 이익 집단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실질적 양당 제도를 독일과 같은 안정된 다당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들의 국회 진입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정당들 간 연대 논의에 대해 유권자의 뜻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를 해결하는 길은 연대하지 않고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기존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바꾸는 것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될 사람을 밀어야 한다는 거대 정당에 대한 쏠림현상 때문에 소수 정당은 당선되기 매우 어려운 구조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면서 무작정 선거연대를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야가 대립하는 쟁점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위해서는 과반수가 아닌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은 일반적인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야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급하게 만들어낸 이 법은 과반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이처럼 현행 국회의 과반수가 실질적 의미에서 그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과반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거대 양당에 의해 독과점되고 있으며, 또 그들이 자율적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영에 따라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대진영은 과반의 다수결을 거부하며 저항을 하게 된다. 그동안 본회의장에서의 격렬한 몸싸움이나 상임위 회의실 문을 해머로 부수기, 장외투쟁과 같은 일들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국회 선진화법이 아니라, 과반을 이루는 국회 구성원을 다양화해야 해서 그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즉, 다수 정당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거대 양당에 의해 의석이 독점된 것이 아니라면, 과반의 동의로 쟁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총선에서의 낮은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한 표가 의석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존의 선거 제도를 정당 투표로 의석수를 결정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독일식 선거 제도, 새누리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이 제도를 따르면 비례대표로 진출하는 의원 수가 늘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시끄럽지만 공천 문제가 더욱더 중요하게 된다. 따라서 공천 제도의 입법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총선의 공천 과정을 들여다보면,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에서는 그 잡음이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독일처럼 당원들의 비밀 투표로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제도화하면 공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선거법이 개정되고 공직 후보자 선출 방안에 대한 입법이 이루어진다면, 각 당은 매번 선거를 앞두고 정당 이름이나 정당 잠바의 색깔을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비대위 또는 공심위의 구성을 위해 굳이 외부 인사를 데려오지 않아도 된다. 그밖에 사죄 마케팅이나 삼보일배와 같은 퍼포먼스도 필요하지 않다. 그밖에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이 줄어들 것이고, 정당 활동이 활성화될 것이다. 따라서 선거법 개정과 공천 제도 입법이 20대 국회의 첫 번째 법안이 되어야 한다.
의원 내각제와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교환할 수도 있어야
총선이 끝나자 벌써 대권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권력 구조와 관련된 개헌에 대한 논의들도 점차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땅한 대권 후보가 없는 새누리당은 내각제로의 변환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필자는 가능하다면 여권의 의원 내각제로의 개헌 요구와 야권의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선거법 개정을 맞교환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보듯이 국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측이 정부를 구성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당은 어차피 자신들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