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똑 닮은 독일
7월 28일. ‘인첼(Inzel) 캠핑장’을 떠나 독일로 향했다. 들녘엔 옥수수 밭과 밀밭뿐이다. 집들은 가옥인지 별장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뻤다.
그런데 왜 미색 벽체와 빨간색 지붕만을 고집할까? 다양성을 잃은 걸까, 아니면 전체적인 조화를 강조하는 걸까?
강 건너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자전거를 잠시 멈췄다.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막 올려놓던 순간,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할 겨를도 없고, 피할 곳도 없어 고스란히 비를 쫄딱 맞았다. 이는 아마 낯선 동양인을 경계하는 것이거나 자전거 집시 커플을 시샘하는 것일 게다.
젖은 옷을 짐받이에 매달아 강바람에 말리며 라이딩을 계속했다. 어느새 도로변 저만치에 ‘Good bye’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바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이다. 여권을 제시하고 보따리 검사를 할 줄 알았는데 아무 검문검색도 없이 통과했다. 마치 원주 무실동에서 단계동 건너가는 기분이었다.
이는 1985년 조인한 솅겐 조약에 따라 국가 간의 통행에 제한이 없도록 국경 검사소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26개 국가가 적용되는데, 영국은 제외되어 영국을 건널 때는 아마 검문을 받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같은 언어와 기독교 문화라서 그런지 국경을 넘어왔는데도 양국의 차이를 별로 느낄 수 없었다.
풍요로운 들녘과 번화한 도시도 모두 같은 도나우 물줄기를 따라 형성되었고, 우리가 지도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 달려와 “뭐 도와줄 거 없느냐”고 묻는 친절함 또한 같았다.
정오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도시 파사우(Passau)에 도착했다. 파사우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고대 도시 공원’이었다.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성 슈테판 대성당’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린 넓은 유럽을 가로질러 흐르다 이곳에서 만난 세 개의 강(도나우 강, 인 강, 일츠 강) 합수머리에 텐트를 쳤다.
마침 오늘 이곳 캠핑장 옆 합수머리 광장에서는 맥주 축제가 열렸다. 많은 파사우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모여 항아리만 한 맥주잔을 들고 기름 쪽 뺀 전기 통닭을 안주 삼아 무대 음악을 즐기는 군중 속으로 우리도 들어갔다. 축제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낯선 동양인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내 주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자전거 집시, 바이크 보헤미안이랍니다.”
“이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네. 자전거 세계 일주를 하고 있어요. 이번 유럽 횡단은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해 도나우 강 물길 따라 대서양 쪽으로 가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맥주 맛은 진하면서도 쓴맛이 별로 없어서인지 주량 이상을 마셔도 취기가 별로 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서 맥주 네 항아리를 마셨다.
7월 30일. 파사우에서 85km 거리에 위치한 슈트라우빙(Straubing)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이 아침에 길을 나설 때는 마음이 설렌다. 시원한 바람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바람막이 옷을 입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짧은 영어와 몸짓으로 지나가는 이에게 사진을 좀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인사하는 것, 물건 사는 것, 길 묻는 것, 사진 부탁하는 것 등의 의사소통은 그냥 손짓 발짓과 눈치로 근근이 해결했다.
어차피 각 나라의 언어를 모두 다 할 수는 없고, 그들이 우리 한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오후 들어 슈트라우빙 근교에 다다랐다. 슈트라우빙은 중세 건물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고, 쇼핑센터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광화문 버금가는 넓은 대로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고, 쇼핑센터는 생기가 넘쳤다.
중앙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흥겨운 밴드 음악에 몸을 흔들거나, 서로 입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구 십삼만 명의 작은 도시인데 어떻게 시장경제가 이렇게 활기차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독일은 가는 곳마다 이런 든든한 지방 도시들을 볼 수 있었다. 균형 잡힌 지방 발전이 곧 세계 제1의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졌으리라.
도나우 강가의 작은 캠핑장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노을에 텐트는 더욱 붉게 물들었고, 여기저기 철썩이며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을 시야에서 연신 놓쳤다. 우린 강가에 나란히 앉았다.
집 나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우리는 물길 따라 서쪽으로 달린다. 어떤 까닭이 있어서 서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유럽 횡단을 동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서쪽으로 가는 거다. 꼭 들러야 하는 곳도 없고,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도 없다.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7월 31일 아침.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로 출발했다. 안경에 빗방울이 달라붙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벗는 게 나을 것 같아 안경을 벗고, 그 대신 빗물이 눈으로 흘러들어 가지 못하도록 버프를 머리에 둘렀다. 추니는 춥다며 방풍 옷을 껴입었다가 벗기를 반복했다.
독일의 7월 들녘도 오스트리아와 거의 비슷해서 온통 옥수수와 밀, 감자밭뿐이다. 밭고랑에 심은 작물의 간격도 일정하고, 작황도 비슷했다. 몰래 옥수수 한 개 뚝 꺾어 쪄 먹고 싶었지만 제때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꾹 참았다.
폰도르프(Pondorf) 마을을 지나가다가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눈에 띄어 가던 길을 멈췄다. 사진기를 꺼내 그 열매를 찍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주머니가 불쑥 나타나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 열매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한 개 따 드릴까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니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열매인지 잘 모르지만 너무 맛있게 생겼어요. 그리고 집도 예쁘고, 정원도 아름답게 가꿔 놓았네요.”
너스레를 떨자 그 아주머니는 나무 밑으로 달려가더니 열매를 양손 가득 따 와 손으로 대충 문지르고는 ‘슈베리’라고 하며 먹어 보라고 했다.
포도 두 알 크기의 달콤한 맛을 내는 슈베리를 단숨에 모두 먹어 치우자 아주머니는 또 다시 내려가 아까 만큼 따 왔다.
“잘 먹었습니다. 이건 ‘한복’이라는 건데 한국에서 명절이나 결혼식, 특별히 좋은 날에 입는 전통 의상입니다. 책갈피로 쓰이도록 만들었어요.”
기념품을 드리며 설명했는데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더불어 청실홍실도 열심히 설명했지만 고개만 끄덕일 뿐 역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아주머니는 선물을 받자마자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뒤뜰로 데려가더니 자두를 한 자루 따서 건넸다. 가져가야 할 텐데 자전거가 무게를 못 이겨 주저앉을까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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