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모임(동호회) 사람들과 밥을 먹는데, 무심코 국민의당 후보를 비판했다. 그랬더니 한 아주머니가 '그러는 것 아니다'라고 정색을 하시더라. 그래서 '아, 말 조심해야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광주에 북구에 거주하는 30대 김수영(가명) 씨의 경험담이다. 김 씨는 "세대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주로 어르신들이 안철수 씨를 밀어주고 싶어하고, 젊은 층은 더민주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광주에서 일어난 국민의당의 풍세(風勢)는 잔잔하지만, 굳건하게 형성되고 있다.
8일에는 국민의당 지지율이 호남에서 37%를 기록, 더민주(24%)를 앞섰다는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8일 문재인 전 대표가 나섰다. 소방수를 자처, 1박 2일 일정으로 호남을 급거 방문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이전에 나온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국민의당은 25~30석 가량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호남 28개 중 국민의당이 최대 15~20석 정도 가능할 수 있다. 이 중 10곳 정도를 국민의당 우세 지역으로 본다면, 5~10곳은 박빙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호남이 지지를 철회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문 전 대표의 선언 의미를 따져보자. 호남에서 과반(14석)을 차지하려면 박빙 지역인 5~10곳의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문 전 대표 광주 방문의 목적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그냥 싫다" vs. "안철수는 뭘 했는데?"
광주 민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양동전통시장에서 의류점을 하는 50대 박윤옥(가명) 씨는 "요즘은 그런 말(선거)도 별로 안하는 거 같다.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총선) 붐이 별로 안 와 닿는다"고 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쪼개져서 그러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런 점도 있다"고 했다.
다수가 '2번'을 찍어왔던 사람들 앞에 '3번'의 존재가 나타나자 표심에도 균열이 발생했다. 활발한 '정치 토론'이 일어난다기 보다는 '각자 지지 정당은 알아서 찍자'는 암묵적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다.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60대 성주만(가명) 씨는 "문재인이 싫다"고 잘라 말했다. '왜 싫으냐'는 말에는 "그냥 싫다. 뭘 잘 하는 게 있어야지"라고 손사래를 쳤다. 70대 강성운(가명) 씨는 "친노가 기득권으로 다 해 먹고 당을 망치지 않았느냐. 문재인은 대선에 지고도 광주를 향해 '이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인사도 안하더라"고 했다.
더민주를 지지하는 50대 김용운(가명) 씨는 "어르신들이 저쪽(국민의당) 말만 듣고 안철수를 지지한다. 어르신들은 생각이 굳으면 안 움직이지 않나. 답답하다"라며 "분열시키고, 선거 망치고, 광주에서 국회의원 세 번, 네 번 하기 위해 잠바(점퍼)만 갈아입고 나왔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국회의원 하면서 호남을 위해 그동안 뭘 했느냐"고 했다. 또 다른 50대 정정심(가명) 씨도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 문재인을 안 돕고 도망갔지 않느냐"고 했다.
양동복개상가 앞에서는 즉석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상인 A : 몰라 누가 될랑가.
상인 B : 잘했든 못했든 2번이 돼야 해. 내생각은 그래. 광주는 2번 아녀.
상인 A : 그건 아녀. 그건 김 아짐(아주머니) 생각이고, 옛날하고 달러. 지금은 많이 바꿔졌어(바뀌었다). 무조건 2번 찍는 거 아녀. 광주서는 서울 때문에 2번을 찍는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아녀)
상인 B : (잠시 생각한 후) 그러제. 그 둘 중에 찍어야지. 2번 아니면 3번이여. 둘 중에 하나 찍어야제. 1번은 안찍어. 그런데 3번 찍으면 2번이 (수도권 등)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네. (3번 찍는다는 사람들) 한 두명이면 모르겠는데, 여러명 있어서 나라도 투표장에 나가서 (2번을) 찍어야지.
상인 A : 그러면 2번 찍고 3번 찍고 (투표용지에) 두개 찍어부러. (웃음)
이들의 대화는 "2번이 되든, 3번이 되든 결국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으로 끝났다. 시장 한복판에서 '대선 후보 야권 단일화'가 이뤄진 셈이다. 확실히 광주는 '웃동네', 즉 서울의 분위기를 살폈다. 기자에게 서울 분위기가 어떻냐고 물어보는 시민도 있었다. 그리고 대선 이야기를 꺼냈다. "총선에서는 싸워도 대선에서는 뭉치겠지"라는 비슷한 결론으로 대화가 마무리됐다.
50대 박귀영(가명) 씨는 "야당이 정권을 잡아야 나라가 편하다. 지금 어떻냐. 북한이 핵실험 하고, 미사일 쏘고 그러지 않느냐. 야당이 잡았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 야당이 잡아야 나라가 편해진다"고 열변을 토했다. 30대 이종수 씨는 "총선에서는 싸우더라도, 대선에서는 합치지 않겠느냐.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安에 의석 줘 文과 경쟁시키자" 정서도…그런데 새누리당이 대승한다면?
광주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에 대해 "평이했는데, '친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친노'를 부정적으로 보는 광주의 '국민의당' 지지층이나 중간층이 과연 흔들릴까 싶다. '반문' 정서는 뚜렸하지 않지만 굳건하다. 대부분 '더민주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안철수가 문재인의 강력한 대안이 될지 한번 기회를 줘 보자는 심리도 있다"고 했다.
이 인사는 다만 '문재인이 뭘 잘못했느냐'는 정서도 만만치 않아 선거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문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언급하면서 술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것이 표심으로 이어질 지는 나흘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국민의당 지지층이든, 더민주 지지층이든 "내년 대선에는 야권이 단일화 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선택지다. 문재인과 안철수를 경쟁시키느냐, 아니면 문재인과 더민주를 계속 밀어주느냐. 물론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할 경우, 두 선택지 모두 어려운 길로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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