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김장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김장

[귀농통문] 기억과 의무

잊힌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누군가 나를 잊는다는 것도 내심 두렵지만, 모두에게서 잊힌다면,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 고양·파주 시민들과 세월호 유족들 간의 간담회에 다녀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이제 남은 것은 분노밖에 없다는 유족의 고백 앞에서 나는 먹먹해졌다. 진실이 침몰한 시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은 흘러가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 빛바랜 모습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래도 좋은 것일까?' 묻는 자체가 죄스럽다. 그러다 문득 가을농사를 짓기 위해 비워놓은 10평 밭을 떠올렸다. 총각무와 돌산갓과 쪽파를 심어서 판매해볼 요량으로 비워두었던 밭, 나는 그 밭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김장농사를 짓기로 했다.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후배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더니, 진심으로 고맙다고 덥석 손을 잡는다. 그러더니 함께 김장해서 유족들에게 전달하자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우린 다음 날 농장에 모였다. 후배는 고등학생인 딸을, 나는 중학생인 딸을 대동했다. 용돈을 줄 테니 텃밭에서 아르바이트하라는 꾐에 빠져 '얼씨구나!' 따라나선 딸은 신바람이 났다. 주머니 가벼운 부모를 만나 늘 용돈이 궁한 딸은 아마도 '웬 떡이냐?' 싶었을 것이다.

꽤 오랫동안 비워둔 탓에 풀 천지가 된 밭에 쪼그려 앉아 낫질하는 등 뒤에서 후배가 아이들에게 오늘 할 일의 의미와 목적을 설명했다. 흘깃 뒤를 돌아보니, 딸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조곤조곤 취지를 설명하는 후배 앞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이따금 고개까지 끄덕이며 경청하는 딸의 모습이 미덥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낫을 내려놓고 뻐근한 허리를 펴며, "용돈은 없던 일로 하고 노력 봉사하면 어떨까?" 하고 딸을 향해 빙글거렸다.


"헐, 그건 아니지. 세월호는 세월호고 용돈은 용돈이지."

장난인 줄 뻔히 알면서도 딸은 정색한다. 그러더니 날름 혀를 내민다. 고얀 것.

▲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파종하는 아이들. ⓒ김한수

내가 낫질을 마치는 동안 아이들은 베어낸 풀을 치우고 퇴비를 뿌렸다. 바늘처럼 따가운 햇볕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땀이 솟는다. 아이들 얼굴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불 주사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햇살에도 힘들거나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일손을 거드는 녀석들이 참 예쁘다. 그런 아이들 덕분에 쇠스랑을 움켜쥔 손에 불끈불끈 힘이 붙는다. 흙을 뒤집는 동안 아이들은 그늘막 밑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양 쉴 새 없이 재재거린다. 거리가 먼 탓에 무슨 수다를 떠는지 알아들을 순 없지만, 그 소리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노랫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1시간을 쉬지 않고 쇠스랑질을 했더니, 아이들의 수다 소리는 까마득히 사라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훔치는데 후배가 얼음 커피를 건넨다.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켜니 뜨끈뜨끈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가시면서 숨통이 트인다.

쇠갈퀴로 평탄작업을 마치자, 두둑이 예술작품처럼 환하게 빛난다. 밭을 만드는 건 고되지만, 다 만들어진 밭을 찬찬히 눌러보면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에워싼다. 눈을 감고 그 희열을 음미하면 노동이 거룩하다는 생각이 든다. 밭이 만들어지자 아이들이 씨앗 봉투를 들고 다가왔다. 어떻게 파종을 해야 되는지 알려주자, 녀석들은 청소년 농부학교 학생들답게 능숙한 솜씨로 파종하고 흙을 덮었다.

▲ 활짝 핀 부추꽃이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김한수

파종할 때 보면 씨앗을 다루는 아이들의 손길은 참으로 섬세하다. 씨앗이 하나의 생명이라는 자각을 하는 순간 아이들은 씨앗을 갓난아기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파종하는 아이들의 눈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다. 무 씨앗을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점뿌림한 아이들은 곧바로 총각무와 돌산갓과 적갓의 씨앗을 줄뿌림했다. 손등으로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면서도 꾀부리지 않고 일손을 놀리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기특하다. 덥다느니 힘들다느니 한마디 투덜거릴 법도 한데, 세월호를 생각해서인지 묵묵히 씨앗을 심어 나간다. 씨앗 파종을 끝낸 아이들은 내처 쪽파종구를 심었다.

일을 마치자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 팻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후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크레파스를 손에 쥐었다. 후배가 문구를 정해주자, 아이들은 장인이 한 땀 한 땀 명품을 빚듯 정성스레 팻말의 도안을 그리고 색을 입혀나갔다.

작가들이 단원고 아이들의 약전을 집필하는 사업에서 4반 총괄을 맡은 후배는 사진을 찍어서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후배가 후기를 올리는 동안 아이들은 팻말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둘 다 팻말만 응시할 뿐 말이 없다. 나 역시 팻말에 물끄러미 눈길을 주었다. 농사를 끝내면 즐겁기 마련인데, 그저 가슴이 먹먹하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길을 돌리니, 활짝 핀 부추 꽃이 눈을 맞춘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아이들이 켜켜이 가슴에 얹힌다. 나는 돌아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들이켜니, 쓰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하늘을 보니 어둠이 먹물처럼 번진다.

후배와 나는 돼지갈빗집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기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이들은 차에 시동을 걸기 무섭게 곯아떨어졌다. 땡볕 작열하는 밭에서 3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얼마나 고단했을까. 고맙고 짠하다.

"선배, 고마워요."

돼지갈빗집에서 아이들이 허겁지겁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가 던지듯이 툭 말을 뱉었다.

"됐네, 이 사람아. 난 그냥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빈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다.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잘살고 있다는 얘기 아닐까.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는 삶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잊히는 것이다. 정말로 지치고 힘들 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면 응원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기억하는 건 우리 모두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딸을 농장에 데려간 것도 기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이다.

▲ 아이들이 만든 세월호 텃밭의 팻말. ⓒ김한수

싱그러운 피가 흐르는 딸은 훗날 내가 망각의 늪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면, 되바라진 태도로 나를 착 째려보면서 "아빠,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목소리에 날을 세울 것이다.

후배와 둘이서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기울이는데 실컷 배를 채운 딸이 여봐란듯이 아르바이트비를 달라고 손바닥을 척 내민다.

"고기도 실컷 먹었겠다, 좋은 일한 셈 치면 안 되겠니?"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촌스럽게 왜 이러실까?"

짐짓 모른 척 눙을 쳤더니, 딸이 되알지게 받아친다.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만 원을 건넸다. 야무지게 돈을 낚아챈 딸은 비로소 헤헤거리며 아이다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 쌓여서 우리는 누군가를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10평짜리 김장농사지만, 작물을 돌보고 거두어서 김장을 담는 과정이 우리의 기억을 살찌우고,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김치에 담아 세월호 유족들에게 편지처럼 보낸다면 삶 자체가 위안이 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해마다 김장농사를 지어서 세월호 유족들에게 보내면 좋을 것 같은데…."

"선배,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내 제안에 후배는 반색했다.

"너희도 도와줄 거지?"

아이들에게 물으니, 두 아이 모두 기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이다와 소주로 다 함께 건배하고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나는 차의 시동을 걸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좋다, 이만하면 참 멋진 하루를 보냈다.

* 위 글은 소설가 김한수 씨가 지난해 김장철에 작성한 것입니다. 올해 김장철이 오기 전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길 희망합니다. 편집자.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6년 4월 현재 76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