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총선을 닷새 앞두고 지방의 '경제 현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여야 후보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야3당은 일제히 비판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8일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잇달아 찾았다. 박 대통령은 8일간의 미국·멕시코 순방 일정을 마치고 지난 6일 오후 귀국했다.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지역 방문 행보에 나선 것이다. 청주에서 전주로 가는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박 대통령이 선거나 정치 관련 별도의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거의 여왕'이라 불린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 10일과 17일 박 대통령이 각각 대구와 부산을 방문했을 때도 이른바 '진박' 후보들에 대해 힘을 실어주는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이날 충북·전북을 찾은 박 대통령의 상의 색깔은 붉은색이었다.
특히 지금은 총선 직전 주이고, 청주와 전주는 격전지다. 박 대통령이 이날 찾은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충북 청주시 청원군에 있다. 지난 7일 청주방송(CJB)과 청주·충주문화방송(MBC)이 보도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원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오성균 후보가 33.9%의 지지도를 기록, 29.8%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또 청원뿐 아니라 인근 선거구에서도 여야 간 초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청주 흥덕구는 새누리 송태영 31.4% 대 더민주 도종환(비례대표) 30.0%로 나왔고, 서원구는 새누리 최현호 37.7% 대 더민주 오제세(지역구 현역) 35.8%로 나왔다. 청주 상당은 새누리 정우택(지역구 현역) 46.1% 대 더민주 한범덕 33.4%로 여당이 앞서고 있지만, 청주시 선거구 4곳 중 3곳이 박빙세인 셈이다.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위치한 전주 또한 새누리가 '호남 유일 당선'을 노리고 있는 곳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북 완산구 효자동에 있다. 바로 전주을 선거구에 해당한다. 전주을에서는 7일 서울경제-리얼미터 조사에서 새누리 정운천 29.6%, 더민주 최형재 28.8%, 국민의당 장세환 23.5%로 나타났다. (기사에 인용된 모든 선거 여론조사 관련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야3당은 일제히 비판했다. 국민의당에서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함께 지냈던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이 위원장은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에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오해를 살 만하다"며 "특히 여당 후보가 경합을 벌이는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부당한 선거 개입으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 '구태 정치 척결'을 내세운 바 있는데, 대통령이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구태 중의 구태"라고 비판하며 "대통령은 그런 옛날식은 더 이상 안 통한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최근 대통령은 안보가 위중하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안보 위협이 과장된 게 아니라면 선거는 당에 맡기고 안보에 전념하라"고 촉구했다.
더민주와 정의당은 대변인 논평을 냈다. 더민주 김성수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또다시 지방 순회를 재개했다"며 "박 대통령은 이미 두 차례의 지방 방문(3월 중순 대구, 광주 방문)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당시는 선거운동 기간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각 당의 선거운동이 가장 치열한 때"라며 "이런 때에 대통령이 충북을 방문하는 것은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은 공정한 선거 관리와 선거 중립 의무를 지고 있다"며 "선거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지방 순회 행사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민생행보를 빙자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하며 "특히 오늘은 이틀간에 거쳐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날이다. 사전투표 시작 일정에 딱 맞춰 진행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방문은 다시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기 위한 비겁한 면모"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청와대, 언론에 공개적으로 "과반 어려워"
박 대통령의 지방 방문 행보뿐 아니라, 청와대발(發) 총선 관련 발언이 언론에 흘러나오는 것 역시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이날 <중앙일보>는 한 청와대 참모가 "총선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대로 간다면 과반인 150석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다른 참모도 "친여 성향 무소속이 각종 조사에서 선전하고 있어 새누리당 의석을 많이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여당 지지율은 10% 이상 빼고 봐야 한다"며 "현재로선 새누리당이 140석 초반이나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여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의 결집을 불러일으키는 '위기론'인 동시에, 이른바 '진박'에 밀려 당을 나간 유승민 의원 등을 겨냥한 말이기도 하다.
<세계일보>도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가 "청와대가 '20대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150석) 의석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란 자체 분석을 당에 알려 왔다"며 "청와대는 언론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보다 판세가 훨씬 안 좋다고 판단, 당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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