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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녹색당 찍냐고?" "확 뒤집어야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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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녹색당 찍냐고?" "확 뒤집어야 사니까!"

[이계삼-엄기호의 대화] 생태적 전환, 정치적 전환

최근 한 원로 정치학자는 사석에서 그나마 정당처럼 진지하게 총선에 임하는 정당의 하나로 녹색당을 꼽았다. 만약 기적처럼 녹색당이 3%를 넘어서 국회의원을 배출한다면 그 자체로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게 될 것이다.

이 기적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고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2번)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과 문화학자 엄기호 박사가 만나서 지난 4월 5일 오후 9시 30분 합정의 한 식당에서 녹색당의 교육 정책을 중심으로 '왜 지금 녹색당'인지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를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 정리했다.

탈성장을 내건 녹색당의 교육 정책은 무엇일까?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가르침에서 배움으로"라는 정책 구호를 내세웠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무상 급식, 무상 교육만 되면 교육의 문제와 어려움이 정말 해결될까? 궁금증을 풀고자 학교 현장의 고민을 전하는 선생님에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의 사무국장으로 살아온 이계삼 녹색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단속 사회>, <공부 중독>의 저자인 엄기호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계삼 후보는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한겨레>에 썼던 '가만히 있으라'라는 칼럼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엔 청소년을 학교 교육의 피해자, 수동적인 객체로 봤고 그래서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눈물겹게 협력했던 청소년들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교육 문제는 철저하게 당사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이계삼 후보는 고백했다.

바보야, 문제는 바로 정치야!

이계삼 : 우리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면서 무수히 한국전력공사 앞에, 국회 앞에 갔는데, 그때마다 저들의 멸시, 배제의 시선을 마주쳤어요. 결국 세상 문제는, 사회 문제는 멸시와 차별과 배제로 고통을 겪는 당사자의 시선에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구나, 라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했죠.

우리는 지금껏 학교가, 선생님들이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하면 교육은 좋아질 거라고 믿어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학생들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선을 바꿔야 한다,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스스로 잘 배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우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예전에는 청소년 인권 운동가들이 제기했던 논리에 대해, 그것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과 '꼰대'의 시선에서 회의하는 것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 이제는 입장이 좀 분명해졌습니다. 청소년들이 권리를 가지면 스스로 얼마나 잘 배울 나갈 수 있을까.

녹색당 교육공약에 나오는 것처럼 청소년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선거권 연령을 낮추고, 정당 가입도 자유롭게 연령 제한을 없애고, 기본 소득으로써 사회 경제적 권리를 가지도록. 그리고 몰입에서 풀려나서 관조하고 성찰할 물리적 시공간을 확보하도록 6년 중 1년은 쉴 수 있도록 학생 안식년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덴마크 청소년들의 3분의 1이 이 시간을 애프터스콜레(afterskole)라는 곳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방식의 삶의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인생과 세상에 대한 대화와 토론으로 보내고 있다고 해요. 또한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인지 교과의 비중을 줄이고 예체능과 실기 과목의 비중을 유럽 수준으로 높이는 교육 과정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움의 형식과 내용 모두가 변해야 교육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봐요.

▲ 이계삼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2번). ⓒ남어진

이에 엄기호 선생님은 가르침에서 배움으로의 전환이라는 구호가 핵심을 짚었지만 녹색당만이 아니라 시장 자본주의도 그런 전환에 잽싸게 동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엄기호 : 저는 좀 우려스러운 게, 요즘 소위 사교육계에서 대단히 강조되는 게 '자기 주도 학습'이거든요. 배우는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런 거예요.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중심축을 옮긴다고 할 때, 배우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만약 배우는 이를 소비자로 바라본다면, 역설적 의미에서 녹색당스럽지 않은 전환이 되어버린다는 거죠. 소비 자본주의의 엄청난 적응력, 엄청난 창조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배움으로의 전환, 배우는 자가 주체가 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주체를 설정하는지가 좀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계삼 : 청소년의 정치적 사회 경제적 권리는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권리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은 또한 '애들이 무슨 투표권이냐, 니들이 뭘 할 수 있겠어'하는 미성숙론, 학교 안에 가둬놓고 '세상으로부터 정치 논리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당치도 않는 보호주의와 싸워가는 과정이므로 능동적이고, 해방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된다면 걱정하신 소비 자본주의의 객체로 규정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저는 주체의 설정보다 이런 전환의 운동에서 초기의 힘을 어떻게 만들지가 더 중요해 보여요.

'기승전밀양' 같지만, 얘기를 해 보면. 이치우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지역 사회 운동가들과 탈핵 운동가들이 재빠르게 뭉쳤어요. 그렇게 초기의 힘이 재빨리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압도적인 한전의 물리력과 관성의 힘에 짓눌렸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라고 봐요. '하나쯤 그런 세력이 송곳처럼 뚫고 나와'서 깃발을 들어준다면 좋겠지요. 그런 점에서 지금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면 녹색당의 교육 정책은 정치화 전략, 시민권 확보 전략에 가깝다.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녹색당의 정책은 교육에서 정치로의 전환이다. 그러니 학교도 정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는데, 정말 그런 장이 될 수 있을까?

엄기호 : 학교를 뭘로 볼 거냐, 저는 그걸 강조해요. 소위 '딱중간'이라고 표현되는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더 이상 학교를 괴로워하지 않아요. 왜? 재밌거든요. 밥도 주고 잠도 자고…학생들이 해탈했어요. 정말 아무도 안 건드려요. 사고가 나도 안 건드리니까. 애들 입장에선 너무 좋아요. 학교라고 하면 애들이 괴로워할 거다? 어른들 착각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학교를 더 이상 교육의 공간으로 바라보지 말고 삶의 공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해요. 학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는 거죠. 그래서 녹색당이 좀 더 과격하게 나가면 좋을 거 같아요. 우리에게 교육은 더 이상 가르침이나 배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로서의 문제다, 이렇게요. 만약 정치적 주체로 생각한다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거든요.

이계삼 : 그런 내용이 우리 교육 공약에 들어있습니다.

엄기호 : 그러니까 학교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과 개별 공약들을, 예로 들면 선거권을 주자, 노동을 배우게 해야 한다, 이런 얘기들이 파편화되지 않고 연결되도록 해야죠.

이계삼 : 제게는 이번 선거가 그래요. 교육 운동이란 말의 범위가 좁긴 한데, 녹색당의 교육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제게는 지난 교육 정책 발표회가 되게 감동이었어요. 그때 청소년들이 저희가 작성한 교육 정책 자료집을 미리 읽고 자신들의 소감과 코멘트를 미리 공유하고서 그 자리에 왔어요. 공연도 하고, 선언도 하고 그랬어요.

엄기호 : 이렇게 표현하면 웃긴데. 이런 이야기의 적이 누구냐면 바로 학부모예요. 가장 입에 거품을 물며 반대하죠. 왜냐, 학부모는 내 자녀가 정치적 주체가 되는 걸 싫어해요. 교사보다 더 싫어해. 그런 점에서 적대의 전선이 분명해져야 해요.

이계삼 : 저는 이중성이 존재한다고 봐요. 과학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표층에는 그런 적대가 존재하지만 그건 두려움의 표현이겠고, 심층에서는 어떤 갈망, 이건 교육이 아니야, 저런 방식이 진짜 교육이야, 이런 성찰의 공간들이 있다고 믿어요. 녹색당이 세상을 다 끌고 가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누가 먼저 깃발을 들고 불빛을 비춰주면 그 불빛 비치는 곳을 따라 가서 이뤄내는 건 모두의 몫이니까.

정치로의 전환이 교육문제를 해결할 출발점은 될 수 있겠지만 교육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까지 포괄할 수 있을까? 대담은 자연스럽게 교육의 전환으로 다시 넘어갔다.

▲ 엄기호 문화학자. ⓒ남어진

배움과 낮아지는 성장이 필요하다!

엄기호 : 저는 그 지점에서 녹색당이 넘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권리의 주체'라는 부분이라고 봐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란 바로 욕망의 주체거든요. 이 욕망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이기적 주체고, 발전적 주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주체가 정의되면 가르침에서 배움으로의 전환? 결국은 앞서 말했듯이 사교육 좋은 일만 시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욕망의 주체가 과연 발전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기적 주체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이계삼 : 이거 또 기승전밀양인데…. 밀양에 와서 아주 잠깐 있다 가는 대안 학교 청소년들이 되게 많아요. 많은 경우는 3박 4일, 1박 2일, 심지어는 몇 시간 있다가 가요. 그런데 소수이지만 2012년도부터 밀양에 와서 1, 2주일씩 있다가 가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저는 그 친구들이 몇 년 동안 성장해 가는 걸 봤어요. 밀양에서 일주일간 농활하고 온 대안 학교 친구가 엄마에게 밤에 전화해서 울면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냐'고 이야기했다는 걸 그 부모로부터 들은 적이 있어요. 고통받는 또 다른 주체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도덕적 준거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 운동은 일종의 혼융의 힘을 만드는 건데, 그런 건 당사자주의로만 불가능하니까. 그렇다면 다른 계층, 다른 주체들이 어떻게 서로 섞일 수 있을까. 타자성을 획득하면서 성장하는 거잖아요. 밀양에서 청소년들이 그렇게 밀양의 현실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고, 어르신들도 연대자들과 어울리시면서 녹색당원이 될 정도로 '성장'하신 거잖아요.

엄기호 : 그건 자아 실현과 다른 거죠. 저는 그걸 '낮아지는 성장'이라고 표현해요. 사람이 결국 어떻게 성장하느냐?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그래서 계속 배워야 하는 존재인 거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이 나를 가르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 앞에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저는 그걸 낮아지는 성장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성장은 높아지는 성장이었거든요. 누구보다 위에 올라가는 것, 내가 다른 누구보다 소중해지는 것. 아까 경계한다고 얘기했던 당사자 중심과 나를 주체화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높아지는 성장 속에서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스스로를 굉장히 외롭게 만드는. 대안 학교같은 곳에서도 그런 친구들을 많이 보거든요. 결국 우리는 좋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구나.

그렇다면, 녹색당이 외치는 생태적인 전환이란 게 뭔가? 저는 그걸 낮아지는 성장이라고 봐요. 선생님이 책이나 글에서 계속 쓰셨던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성장'이 바로 생태적인 전환이잖아요. 제안을 드리고 싶은 건 성장을 멈춰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멈춰야 하는 건 사회의 발전주의적인 성장인 거고. 인간은 계속 성장해야 하니 낮아지는 성장이라고. 그러려면 사실 교과의 커리큘럼부터 교육의 목적까지 다 바꿔야 합니다.

▲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남어진
낮아지는 성장, 머리를 퉁 치는 말이었다. 맞다, 우리는 그동안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고 낮아지는 건 생각하지 않았구나. 전환에 딱 맞는 열쇳말이다.

이계삼 : 그렇죠. 맞아요. 저도 그런 걱정이 많아요. 모든 것엔 악화와 양화가 존재하는 거고 때로는 공론의 장에서 충돌하고 소란을 일으키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죠.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상처들을 지혜롭게 풀 때 힘이 생기는 건데, 보통은 한 쪽이 주저앉아버리거나 떠나는 흐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녹색당 강령이 우정, 해학, 낙관처럼 비정치적으로 비치는 언어들을 담고 있어 참 좋아요.

엄기호 : 녹색당 공약 중에 부각되어야 하는 게 있어요. 아까 이계삼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지 교육의 비중을 줄이고, 실과와 예체능 비중을 올려야 한다는 거요. 특히 초등 교육에서.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 교육은 추상적이고 기호학적인 걸 다루는데 너무 치중해서 몸을 잊어버렸어요.

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한계를 가진 존재인가, 이런 건 몸을 통해 경험하는 거잖아요. 물속에 들어가 수십만 년 숨 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고작 1분이구나, 하는. 여기서 겸손이 나오고, 그래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른 정당들과의 가장 큰 차이도 이거 아닌가요?

이게 인간을 자본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대단히 중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하다 보니 다들 만능적 주체에요. 그리고 이 만능감이 훼손되면 너무 큰 상처를 받아요. 갑자기 쓰레기가 되고. 내 몸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이런 만능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내 몸은 늘 상처를 받는 거니까.

이계삼 : 학교에 있을 때도 가장 괴로웠던 것 중의 하나가 자기 소개서 보는 거였어요. 거기선 다들 반기문이고 한비야에요. 이 친구들이 근거 없이 썼다는 게 아니에요. 다들 책 읽고 키운 선망이죠. 한계 상황과 몸으로 부딪치며 일구어낸 경험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니깐 그런 선망으로만 남아요.

엄기호 : 제가 이번에 <공부 중독>이라는 책에서 썼듯이, 요즘 학생들은 뭘 실전으로 해본 게 없어요. 책의 표현을 빌리면, 타석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그라운드 밖에서 연습만 하죠. 연습하는 동안엔 다들, 나는 박찬호야. 꿈은 박찬호인 거죠. 거기서는 잘 안 되도 상관없어요. 아직 타석이 아니니까. 그래서 어떤 현상이 만들어지느냐? 타석에 안 들어서려고 해요. 타석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실전이니까, 내가 받을 상처가 감당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타석에 안 가면 만능감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다들 무슨 얘기를 하느냐. 다들 기획자가 되고 싶어 해요. 실무를 안 볼라 그러는 거야. 다들 시뮬레이션만 하려고 하는 거야. 요즘 애들의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교육이 짜져 있는 거예요. 이게 한국 교육의 완벽한 사기극이에요. 거기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거죠.

몸을 쓰면서 자기 한계를 경험하는 교육은 녹색당의 정책에서 '노작(勞作) 교육'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했다. 땅을 만지고 몸을 쓰고 노동하며 구체적인 연대와 공존의 잠재성을 경험하는 교육, 녹색당이 다른 정당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찾으라면 바로 이 교육에 대한 관점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관점은 요즘 많이 회자되는 청년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까?

ⓒ남어진

소박한 우리, 씨앗이 되자!

엄기호 : 저는 요즘 30대 미만의 청년 운동을 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든요. 왜냐, 그 앞의 청년 세대들이랑 좀 다른 게 앞선 세대가 모든 이슈를 다루고 개입하는 전국구라면 지금의 청년 운동은 되게 소박해요. 정말 소박해. 그래서 이 친구들은 상처를 덜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일단 그게 기쁘고. 그리고 저는 그게 굉장히 발전주의적이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다 해소해야 하고, 뭐 엄청나게 올라가야 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모두 다 해야 하고, 이런 의식이 별로 없어요. 이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소박해지는 것.

이계삼 : 녹색당이 굳이 청년 정책을 특화해서 내세우지 않는 것도 맨날 선거 때만 선물보따리 풀면서 청년에게 뭘 주겠다, 베풀어주겠다는 식의 정치적 타성에 대한 반발이라고 저는 봐요. 이를테면 전월세 상한제나 표준 임대료, 자동 계약 갱신제와 같은 주거 정책에서 청년은 중요한 한 당사자잖아요. 이것을 따로 청년 정책이라고 하지 않고 녹색당의 주거 정책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청년이 한 당사자로 참여해서 제기하고 싸우는 지금의 녹색당의 방식이 저는 옳다고 생각해요.

엄기호 : 저는 그 부분에서도 녹색당이 좀 부각시켜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위원회가 아니라 청년녹색당이잖아요. 청소년녹색당도 있고. 이런 게 있는 정당이 한국에 유일해요.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녹색당은 결국 정치의 문제로 사고하는 거잖아요. 제가 가리키는 학생들 중에 녹색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을 보면 기존과는 다른 게, 녹색당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문제예요. 되게 이게 양가적이에요. 잘못 가면 힙스터가 되는 거고, 잘 퍼지면 굉장히 훌륭한 정치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이게 한 번은 충돌할 것 같아요. 기성세대들은 투표도 안하는 청년들 이렇게 지랄을 하지만, 저는 낙관하는 게, 정말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출현하고 있다.

아직은 소수이긴 하지만 욕망이 겸손해졌어요. 에고이즘이 별로 없고, 생태적인 게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고. "나는 뭐가 어쨌든 녹색당이야", 이런 건 처음 보는 현상이거든요. 제가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당 저 당에 대한 지지를 많이 봤지만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녹색당 지지는 처음 봤어요. 이건 녹색당에게는 정말 큰 기회라고 봅니다.

이계삼 : 저는 어떤 느낌이냐면, 녹색당이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시민권을 한 단계 확보하는 게 목적이지만, 선거에서 예상했던 결과가 안 나왔을 때 가장 상처 적게 받을 정당이 녹색당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가난에 대한 재능, 자신감, 이런 게 있다고 저는 봐요. 세상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까지 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많은 녹색당 당원들이 이런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 전환해 나가는 싸움은 결국 기나긴 여정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잖아요.

녹색당이 원내 진입을 통해 정치적 시민권을 확보하고, 싹을 틔우고, 그 싹을 여러 방식으로 다른 정치 세력에게 분양해주면서 녹색 정치가 퍼져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우선 노동당이 있고, 정의당에도 무슨 안보 정당 코스프레하는 분들 말고, 녹색적 가치에 대한 신념과 상식을 갖고 있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연대가 형성되었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녹색당이 소수이긴 하지만 중요한 씨앗이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고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가 말했잖아요. 녹색당은 중요한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얘기 고맙습니다.

엄기호 : 저는 좀 불만이 녹색당은 녹색당스럽게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다들 좀 멈칫거린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이럴 거면 교육에서 정치로의 전환, 이렇게 가자. 그게 녹색당스럽잖아요. 그런 게 좀 아쉽죠.

ⓒ남어진

대담은 진지하게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이계삼 후보는 매번 밀양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만큼 그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정치로의 변화를 끌어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그에게 교육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는 운동의 내용이자 방법이다. 그리고 엄기호 선생님은 녹색당 당원은 아니지만 녹색당의 의미를 짚고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엄기호 선생님의 말처럼, 녹색당의 교육 정책은 다른 정당들과 비교되지 못할 만큼 급진적이다.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교육의 정의를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파국 앞에 선 우리에게 교육은 기회 균등이나 자아 실현이 아니라, 어떻게 살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한계를 깨달은 삶의 변화이자 스스로 살고자 하는 배움이다. 고통을 마주하며 타자의 손을 잡고 서로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교육이자 정치이다.

녹색당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기대도, 우려도, 비아냥거림도. 진보냐 아니냐를 떠나 녹색당은 기성 정치에서 배제되거나 격리되었던 새로운 사람들을 정치 무대로 길어 올리고 있다. 그 사람들이 올라와 녹색당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타자를 만난다.

교실에서 받는 백 번의 시민 교육보다 길거리에서 자기 육성으로 세상과 삶에 관해 얘기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부딪치는 것, 녹색당의 교육은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면 녹색당의 교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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