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위기의 MB, 이젠 '노무현 탓'도 안 통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위기의 MB, 이젠 '노무현 탓'도 안 통한다

[기고] 이명박 정부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조건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소통의 위기', '신뢰의 위기'를 말한다. '쇠귀에 경 읽기'까지라고 한다.

참여정부는 거시경제 지표라도 좋았다. 물론 민생경제와 관련한 지표들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거시경제의 선순환은 민생경제의 선순환으로 전혀 이어지지 못했다. 양극화의 골은 극단적이었다. 그런데도 늘 '말'은 난무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도 아니다. 거시경제도 민생경제도 모두 악화일로다. 시민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의 징후는 여러 가지다.

위기 징후가 심각하다

첫째, 한국이 IMF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2000년 이후 8년 만에 순 채권국에서 순 채무국으로 전락하게 됐다. 기획재정부의 20일 발표다.

둘째, 4월만을 놓고 얘기하자면, 소비자물가지수가 4.1%로 여느 해보다 눈에 띄게 높다. 이른바 MB지수라 불리는 52개 지수품목은 평균 5.88%이다. 20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4월 중 생산재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5% 급등했다. 석유·식량을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준점을 잡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셋째, 고용률도 하락추세이다. 일자리 만들기는 이 정부 최고의 공약이었다. 대학진학률 83%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고학력 예비군을 가진 우리 입장에서 일자리 만들기는 당연히 국가적 목표가 돼야 했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월 고용률은 59.1%로 전년 동월 대비 0.1% 하락했다. 지난 대선 당시 연간 60만 개 새로운 일자리 창출 공약은 이미 축소됐다.

넷째, 22일 환율은 1050원 대로 지난 2005년 10월 이후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다. 물론 환율로 인해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있어 일의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수출형 대기업과 내수형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섯째 5월 현재 무역수지가 적자일 확률이 커지면서 6개월 연속 적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전 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이 정부의 해명이었지만 이제 그 해명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사실상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결코 전 사회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IMF 이후 10년이 준 교훈이다.

이제는 '노무현 탓'도 안 통한다

이러한 위기의 징후는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까? 정부와 대통령이다. 법적 책임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책임, 심정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무한책임으로 귀결된다. 물론 억울하고 어떻게 보면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남 탓이 통용되지 않는다. 참여정부 탓도 하루 이틀이고 다수 야당 탓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지방정부에서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방의회에서 국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출권력은 한나라당이 틀어쥐고 있다.

대운하가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좋은 일자리와 대운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미국이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지만, 한미FTA가 당장 우리 경제의 활로를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 또한 누구나 아는 얘기다. 남북관계 탓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극단적 신뢰가 극단적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민생경제의 위기, 나라경제의 위기가 거대한 먹구름으로 우리를 뒤덮고 있다.

누구나 지적하듯 이미 우리시대의 담론은 민주화나 인권 등 거대담론에서 출산·보육·교육·주거·일자리·의료·노후보장 등 민생이라는 이름의 '미시정책' 영역으로 옮겨온 지 오래다. 우리는 이런 정책을 '실용'이라 이름 지었고, 이 정부 또한 이념적 교조주의를 벗어나며 실용정부를 자처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등소평 식의 표현을 빌자면 고양이가 쥐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성적인 우리 국민은 이미 양해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힘을 써 봐도 국제경제에 전면적으로 편입된 상황에서 더 이상 독자적인 경제정책, 환율정책, 금리정책 등 경제정책의 조정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쯤은 인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쓰나미도 나름대로 인정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아무 할 일도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정부가 되고 말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새 출발의 조건은?

이명박 정부는 이제 출범한 지 석 달 된 정부이다. 당선된 지 5개월이다. 시행착오를 딛고 새롭게 출발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다. 임기 5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래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권력투쟁의 문제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 사이의 권력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상득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 사이의 권력투쟁은 잠복기에 들어선 상태지만 뇌관은 살아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경선에서부터 공천으로, 다시 새 정부 구성으로 그리고 새로운 당 지도부 구성에서 차기 대권으로 이어지는 현 여권의 권력투쟁은 과연 '실용정부'가 누구를 위한 실용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권력투쟁은 당장 멈춰져야 한다.

둘째는 이념투쟁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를 '퍼주기 10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며 남북문제를 다시 이념의 문제로 점화시켰다. 좌편향적인 통일교육을 확 바꾸겠다며 나섰다. 6.15 공동선언의 성과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남북문제에 대한 안전판 없이 외자유치를 이야기한다. '내용적 이념 편향'과 '겉으로의 실용'이 충돌한다.

'문화권력 교체론'도 같은 맥락이다. 좌편향적이고 이념지향적인 문화권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정부 여당은 한 목소리다. 실용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이다. 지난 10년간의 성과들을 이념으로 덧칠하여 매도하고자 하지만 벗어나려 하는 방식 자체가 도리어 이념적이다.

셋째 미국과는 인권과 시장경제라는 가치동맹을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사회 내에서는 인권의 가치를 폄하시킨다.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한 '공안 방식'의 대응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시장경제의 본질도 왜곡되고 있다. 물가를 '관리할 수 있다'는 70년대적 사고방식, 그런데 이와는 모순되게도 시장경제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며 헌법의 명령에 반해 시장에 대한 교정기능은 일체 포기하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모든 규제는 '불법'이라는 명제는, 자칫 사실상의 '무정부주의'로 이어진다.

이 나라는 기업국가가 아니다. 시장경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시켜 '시장사회론'으로 연결시킨다. 이는 자칫 재산과 신분의 세습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추구하는 진정한 '실용적 의미'의 인권과 시장경제에 대한 기초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시민사회에 대한 불신은 곧 정부에 대한 불신이 된다.

넷째, 즉흥성, 예측불가능성에 권력의 집중이 더해지면서 집중과 독점의 폐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정부조직법 개정 당시 예측됐던 문제다.

지난 2월 28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필자의 지적이다. "제가 정부조직법 심사를 해보니까 지나치게 정책조정 기능을 대통령에게로 집중시켜놨어요. 이것은 저는 헌법질서에 위반된다고 봅니다…지금 대통령에게 권력집중, 이런 현상이 이어지거든요. 권한의 집중이 어느 한 순간 갑작스럽게 우리가 가진 헌정체제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이에요."

기업은 이미 다운사이징 시대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government)가 아니라 협치(governance)의 시대이고, 정부 조직 자체 내에서도 권력의 균형과 견제는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 의회와 정부, 여당과 야당 사이의 균형과 견제에서 효율이 증진된다. 이제서야 강재섭 대표는 책임총리제를 건의했다고 한다. 권력구조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섯째, '수사의 정치' 문제이다. 실체와 다른 '포장'에 가뜩이나 헷갈리는 시민들이 더욱 헷갈린다. 시민들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부터 '수사의 정치'를 비웃어왔다. 그 반사적 이익이 어느 순간 한나라당의 권리로 고착화됐다. 그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권력은 한나라당의 몫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수사는 이전 통치자의 수사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 더 집중된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의 위기도 훨씬 농도가 진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사실 내 생각은 매우 진보적"이라고도 말했고, 다시 한번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고도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 '수사'가 더 이상 '신뢰의 위기'를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는 행동으로서의 '진보', 태도로서의 '실용'을 보여줘야 한다.

"종래의 사회 보장제를 떠받치는 기본적인 원칙이 '우리 다 함께(We're all in it together)'라면 소유주 사회의 기본 원칙은 '각자 스스로 알아서(You're on your own)'인 듯하다." 버락 오바마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 스스로 진보냐 보수냐에 대한 수사의 정치를 버리고, 그저 실용으로 솥단지정치로 국민들께 보여줘야 한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했던' 전임 정권은 수사로서도 결과로서도 시민들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같은 실패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극단적인 소유권 사회가 갖는 폐해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야 한다. 21세기는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생활권적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는 18세기로 역주행 중이다.

지금까지 내내 이명박 정부 탓만 하고 만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속해 있는 야당을 위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시절 배운 행정법 지식을 써먹자면 "반사적 이익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이익이 아니다. 따라서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한다.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국리와 민복을 위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안경쟁을 가속화해야 할 때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