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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 좋은 일에는 항상 어려움이 뒤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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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 좋은 일에는 항상 어려움이 뒤따르는 법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③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라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라

빈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 마리아 괴낑(Maria Gugging) 부락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페달을 돌릴 때마다 찰그락 찰그락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가 나더니 점점 심해지면서 기어 변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간단치 않은 고장인 것 같았다. 지나가는 이에게 서비스센터의 위치를 물어 500m 정도 더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그곳에서는 상태가 심해 수리를 할 수 없다며 더 큰 서비스센터에 가 보라고 위치를 알려 주었다. 우리는 2km를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지하 터널을 빠져나와 신호등을 건너니 대각선 방향에 ‘스콧(Scott)’ 자전거 전문점이 보였다. 토요일인데도 다행히 문을 열어 놓았다.

▲자전거 수리. ⓒ최광철

“안녕하세요, 구텐 탁.”
“어서 오세요. 동양인,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무거운 짐을 실으셨군요. 먼저 짐을 좀 풀어 주실까요?”
우린 정비사가 이런 얘기를 했으리라 짐작하고 가방 여섯 개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곧 정비사가 자전거를 덜렁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질 않아 수리가 잘 되고 있는지 걱정이 됐다. 기다리다 못해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정비사는 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제스처로 보아 나가 있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어디다 대고 함부로 고함을 치는 거야! 손님한테 좀 친절히 대할 수 없어?”라고 따지려다 꾹 참았다. 만일 그랬다가 못 고치겠다고 팽개치면 우리만 손해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정비사가 자전거를 번쩍 들고 나왔다. 나는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의사 선생님께 달려가듯 다가갔다.

“어떻게 됐어요? 수리는 잘 됐어요?”
“네.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리한 운행은 삼가시고 …… 기어 줄도 교환하고, 늘어진 체인도 조정하고, 비틀어진 기어 변속기도 제 위치를 잡았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수리비는 만 오천 원. 난 십오만 원이라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나마 도시 근교에서 고장이 났으니 다행이지 만일 외딴곳에서 고장이 났다면 그야말로 난감했을 것이다. 무거운 짐을 끌고 갈 수도 없고, 메고 갈 수도 없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일에 갑자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우린 서비스센터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도나우 강 제방 길을 달렸다.

▲휴식하는 추니


오늘은 첫날이라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직 시차 적응이 제대로 되질 않았나 보다. 조금만 달려도 다리가 뻐근하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추니는 잠시 쉼터에 들르면 땅바닥에 한 겹 거적때기를 깔고 헬멧을 베개 삼아 드러누웠다. 곧 다르륵 다르륵 코를 골다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벌떡 일어나 몸이 개운하다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추니의 허리디스크를 잘 살펴야 한다. 만일 통증이 시작되면 여행을 멈춰야 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라’는 말을 늘 기억해야겠다. 의사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을 감행하지 않았는가. ‘호사다마’란 고사성어도 있듯이 좋은 일에는 항상 어려움이 뒤따르는 법이다.

▲툴른 캠핑장

해는 뉘엿뉘엿, 제방 너머 어렴풋이 캠핑장이 보였다. 제방 사면을 따라 곧장 내려가니 푸른 잔디밭 위로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바로 ‘툴른(Tulln) 캠핑장’이었다. 우린 ‘리셉션(Rezeption)’이라고 쓰인 접수창구로 들어갔다.

“할로? 한국에서 왔어요. 두 사람이고요, 텐트 칠 겁니다.”
태연하게 헬멧과 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어서 오세요. 여권 좀, 그리고 여기에 주소를 좀 적어 주시겠어요?”
여직원이 접수 용지를 가져왔다.
“20유로입니다.”
“네, 신용카드 여기 있습니다.”

사용료는 하룻밤에 한화로 3만 원, 호텔 요금에 비하면 거저 자는 기분이었다. 관리인은 캠핑장 안내서를 보여 주며 텐트 칠 곳과 이런저런 편의 시설을 설명해 주었다. 이미 열댓 명이 텐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캠핑장은 캠핑 차량 자리와 텐트 자리가 분리되어 있었다. 면적을 볼 때 텐트 치는 면적은 2할 정도였다. 미루나무 그늘 아래 텐트 칠 자리를 잡고 캠핑장을 한 바퀴 돌며 화장실, 취사장, 레스토랑 같은 편의 시설을 돌아봤다.
샤워장에 들어가니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환경미화원이 몇 명 보였다.

“샤워장에 청소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상하다 생각하며 샤워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문득 내 옆에서 샤워를 한 사람도 바닥을 닦는 것이 보였다. 자기가 샤워한 자리는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닦아 놓아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린 캠핑장 레스토랑에서 치즈샐러드 한 접시에 맥주 한 잔씩을 마셨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변인들은 낯선 동양인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취기가 오르면서 첫날의 긴장과 피곤함이 온몸에 사르르 전해졌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와 있는 게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7월 19일 아침. 텐트를 잔디에 펴서 말리는 동안 빵과 라면 국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캠핑장 매점에서 점심 식사용으로 우유와 빵을 구입해 싣고, 자전거 길을 따라 오스트리아 서쪽 방향으로 향했다.

강변에는 개망초 씨앗을 마구 뿌려 놓은 듯이 들녘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자전거 길은 작은 마을을 들렀다 다시 강변으로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사이사이 기념품 가게도 들르고, 와인 상점도 들르고, 슈퍼에도 들렀다.

자전거 길은 따로 신설한 것이 아니고 도나우 강변에 있는 도시와 도시 간에 이미 연결되어 있던 크고 작은 길들을 자전거 길로 지정한 것이다. 이정표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찻길 구간도 있었고, 마을 안길 구간도 있었고, 또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 숲 속 길도 있었다.

달리다 보니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취사를 하는 라이더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꼬마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여름휴가를 나온 듯했다. 우린 스피츠(Spitz)에서 배를 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강을 건넜다. 강 건너에도 자전거 길이 있는데 그쪽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뱃삯은 1인당 2유로, 삼천 원이었다.

인터넷 지도에서 도나우 강변을 확대해 보면 좁은 길이 양옆으로 가지런히 나 있는데, 그 길이 찻길인지 자전거 길인지 알 수 없어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와 보니 차와 자전거가 함께 달릴 수 있는 왕복 2차선이었고, 차량은 한 시간에 한두 대 정도 오가고 있었다.

‘강변 어느 쪽으로 달릴까? 숲이 우거진 그늘 쪽으로 달릴까?’
어떤 마을을 경유하고, 어느 캠핑장을 찾아갈 것인가는 선택 사항이었다.

▲강변 라이딩

오후 들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 청년에게 가까운 캠핑장 위치를 물었다.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안간힘을 다해 설명해 줬지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자꾸 묻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돌아서려는데, 그 청년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자기를 따라오라며 직접 길 안내에 나섰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를 더 달려 우리는 무사히 ‘멜크(Melk)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에는 이미 캠핑카 다섯 대가 와 있었는데, 텐트는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그런데 관리실에 접수받는 사람이 없었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읽어 보니 접수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저녁 6시부터 2시간 동안 체크인이고, 아침 8시부터 2시간 동안 체크아웃이다. 만일 오후 4시에 캠핑장에 도착했다면 우선 텐트 먼저 치고 나중에 표를 끊어도 된단다.

우리는 먼저 텐트를 치고, 취사장에 들어가 스마트폰을 충전시켰다. 충전할 수 있는 곳은 휴게실과 화장실에도 있었는데 분실할까 걱정돼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콘센트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멀티 콘센트를 가져왔는데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았다.

캠핑장 사용료는 16유로, 이만 사천 원이었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려면 1유로 동전을 별도로 넣어야 작동되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미리 캠핑장 예약을 안 해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와 보면 텐트 칠 공간이 남아 있었다. 인터넷으로 유럽의 캠핑장을 검색하면 많은 정보가 있다.

그러나 다음 날 묵을 곳을 예약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달리다가 펑크가 날 수도 있고,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제때 그곳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량이라면 밤늦게라도 찾아갈 수 있지만 자전거는 체력과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텐트 치는 도중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꼬챙이로 텐트 외곽을 빙 둘러 파내 물길을 돌려놓고, 빗물이 텐트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도록 바닥 시트 끝을 조금씩 들어 올렸다.

곧 소나기는 텐트 지붕을 드럼 삼아 요란스레 두들겨 댔다. 텐트 속에서 장대비 맞으며 뛰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고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침낭 속으로 모가지를 더 깊이 들이밀었다. 요란스럽던 드럼 소리는 점차 가느다란 보슬비 리듬으로 바뀌었고, 미루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비가 그쳤음을 알려 주었다.

▲멜크 캠핑장

동화 속 마을로

다음 날 아침. 비가 계속 내려 캠핑장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늦은 아침 식사로 빵과 우유, 치즈, 말린 소시지, 라면을 먹었다.

비 그친 오후, 도나우 강가를 산책했다. 고향에 있는 섬강처럼 정겹다. 버드나무 가지가 강물에 닿아 흐르다가 물레방아처럼 빙 돌아 다시 위로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캠핑장 길 건너 숲 속에 묻힌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구릉지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뾰족한 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고요한 마을 안길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갔다.

‘다들 어디 갔을까? 평일이라 직장에 출근한 걸까?’
마을 안길 끝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는 동안 우리는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길가에 앙증맞게 피어 있는 야생화와 정성스레 가꾸어 놓은 정원들이 마치 미술 작품 같아 사진에 담느라 좀처럼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나무는 물론이고 길가의 작은 들풀 한 포기도 하나의 귀중한 생명체로서 존중받고 있는 듯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정원에는 철 지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보이기도 했고, 녹슨 농기구들이 보이기도 했다. 예쁘게 만든 새 둥지에는 새들이 찾아와 재잘거리고 있었다.

▲강변 마을

7월 24일 아침. ‘나른(Naarn) 캠핑장’은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있었다. 열 시가 지났는데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텐트를 둘둘 말아 싣고 출발했다. 정오가 되자 짙은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도나우 강엔 어림잡아 300m가 넘는 긴 화물선이 금방이라도 물속에 가라앉을 것처럼 지붕만 겨우 드러낸 채 지나고 있었다.

홍수 예방과 전력 생산을 위한 댐은 40km 정도 달리면 한 개씩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배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마치 보같이 생긴 좁은 수로가 있었다. 올라가는 배는 이 수로에 들어와 대기하고 있으면 뒷문이 닫힌 뒤 물이 차츰차츰 차오르면서 위로 떠올랐다. 반 시간 정도 기다려 배 바닥의 높이가 상류의 수위와 같아지면 앞문이 열리고 상류로 올라가는 식이다. 수로의 길이가 4~500m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저만치 ‘스파(SPAR)’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 보니 목욕탕이 아니고 대형 슈퍼마켓이었다. 빵과 우유, 치즈, 소시지, 살구, 커피를 구입해 계산대에 가서 신용카드를 제시했다.

그런데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점원이 여러 차례 시도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라면 유럽 어느 곳이든 다 통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마켓과 제휴를 맺은 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현금으로 계산을 했다. 동전이 고만고만해서 잔돈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 움큼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으니 알아서 가져가고 나머지는 돌려줬다.

우리는 스파 정문 옆 나무 식탁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엔 빵과 우유를 먹으면 속이 부글거려서 가져간 소화제를 하루 한 번씩 먹었다. 그래서 고추장과 라면 스프로 속을 다스려 왔었는데 이젠 서서히 서양 음식에 적응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여행 중에는 주로 강변과 작은 마을의 이면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대형 마켓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번 장을 볼 때면 짐이 다소 부담스러워도 이삼일 치 식재료를 한꺼번에 구입했다. 식재료는 우리나라의 거의 반값 수준인데, 외식은 훨씬 비쌌다.

오후 5시, 빈에서 220km 거리에 위치한 린츠(Linz)에 들어섰다.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린츠는 웅장한 중세 건물들로 가득했고, 중앙 광장에는 빨간 트램(Tram)이 오가고 있었다.

빈을 출발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됐다. 소개해 준 관광안내센터에 10% 예약금을 먼저 내고, 나머지는 호텔에 가서 계산하면 된단다. 조식 포함 70유로, 한화로 십만 오천 원이었다. 자전거는 지하 주차장에 보관하고, 가방 열두 개는 방으로 옮겼다.
여권과 카메라, 지갑을 챙겨 중앙 광장으로 나온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야외 파고라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주메뉴는 묻지 않고 마실 것부터 먼저 주문을 받았다.
“맥주 두 잔 주세요.”
“식사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걸로요, 그리고 야채샐러드 1인분 주세요.”

지금까지 먹어 본 메뉴는 닭튀김밖에 없어 또 그걸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주위 사람들과 연신 눈길이 마주치는 걸 보니 동양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의류와 액세서리 매장이 추니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정말로 살 작정인지 밖에서 눈독을 들이다가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분홍색 원피스와 검은 가죽점퍼가 맘에 드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가격표를 앞뒤로 돌려 보고 이것저것 만져 보더니 그냥 빈손으로 나왔다.

“예쁜데 비싸네요.”
눈요기로 만족한 듯했다.

▲린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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